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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Jun 03. 2023

별 것도 아닌 일상

2023년 6월 3일의 기록






 '우울증 완치'

 '우울증 극복'


 네모난 검색창에 그런 글자들을 넣어 엔터를 누른다. 다양한 의원 광고들과 극복 후기담들이 함께 나온다. 추리고 추려 괜찮은 글을 읽어보면 모두 내가 아는 이야기이다.


 '운동을 해라.'

 '햇빛을 쐬자.'

 '일기를 쓰자.'


 다 아는 이야기. 하지만 실천하지 못한, 혹은 실천하려다 실패한 이야기. 나는 더욱 우울해진 채로 인터넷 창을 닫는다.




 누군가에겐 너무 당연한 일상이고 누군가에겐 엄청난 노력의 산실일 저 작은 일들이 왜 나에겐 불가능한지. 왜 도전조차 하기 두려울 정도로 버거운지. 왜 노력조차 할 수 없는 건지.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를 더 깊은 나락으로 끌고 들어갔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 나보다 오래 정신과를 다니고 있는 친구들에게 물었다. 대체 언제쯤 나아질 수 있는 거냐고. 그들도 아직까지 약물 복용을 하고 있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징징댔다. 그랬는데도 친구들은 다 이해한다며 나를 토닥였다.


 "네가 하지 못하는 걸 능력 부족이 아니라 병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가장 중요해. 근데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럽고 지난하다는 거, 나도 알아."




 나는 지금까지 뭐든 다 해내고 살아왔다. 힘들어도 노력하면 어느 정도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었다. 그랬던 나에게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생활을 하는 작은 일상이 이렇게나 버겁다는 것이 스스로 받아들여지지가 않는 거다. '작은' 일상이라고 생각하니 더더욱 그렇다. 그 별 거 아닌 일을 해내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한심하고 힘이 빠진다.


 '작은 일부터 시작해 보자.'고들 한다. 물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을 '매일', '꾸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내 마음이지만 참 내 마음 같지 않아서 오늘만 해보자, 라고 생각을 해도 그것을 하루 이틀 하고 나면 '매일'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래서 또 나는 거기서 좌절한다. 매일같이 무언가를 할 힘이 없다고 느끼고 거기 주저앉고 만다.


 '주저앉으면 거기서부터 다시 일어나면 된다.'고도한다. 하지만 나도 사람이다. 백 번을 주저앉았는데 백 한 번을 다시 일어서기란 정말이지 힘든 일이다. 백 한 번 주저앉았을 때엔 이번에도 역시나 싶은 마음에 일어설 힘을 더더욱 잃는다. 그렇게 나는 악순환에 빠져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요즘 정신과 선생님께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직면'이다. 내 상황과 능력을 똑바로 바라보고 두려워도 시도해 보고, 안 되면 낮은 수준으로라도 매달려보는 것. 공부가 하기 싫고 잘 되지 않는다면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터디 카페에 가보라고 하셨다. 가서 잠을 자든 핸드폰을 가든 그 시간에 꾸준히 거기 앉아있어 보라고.


 밤에는 항상 다짐을 하며 잠든다. 내일은 꼭. 아침에 일어나야지. 스터디 카페를 가야지. 운동을 해야지. 하지만 해가 중천이 되어 눈을 뜨면 세상 모든 자괴감이 나에게로 달려든다. 역시나 오늘도 실패했구나. 침대 밖을 벗어날 힘도 용기도 나지 않는다. 그렇게 하루가 의미 없이 지나간다. 그리고 그러한 하루를 보낸 내가 밉고 한심해서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렇게, 다음날의 에너지마저 나는 스스로 앗아간다.




 나를 사랑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 있음을 안다. 그들은 언제나 나를 응원해 주리라는 것도 알고, 내가 어떤 모습이든 나를 애정으로 지켜봐 줄 것도 안다. 하지만 그러한 믿음들은 내가 그들을 생각해도 일어설 수 없을 때, 그들의 애정만큼 끈끈한 부담감이 되어 날 옥죄고 또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어제는 도저히 기운이 나지 않아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밖에 나가서 마실 거라도 사 오자며 나를 집 밖으로 끌어냈다. 날은 선선했고 해도 강하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하는 아이스 초코를 사서 공원으로 걸어가는 길에, 문득 눈물이 났다. 이 좋은 날에 그냥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무섭고 서러워서,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공원 놀이터에는 어린아이들이 뛰어놀았고, 먼 벤치에는 아주머니들이 모여 싱그러운 수다 삼매경이었다. 내 옆 벤치에 앉은 할아버지는 비둘기에게 라면 부스러기를 던져주고 열심히 주워 먹는 모양을 구경하셨다. 그 공간에서 나만 흑백인간이 된 것 같았다. 모두가 생기를 뿜어내며 살아가는데 나만 같은 자리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며 나아가지 못하는 렉 걸린 비디오가 된 느낌.


 그래도 사라질 수는 없었다. 죽을 수도 없었다. 어떤 시간이라도 흘려보내고 살아가야만 했다. 사람들과 부대끼는 곳에서 그 살아있는 싱싱함을 느끼고 나눠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공원 바로 앞에 있는 전통시장으로 무작정 향했다. 입구 야채가게의 야채들이 얼마나 푸른지, 체리는 얼마나 발갛게 익었는지 구경했다. 빵집에선 고소하고 따뜻한 냄새가 났다. 두부 가게엔 퐁실하고 하얀 두부가 가지런했고, 분식집의 순대에선 김이 폴폴 났다. 눈물이 그쳤다. 배가 출출했다. 저녁에 무쳐먹을 상추와 아삭이 고추를 사고, 반찬 가게에서 좋아하는 오이소박이도 한 통 사고, 돌아오는 길엔 두부가게에서 점심에 먹을 묵사발 한 그릇을 샀다. 만 원 정도가 들었다. 그것이 어제 나를 살게 했다.




 별 것도 아닌 일상이 그렇게나 힘든데, 또 별 것도 아닌 일상이 날 일으킨다. 나는 그것이 참으로 요상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삶이란 것이 거창한 게 아니구나, 깨닫는다. 내가 공부를 하루, 이틀 길게는 몇 주 하지 못해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 나는 잘 살아있고, 또 앞으로도 잘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직면. 해야 한다. 도망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나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주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을 갖다 보면 어느 순간은 직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내가 내 상황을 받아들이고 노력하고 있을 것을 믿기에. 내가 이렇게 망가지기 전까지 잘 살아온 시간들이 나를 지탱해 줄 것이라고 믿기에.


 별 것도 아닌 일상을 오늘도 살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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