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지적 사치' 부리지 말아라.
압박감의 실마리
내가 그런 압박감을 가지게 된 건 내가 20살 때였다.
내 첫 번째 수능 점수는 내 기대에 못 미쳤다. 내가 고등학교 내내 ‘나는 여대는 안 가!’라고 외친 걸 비웃기라도 하듯 한 여자대학교만 나를 합격시켜주었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여대에 진학했다. 청소년기 내내 공학만 다닌 내게 여대의 분위기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평소보다 훨씬 낮았던 수능 점수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아빠가 반수를 원했다. 나에게 더 높은 대학에 대한 바람을 계속 불어넣었고 나는 반수를 결심했다.
나는 다시 한 번 수능을 준비하겠노라고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다. 부모님은 그런 내 선택을 온전히 지지해주셨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큰집에서 친척들에게도 전했을 때였다.
“저는 수능을 한 번 더 치려고요.”
사촌언니, 오빠는 의아해했다. 네가 지금 다니는 학교도 충분히 좋은 곳 아니냐고.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내 성에 차지 않았으니 그런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 날 늦은 밤. 큰아빠께서 나를 불러 앉히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네 만족만을 위해 지적 사치 부리지 말아라.”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집 상황을 잘 알고 하신 말씀이었다. 부모님께서는 빚을 내서라도 공부는 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계셨지만 큰아빠께서는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충분히 좋은 대학교에 합격해서도 수능을 한 번 더 본다는 것이 ‘지적 사치’라고 느껴지셨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사치’를 부리려고 큰아빠의 동생인 우리 아빠를 내가 더 힘들게 하는 거라고도.
그때 당시에는 ‘아빠도 반수하라 했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몰래 입을 비죽였다. 하지만 그 말은 내가 두 번째 수능에서 만족스러운 점수를 받고 새로운 대학교로 진학할 때까지 잊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살아야만 했다. 내 두 번의 대학 진학이 ‘지적 사치’가 되지 않도록 부모님에게 경제적 짐을 지우지 않아야 했고, 좋은 결과물을 내야 했다. 평일엔 과외를 하고 주말엔 알바를 했다.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남는 시간에 잠을 줄여 공부했다. 당연히 힘들었다. 그렇지만 버텨야했다. 그리고 그때엔 버틸 힘이 있었다. 그래서 할 수 있었다.
내가 로스쿨 진학이 확정됐을 때에도 큰아빠께서는 같은 말씀을 하셨다. 나는 그때 다시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3년 안에 졸업해서 첫 변호사시험에 붙어 엄마, 아빠의 짐을 덜어드려야겠다고.
로스쿨에 들어가 1학년을 그리고 2학년을 그 생각으로 꾸역꾸역 버텼다. 내가 휴학을 하면 돈을 버는 시기가 늦어지는 만큼 엄마, 아빠가 더욱 힘들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는 버틸 힘이 없었다. 내 안의 모든 힘을 끌어 쓰고도 부족했다.
지금에서야 생각한다. 그때 그 압박감을 조금 내려놓고 쉬어갔더라면, 지금 이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까?
엄마, 아빠는 큰아빠께서 내게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최근까지도 몰랐다. 내가 엄마, 아빠를 생각해서 그런 압박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을 하면 분명 속상해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는 그 사실을 큰아빠께 듣고 왔다.
카페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가 그랬다.
“큰아빠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었다며?”
그때 나는 무언가 마음에서 사르르 녹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녹은 것이 눈물이 되어 뚝뚝 떨어졌다. 민망해서 웃음이 났다. 하지만 엄마는 역시나 웃지 못했다. 미안했지만 후련했다.
“응. 사실 나 그래서 많이 힘들었어.”
거의 10년 동안 나를 짓누르고 있던 압박감이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말 한 마디로 생긴 돌덩이가 말 한 마디로 사라졌다.
그렇게 내 휴학에 정당성이 부여됐다. 이제 좀 쉬어가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