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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Oct 06. 2022

03. 어느 날 갑자기 下

세상이 나에게로 무너졌다.






 엄마의 유방암이 발견될 때 쯤, 나는 법학 관련 공모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로스쿨 입시를 위한 스펙을 쌓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1년의 휴학을 생각하는 중이었고, 그 휴학의 시작인 여름방학을 그때까지 내가 그래왔던 것처럼 ‘잘’ 보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뭐든 ‘잘’ 해내야 하는 삶이었기에 쉬는 시간도 살뜰하게 ‘잘’ 쉬어야만 했다.




 나는 로스쿨을 준비하는 학부생이었고 공모전을 함께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내가 속한 대학교의 법학전문대학원에 재학 중인 석사생들이었다. 내가 제일 막내였다. 나는 학부 선배들에게 했던 것처럼 싹싹하지만 똑 부러지게 굴었다. 로스쿨생 중에서도 나이가 많은 편에 속했던 오빠들이 특히 나를 예뻐하며 내 부족한 법 지식을 메꿔주었다.


 그때 당시 집에서 학교까지는 편도 한 시간 반의 먼 거리였다. 하지만 학교 앞 치안이 좋은 동네에서의 자취는 너무 부담스러운 금액이었기에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냥 원래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매일 걷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서 학교에 도착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조금 힘들다, 라는 생각을 하긴 했다. 공모전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었고 지하철에선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다. 2호선이 지상으로 올라가 한강을 건널 때였다. 갑자기 숨이 지나치게 가빠왔다. 노트북 파우치에 올려놨던 손이 불안으로 덜덜 떨렸다. 머리가 띵해지더니 핑글 돌았다.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온 세상이 내 쪽으로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점점 작아지고 내 자리가 비좁아졌다. 나는 어떻게 하지 못하고 숨을 헐떡이며 눈을 질끈 감았다 뜨기만을 반복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가 지났는지도 모르고 눈을 부스스 떴다. 세상은 평온했다. 내가 발 딛고 있던 땅에만 지진이 일어났다가 멈춘 것 같기도 했다. 지하철은 이미 지상 구간을 지나 지하구간을 지나고 있었다.




 그땐 그게 어떤 증상인지도 모르고 그렇게 지나갔다. 이상하지만 신기한 경험, 그 정도로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내 첫 공황발작이었다. 로스쿨생들에 비해 법적 지식이 부족했던 나는 그 간극을 시간과 노력으로 메꾸려고 했고 그때까지 그래왔듯 잠을 줄였다.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학교의 법학관으로 출퇴근 하는 것도 꽤나 지치는 일이었는데 잠까지 줄였으니 몸은 지친 상태였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실력의 격차가 나에겐 큰 부담감으로 다가온 모양이었다. 그때 나는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데에 익숙하지 않았고, 그래서 ‘부담’을 ‘피곤’이라고 치부해버렸다.


 평생을 압박 속에 살아온 나에게 ‘부담감’이란 아주 익숙한 감정이었으니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중학교 때엔 외고 입시를 위해서, 고등학교 때엔 대학 입시를 위해서, 대학교 때엔 로스쿨 입시를 위해서, 참 절박하게도 살았다. 그 입학을 해내지 못하면 내 인생이 끝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나를 매일 벼랑 끝으로 밀었다.


 그래서일까. 머지않아 나는 정말 벼랑 끝에 발 하나로 위태롭게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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