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나는 왜 하필 공부를.
2020년의 기억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2020년은 코로나로 인해 거의 모든 수업이 비대면으로 진행된 덕분에 나는 더욱 방에 틀어박혀 살았다. 만약 그때에 대면수업에 출석해야 했다면 나의 휴학은 더욱 빨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불 속에 누워서 어플만 켜면 출석이 되는 시스템은 내가 1년을 더 버틸 수 있게 해주었다.
1년을 꾸역꾸역 버틴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의미 없었다. 아침엔 수업을 틀어놓고 자고, 저녁이 되면 조금 살아나 놀러 다녔다. 변명 같을 수 있지만 그렇게라도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정말 내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 내가 유일하게 ‘살아있음’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당연한 수순으로 성적은 바닥을 찍었고, 내 평균학점을 계산해본 나는 내가 전체에서 몇 등을 했는지도 행정실에 문의해보지 않았다. 만약 정말 꼴찌를 했다면 자괴감에 휩싸여 영영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자기방어였다.
그러던 2020년 8월 한참 더운 여름날, 새로운 애인이 생겼다. 첫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에 많은 인연들이 있었지만 인연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할 만큼 짧은 만남들이었다. 이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을 지나 나보다 4살 어린 남자친구와 만났다.
그 애는 나와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나는 내내 공부만 하고 살았다면, 걔는 공부 빼고 다 해보면서 살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연극판에 뛰어들었고, 19살 때 연기로 우리나라에서 이름을 날리는 곳에 합격했음에도 진학하지 않고 직접 창작집단을 꾸려나갔다.
나보다 꽤 어렸던 그가 왜 그렇게 좋았을까 돌이켜보면, 내가 가지 못한 길을 가고 있는 것에 대한 선망 같은 감정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때에도 글 쓰는 것을 좋아했고, 직접 연출을 맡아하는 그 친구와 참 많은 감정적 교류를 했다.
그 친구가 한 번쯤 연출해보고 싶다던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내가 스토리를 붙여 쓴 글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걔는 함께 연극을 하는 한참 위 선배들에게 그 글을 보여주며 내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연극도 제대로 봐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 이런 분위기를 글로 써낼 줄 안다고.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 그 모습을 본 나는 내가 그래도 쓸모없는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했다. 공부가 제대로 되지 않으니 다른 곳에서라도 나의 잘난 구석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꽤 설레고 즐거웠던 연애가 오래가지 못할 것임을 느낀 건 2학기 중간고사 즈음이었다. 그날도 공부가 힘들었고, 항상 그랬던 것처럼 남자친구에게 전화로 징징대는 소리를 했다.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걔가 그랬다.
- ‘누나는 공부가 그렇게 싫은데 왜 공부를 해?’
‘응?’
- ‘누나 정도 능력이면 지금 당장 취업도 할 수 있잖아. 왜 굳이 그렇게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냐고.’
걔한텐 아주 당연하고 옳은 말이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아왔으니 그렇게 하기 싫다는 공부를 꾸역꾸역 하고 있는 내가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공부라는 건 그냥 내 인생이었다. 으레 공부를 해야 하는 줄 알고 컸고, 내 재능과 환경이 뒷받침 해준 덕분에 좋은 결과들을 맺어왔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관문인 로스쿨에 다니는 중인데 거기서 갑자기 내가 평생 해 온 공부를 접고 아무데나 취업을 하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때 나에게 던져진 짧은 의문은 내 안에서 걷잡을 수 없는 일렁임을, 아니 파도를 만들어냈다. 나는 정말 공부를 그만 해야 하는 걸까? 내 머리와 노력으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걸 해내겠다고 아등바등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 굳이 변호사여야만 하는가?
안 그래도 공부가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아 심란하던 때에 공부를 하는 근본적인 이유마저 잃게 되자 나는 더더욱 가라앉았다. 학기가 끝나갈 즈음 기말고사를 앞두고 그 친구와는 헤어졌다. 그를 만나며 잠시 안정을 찾았던 나는 다시 방황을 시작했다.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악순환의 고리에 제대로 빠져버린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