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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Oct 08. 2022

04. 벼랑 끝에서

2018년 초






 * 자살사고에 트리거가 있는 분들은 주의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추운 겨울날이었다. 그날 내 옷차림을 아직도 기억한다. 빨간 후드티에 검정색 롱패딩을 입고 있었다. 휴학 중이었지만 일이 있어 학교를 가야 했다. 10여 분을 걸어 지하철역에 거의 도착해 역 입구 바로 앞에 있는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역 앞 왕복 4차선 도로였기에 차들이 쌩쌩 달렸다. 그때 문득 생각했다.



 ‘뛰어들고 싶다.’


 ‘그럼 학교 안 가도 될 텐데.’



 내 두 발이 주춤대며 인도 끝으로 다가섰다. 나는 그 벼랑 끝으로 스스로를 내몰았다. 그렇게 혼자 죽음의 경계에 서있을 때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나는 도망치는 듯 한 심정으로 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나 자신이 무서웠다.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게, 그리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려고 했다는 게 소름이 돋을 정도로 공포스러웠다. 곧 보행자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고 내 옆에 서있던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넜지만, 나는 한 걸음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한동안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멍하니 차들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앞으로 잘 살아나갈 수 있는 걸까?’



 똑똑하고 영민하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산산조각 났다.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뭘 해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때부터 지나치게 잠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또 죽음의 경계에 서게 되는 생각을 할까봐 두려웠다. 나는 잠으로 도피했다.




 그때 나는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스터디 그룹을 짜주었고 그들과 함께 문제풀이를 하고 책을 읽어야 했다. 그렇지만 그걸 빼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았다. 부모님은 아침에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매일 잠만 자는 내가 걱정스러웠는지 내 잠을 자주 방해했다. 그들에겐 ‘깨워주는’ 것이었겠지만 나에겐 귀찮았던 것도 사실이다. 나는 겨울잠이 필요했지만 엄마, 아빠 눈에는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애가 하루 종일 누워있으니 답답할 만도 하겠다 싶긴 했다. 그러나 나에게 그들의 마음까지 헤아릴 여유는 없었다.


 내가 나에 대해 말하지 않았으니 엄마, 아빠도 나의 상태를 몰랐다. 서로에 대한 오해가 쌓이고 다툼이 잦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별 거 아닌 일로 또 아빠와 부딪혔다. 나는 그 상황이 답답하고 화가 나서 엉엉 울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숨이 막혔다. 뇌까지 산소가 전달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숨을 헐떡거렸다. 엄마는 놀라서 물을 가져다주었고 나에게 심호흡을 해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네가 뭐가 그렇게 힘든데?’



소리치는 아빠의 말은 가슴에 쿡 박혔다. 그때 나는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정신과 약을 복용 중이었고 아빠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죽 힘들면 약까지 먹겠어, 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숨을 몰아쉬기에 바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빠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이해된다. 아빠의 학원은 거의 문을 닫을 위기였지만 돈을 벌어 와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부담감과 책임감이 배가 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엄마는 유방암 치료를 하고 있었고, 나는 돈이 그렇게 많이 든다던 로스쿨 입시를 준비했으며, 동생은 임용고시를 바라보는 대학생이었다. 아빠도 그 시간이 참 힘들었을 거다. 하지만 이건 내가 지금 와서야 그때의 아빠를 바라보며 하는 생각이지 그때 숨을 헐떡이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 이후로 한동안 아빠 얼굴 보는 것이 불편했다. 자꾸 그 말이 귀에 맴돌아서.



 ‘네가 뭐가 그렇게 힘든데.’



 내가 나에게 하고 있는 말이기도 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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