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 Oct 05. 2022

00. 요즘 나는 그래.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나는 교육열이 높다고 소문난 서울의 학군 좋은 동네에서 자랐다. 성실히 공부하여 서울의 한 외국어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또 성실히 공부하여 내로라하는 명문대학교에 진학했다. 그리고 또 부단히도 성실히 공부하여 수도권 소재의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했다.


 남들이 보기엔 참으로 탄탄대로 같은 인생일 것이다. 하지만 나를 이렇게 본다면?


 고등학교 때부터 아빠의 사업이 내리막 궤도를 타기 시작했다. 대학교를 입학하자마자 엄마가 암에 걸렸다. 나는 대학교 내내 용돈 한 번 받지 못하고 학비는 국가장학금으로, 생활비는 알바 급여와 과외비로 충당했다. 그러던 어느 날, 조금 괜찮아졌다고 생각한 어느 날, 엄마가 두 번째 암에 걸렸다. 그때도 아빠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갑상선 항진증을 앓고 있었다. 행복했던 가정이 우중충해졌다. 나는 휴학을 하고 엄마의 병원을 따라다녔다. 그러다가 덜컥 나에게 공황발작이 찾아왔다. 사실 덜컥은 아닐 것이다. 마음이 계속해서 보낸 신호를 내가 못 알아챈 것뿐이었다.


 하루 종일 누워있는 날과 내일이 없이 노는 날이 이어졌다. 일상이 무너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은 죄책감만 부추겼다. 그렇게 나는 우울의 늪으로 점점 빠져들었다. 스스로가 한심했다.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그렇게 깊은 늪으로 알아서 기어들어가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방문도 닫아놓고 암막 커튼을 꽁꽁 쳐놓은 채 몇 날 며칠을 잠만 자고 눈을 떴는데, 문득,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숨을 못 쉴 것 같은 공포가 찾아왔다. 엄마에게 SOS를 치려고 핸드폰을 보니 새벽 3시 20분 언저리였다.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내가 나에게 하면 안 될 짓을 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때부터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물론 쉽지 않았다. 지금도 쉽지 않다. 하지만 천천히 더디게라도 조금씩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지금의 나는 그 극복의 산 중턱 어딘가에 서있다. 매일 한 걸음이라고 떼려고 지친 다리를 팔 힘으로라도 들어 한 발짝을 내딛는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걸 몰라서 못 하냐고. 나도 몰라서 못 한 게 아니었다.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못 한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서, 그 힘이라도 내어볼 수 있어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이 한 발짝을 내딛는 힘을 얻기까지 어떤 시간을 거쳐 왔는지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 한다. 이 글이 어떤 사람에겐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지난 시간의 나를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