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정말이지 정신없이 지나갔다. 로스쿨 입학, 동기와 선배들과의 술자리, 첫 이별, 첫 자취. 그리고 방황. 정신과를 다니고 있긴 했으나 그리 성실한 환자는 아니었다. 약을 까먹을 때도 많았고 약이 떨어졌는데도 병원을 찾지 않기도 했다. 그러다가 견딜 수 없이 힘들어질 때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2학기 기말고사 기간이 되었다. 1학년으로 치루는 마지막 시험이었다. 월요일부터 시험이었고 그 전날인 일요일. 나는 공부를 해야 했다. 월요일엔 형법 각론 시험이 있었다. 그래서 어서 학교를 나가던지 집에서 책을 펴던지 해야만 하는데도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하루 종일 이불 속에서 보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다.
나는 무엇을 그리 피하고 싶었나 지금 돌이켜보면 평가받는 시험이 싫었던 것 같다. 살면서 내가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본 시험이 거의 없었다. 가장 큰 시험이었던 수능도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그런데 이놈의 법학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분량이었다. 내가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만점을 받는 것은 고사하고 주어진 시간 안에 모든 쟁점을 건드리는 것조차 불가능에 가까웠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딱 그런 기분이었다. 무언가 해냈다는 자신감이 들어 기출문제를 풀어보면 또 새로운 쟁점, 새로운 판례가 나왔다.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확신도 들지 않았다.
그 완전하지 못한 상태의 내가 점수와 등수로 결과가 나오는 시험을 보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다음날이 시험이라는 걸 직면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저녁이 되었다. 드디어 책을 폈다. 속이 울렁거렸다. 이제 정말 큰일이라는 불안감에 손이 떨리고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사실 그때 무슨 생각으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그 상황을 모면하고 싶었다.
지도교수님께 메일을 보냈다. 내 핸드폰 번호와 함께 급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으니 전화를 부탁드린다고 했다. 그리고 조금 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교수님이셨다.
- ‘무슨 일인가요.’
교수님은 언제나처럼 조근 조근 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물으셨다. 나는 울음을 감추지도 못하고 말했다.
‘교수님. 저 좀 휴학 시켜주세요.’
교수님은 꽤 오랫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그때 교수님께서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중고등학생도 아니고 무려 대학원생이 주말에 전화해서 엉엉 울며 휴학 시켜달라고 생떼를 쓰다니.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교수님은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아채신 모양이었다. 차분하게 다시 물으셨다.
- ‘오늘 식사는 했나요?’
이미 울고 있었지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누워있느라 한 끼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나도 스스로 신경 쓰지 않은 끼니를 교수님께서 챙겨주셨다.
- ‘어서 식사를 합시다. 오늘 공부를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대신 내일 시험만 보러 오세요.’
첫 시험은 교수님이 가르치시는 과목이었다. 그럼에도 교수님은 공부를 하지 않고 와도 괜찮다고, 출석만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괜찮다고 나를 달래주셨다.
- ‘우선 내일 시험을 치다가 도저히 안 되겠으면 그때 다시 방법을 마련해봅시다.’
나를 평가하는 주체인 교수님께서 공부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씀해주시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교수님과 전화를 끊고 나는 밥을 시켜먹었다. 그리고 잤다.
다음날 나는 시험을 치러 갔다. 그동안 꾸역꾸역 해온 공부가 헛되지 않았는지 전날 공부를 하지 못했음에도 꽤 만족스러운 답안지를 써서 제출했다. 답안지를 제출하며 교수님께 꾸벅 인사를 하고 나왔다. 교수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주셨다.
그렇게 금요일까지 기말고사를 다 치고 나서 교수님께 메일을 드렸다. 덕분에 모든 시험에 다 응시했다고.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교수님께서 답장을 주셨다.
부모님 집으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조금 울었다. 내 1학년의 마침표는 그렇게 지도교수님께서 찍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