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초, 아직 한여름 날씨다. 하복이라지만 여름에 양복을 입는 것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평소 존경하는 모 선배 교수님 딸의 결혼식을 축하하러 가는 자리이기에 오랜만에 양복을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평소 택시를 잘 타지 않는데, 식장의 위치가 대중교통으로 가기 애매하고 날씨도 더워서 택시를 타기로 했다.
여러 대의 택시가 지나갔지만 더운 날씨 탓인지 모두 손님이 타고 있었다. 빨리 빈 택시가 오기를 기대하며 도로 가에서 목을 쑥 빼고 택시를 기다렸다.
잠시 후 빈 택시 한 대가 달려오더니 내 앞에 정차를 했다.
“어서 오세요” 택시 기사가 친절하게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양복 상의를 손에 들고 뒷좌석에 올라타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상쾌함을 안겨다 주었다.
‘오늘 같은 날씨에는 택시를 타기 잘했어!’하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 안에서 침묵이 흘렀다. 창밖을 내다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혼자의 시간을 즐기고 있는데, 택시의 문짝 슬라이딩 윈도의 유리 사이에 꽂혀있는 ‘5시간 후에 제거하세요’라는 안내문의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선팅을 새로 했는데 마를 때까지 제거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택시 내부가 깨끗하고 새 차 냄새가 나는 게 차를 산지 오래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차를 새로 산지 얼마 안 된 모양이죠?” 택시 기사에게 말을 건넸다.
“사장님이 이 차의 첫 탑승자입니다.”
“네?, 제가 이 차의 첫 손님이란 말이에요?”
“그렇습니다. 지금 차고에서 선팅 하고, 내비게이션 달고 처음 나오는 길입니다.”
순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새 택시의 첫 손님이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복권 당첨 확률이나 아마추어 골퍼들이 홀인원 할 확률과 마찬가지일 것 같다.
잠시 후 기사는 말을 이었다.
“첫 손님으로 신사 분을 태워서 기분이 좋네요.”
아마 넥타이를 매고 깨끗하게 단장한 중년 신사가 첫 손님이어서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 차 사신 것 축하드립니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택시 기사와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 경기가 너무 안 좋고 세상 분위기도 어수선하여 살아가기가 힘들단다. 세상 민심이나 체감경기는 택시기사가 가장 잘 느끼고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어느 듯 목적지에 가까워졌다. 택시요금이 할인되는 신용카드가 있어 그 카드로 계산할 요량이었으나 첫 손님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도 그렇게 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날 것 같았다.
‘현금으로 얼마쯤 드릴까?’ 고민이 되었다. 첫 손님으로 타서 택시 요금만 계산한다는 것은 너무 야박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어릴 적 나의 부모님들께서는 다른 사람의 집들이나 개업식에 갈 때 성냥이나 양초 등을 가져가셔서 살림이 불꽃처럼 일어나라고 빌어주던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비가 4,500원 나왔으니 만원 정도 드리면 될까’
‘아니야, 그 정도는 안 돼.’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새 차 사신 것 축하드립니다.” 택시비에 나름의 마음을 보태어 2만 원의 현금을 내밀었다.
“아이고, 아닙니다 사장님. 만원만 주셔도 대단히 감사한데...” 기사는 만 원권 한 장을 다시 다시 돌려주려고 했다.
“괜찮습니다. 사업 잘 되길 빕니다.”
내가 첫 손님이었던 택시가 사업이 번창하길 바라는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
택시 기사는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씩 한 후 출발했다. 나의 시야에서 그 택시가 벗어날 때까지 비상 깜빡이가 깜빡거리고 있었다.
택시를 보내고 결혼식장으로 걸어가면서 곰곰이 생각해봐도 내가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 것 아니지만 기사가 그렇게 고마워하는 것을 보니 내 기분도 좋았다. 비록 작은 성의이지만 그 기사가 좋은 기분에 다른 손님에게 좀 더 친절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가져 보았다.
내 인생에서 다시는 올 수 없는 기회로 ‘운수 좋은 날’이라는 단어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