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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Dec 01. 2022

13. 사람은 혼자 살지 못한다.

나의 탈출기






 처음엔 방의 창문으로 시작했다. 방을 24시간 컴컴하게 하던 암막커튼을 쳐내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이 방을 계약할 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넓은 창이 그제야 제 기능을 했다. 해가 들어오고 방 안이 밝아졌다. 바람이 드나들고 공기가 개운해졌다.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조금, 알 것도 같았다. 




 그다음은 집 앞 카페였다. 여자 사장님 혼자 하시는 작은 디저트 가게에선 항상 고소하고 달달한 향이 났다. 시럽이 아닌 파우더로 바닐라 라떼를 만드는 곳은 잘 없는데 거긴 바닐라 파우더를 썼다.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어 그 카페를 가기 시작했다. 물론 디저트가 끝내주게 맛있다는 점도 좋았다.


 보통 낮 12시쯤 겨우 일어나 모자를 푹 눌러쓰고 카페를 가다 보니 사장님도 나를 기억해주셨다. 손님에게 인사하는 것도 용기를 내시는 것 같아 보일 정도로 낯을 가리시던 사장님은 어느새 나와 수다를 떨고 있었다. 오늘은 많이 덥네요. 코로나가 이러쿵저러쿵. 별거 없는 대화일 뿐임에도 나는 나의 존재를 알아주는 사람이 집 가까이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초여름 무렵. 우연한 기회로 한 친구를 만났다. 나는 휴학 중이었고 그 친구는 일을 쉬고 있는 중이었다. 둘 다 시간이 여유로웠기에 밤을 새워서 통화를 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하루 종일 수다를 떨었다. 오랜만에 생긴 친구인 데다가 공통 관심사도 많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거웠다. 안정적이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다는 게 어떤 것인지 오랜만에 느꼈다.


 그 친구도 개인적인 일로 나와 같이 힘들어하던 시기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 일어나는 것을 도와주고 싶다고도 했다. 그리고 그는 정말로 내가 혼자 힘으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길러주기 위해서 부단히도 노력해주었다. 아침 8시에서 9시 사이에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내가 졸음을 참지 못하고 헤롱대는 동안 그 친구는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시켰다. 내가 깨어날 수 있도록. 겨우 눈을 뜨고 나면 녹차를 우리고 설탕 한 스푼을 넣었다.


 내가 아침에 조금 정신을 잘 차리게 되었을 때 그 친구는 나를 밖으로 꺼냈다. 그렇게 아침에 눈을 떠 양치를 하고 카페에 가서 커피를 사 와 9시부턴 유튜브로 주식 방송을 보고 점심을 만들어 먹는 것이 나의 모닝 루틴이 되었다. 그 모든 과정을 그 친구는 거의 매일 전화로 함께 해주었다.


 조금 이상하기도 궁금하기도 했다. 어떻게 철저한 남인 나에게, 잘 쳐줘봐야 친구인 나에게 그렇게까지 열심히 노력해줄 수 있는지. 그저 걔가 '착한' 사람이라는 것으론 부족했다. 내가 많이 기력을 찾은 어느 날은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 너는 왜 나에게 그렇게까지 열심히냐고. 그랬더니 그 친구가 그랬다.



 '내가 뭘 해주는 거라고 생각하지 마. 모든 변화는 네 의지로 네 스스로 이뤄나가고 있는 거니까. 난 그 시작을 조금 도와주는 것뿐이야.'



 자길 구원자로 생각하지도 않았음 좋겠다고 했다. 어찌 되었든 나에게 그렇게나 도움을 주고 있던 친구의 말이었기에 나는 그 말을 따르려 노력했다. 내가 내 손으로 일구어 낸 내 생활의 변화라는 건 나에게 참으로 의미 깊었다. 무언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가 일로 바빠지면서 연락이 뜸해지고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쯤. 지금의 애인을 만났다. 연애라는 게 으레 그러하듯 우린 서로에게 호감을 품고 그 마음을 조금씩 드러내다가 마침내 연인이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걱정이 많았다. 친구 사이였을 때도 애인은 아주 착하고 좋은 사람이었고 내가 그 사람의 연인이 되었을 때 내가 가진 불안과 불안정함이 그를 힘들게 하지 않을까. 지치게 하지는 않을까. 그런 고민들을 했다.


 하지만 우리가 연인 사이가 되고 내가 나의 어두운 면모들을 조금씩 가끔은 와르르 쏟아내 보여줄 때 애인은 나를 단단히 안아주고 받쳐주었다. 그때뿐일 거라고 생각했다. 연애 초엔 다들 그러니까. 그런 나의 의심에도 애인은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의 관계가 긴밀해질수록 그는 나에게 소홀해지는 것이 아니라, 긴밀하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주었다. 내가 그를 힘들게 해서 그가 나를 떠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사라졌다. 나는 내가 힘들 때마다 그를 찾고, 그는 여전히 나를 안아주기 위해 달려온다. 그리고 그걸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라며 웃는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었다. 내가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새벽에라도 전화를 걸면 받아준 친구들. 우리 동네로 와 나를 만나 밥을 먹이고 웃을 수 있도록 만들어 준 친구들. 힘든 내게 이렇다 할 말 없이 항상 밥값을 내주던 선배들. 내 친한 친구들에게 나를 잘 챙겨달라는 부탁을 하며 우리에게 밥을 사주신 지도교수님. 


 나는 혼자 살아남은 것이 아니다. 내가 이 땅에 두 발 딛고 서있을 수 있도록 해 준 그 따뜻한 노력들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내가 다시 세상을 등지고 싶을 때, 혼자만의 늪으로 가라앉아버리고 싶을 때, 그 따뜻함으로 내 마음을 녹이고 나는 당당하게 다시 설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할 것이다. 당신들 덕분이라고. 그래서 내가 여기 서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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