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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Oct 12. 2022

07. 우울증이 '마음의 감기'라고?

도저히 낫지 않던데.






 하지만 이별엔 이유가 있었다. 나를 자주 울게 했던 그 친구의 습관과 성격은 나를 또 울게 만들었다. 나는 힘들 때 사람이 필요했고, 걔는 힘들 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가 크고 작은 다툼을 할 때마다 걔는 내 옆에 없었다. 잠수를 타는 시간도 있었다.


 다시 만나보기로 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걔는 동생의 병원에 함께 가주어야 한다고 했고 나는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반나절이 넘도록 연락이 되지 않았다. 나는 연락이 되지 않기 시작하자 아팠다. 잘못 먹은 것도 없는데 배가 아팠다. 과도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사실 몇 시간 되지도 않는 시간이었는데 걔가 그렇게 또 사라져 버릴까봐 불안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었다. 우리 정말 그만 만나자고, 이번엔 내가 이야기했다. 좋아하는 감정은 있었지만 함께하는 일이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나도 울고 걔도 울었다. 둘 다 알고는 있었지만 직면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해야할 말이었다.


 그렇게 나는 3년의 연애를 마무리했다.




 그 무렵 정신과를 다시 찾았다. 이사를 하고 학교 바로 앞에 있는 병원에 가장 빠른 예약을 잡아달라고 했다. 그리고 거기서 김 선생님을 만났다. 제 2원장, 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젊은 여자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아주 따뜻하고 친절하셨다.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셨고 실제로 도움이 될 만한 조언들을 해주셨다. 섣부르게 운동을 해보자던가, 하는 말은 없었다. 선생님의 제안은 하루 한 번 해 뜨는 시간에 나가기, 약 거르지 않기, 병원 함부로 끊지 않기, 였다. 그 외에도 내 이별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나눠주셨다.


 여러 선생님을 만나본 지금 느끼는 거지만 김 선생님은 약물 치료과 병행하여 상담치료를 참 잘 해주시는 분이었다. 그때 나에겐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고, 그래서 김 선생님과 잘 맞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김 선생님은 나에게 가장 필요한 영향을 미친 사람 중 한명이다.




 하지만 나는 이미 너무 많이 망가져있었고 단기간에 회복하기엔 힘이 들었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들 하는데 나는 그 말이 왜 생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렇게 오래도록 나를 힘들게 하는데 고작 ‘감기’라고 치부되는 것이 싫었다. 치사율은 잘 모르지만 ‘마음의 암’ 정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고통스러웠다. 남들은 잘만 살아가는데 나 혼자만 이렇게 괴롭다는 것이 못 견디게 우울했다. 게다가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해야할 때였고 그런 신분이었는데도 나는 계속 학교 밖으로만 돌며 즐겁기만 한 자극을 찾는 것이 한심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못 살 것 같았다. 그 순간에라도 내가 웃고, 사람을 만나고, 그렇게 살아있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또 내가 그 횡단보도 앞에서처럼 벼랑 끝에 있을지 몰랐다.


 성적이 떨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특목고를 나온 덕에 내신이나 등수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법을 배웠지만, 내가 지금까지 해온 공부의 양에 비해 훨씬 열심히 했는데도 등수가 오르지 않는 건 스트레스였다. 사실 오르기는커녕 떨어지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더 절망했고, 스스로를 더욱 극한으로 밀어붙였다. 점심 전 학교에 나가 새벽 서너 시쯤 집에 들어왔다. 몸이 상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나는 버텨야만 했다. 어떻게든 3년 안에 졸업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다.


 그때 멈췄더라면, 그때 잠깐 쉬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는 이제야 드는 생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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