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년은 조경업체 사모님
“ 자기야, 마당 다 끝냈어! ”
“ 이..... 게???? 잡초 저기도 있고 저기도 있는데? ”
“ 그럼 네가 해 ”
“ 오우 근사하다 여보 ~ ”
우리 집은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자그마한 2층 집과 집보다 더 큰 마당이 있다. 처음 집을 보러 온 날이 생각난다. 큰 나무가 있는 마당이 너무 매력적이라 고민할 필요도 없이 바로 계약을 진행했다. 계약할 때 집주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 마당에 잔디를 해드릴까요? 블록을 해드릴까요? ”
“ 어머 당연히 잔디죠! 제 로망인걸요! ”
“ 아... 잔디..... 알겠습니다... 원하신다고 하시니... ”
"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 "
앞날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그저 시시덕거리던 과거의 나님아...... 머리 박아, 어서.
두 달 뒤, 5톤 트럭과 함께 육지를 떠나 내려왔다. 이삿짐을 풀고 나니 그제야 창 밖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는 정글이 펼쳐져 있었다. 곶자왈 숲 한가운데에 이사를 왔나 싶었다. 5살 아이의 뒷목이 자연스레 접혔다. 본인의 키를 훌쩍 넘어선 잡초를 보고 누가누가 더 큰 지 알려달라고 쫑알거렸다. 셋이서 마당 한가운데에 서 있는데 발이 보이지 않았다. 잔디 속에 완벽히 숨어버렸다. 우리가 없는 두 달 동안 제주의 해, 바람, 비 아래 그것들은 놀라운 성장을 했다. 마당 끝 도토리나무까지 가려면 풀숲을 헤쳐나가야만 했다.
'새하얀 나무 테이블을 이쯤에 둬야겠어!'
긍정 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아직 누구도 이름을 붙여주지 않아 잡초인 거라며, 너희도 소중한 풀과 꽃이라며 무한 긍정 회로를 돌렸다. 유럽 시골집 마당 부럽지 않을 나의 러프한 가든이 그려졌다. 자연빛으로 물든 테이블보를 깔고 그 위에 직접 만든 버터 내음 가득한 브런치 플레이트와 따뜻한 커피를 준비하면 너무나 근사할 것 같아 상상만으로 광대가 떨려왔다.
크... 좋아요 쏟아지는 소리 들려온다, 꾹꾹.
‘ 잔디 깎기 1회에 13만 원 ’
제주의 캐롯 마켓에는 물건만 파는 게 아니라 서비스도 판다. 세차, 페인트, 돌담 그리고 정원관리도 있다. 업체에 도움을 요청한 적이 있다. 무려 13만 원! 여름에는 장마라도 오면 일주일에 한 번은 관리를 해줘야 한다. 잡초는 약만 뿌려주고 뽑는 건 온전히 정원 소유자의 몫이다.(물론 돈을 더 내면 잡초 정리해주는 업체들도 있다.)
13만 원의 값어치는 아쉬웠다. 기대가 컸던 건지, 부랴부랴 끝내신 건지, 그리고 마당에 있던 테이블은 왜 부러뜨리고 말도 없이 가신 건지, 속상하고 돈이 아까워 불날개에 맥주 한 잔 하며 털어버렸다.
며칠 뒤, 남편이 내게 핸드폰 화면을 스윽 보여줬다. 잔디 깎기 기계!
13만 원 돈을 주고 업체를 부를 바에 기계를 사서 직접 깎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이걸 받아줘 말아? 결국 육지에서 거대한 그 존재가 배를 타고 왔다.
목 늘어난 반팔티에 스포츠 브랜드 반바지를 입고 3년 된 슬리퍼를 신은, 그의 첫 잔디 깎기 룩은 대 실패였다. 제주 햇살을 우습게 안 육지 것의 안일함 그 자체였다. "아빠 팔이랑 다리가 왜 그래요?" 벗어도 갈아입어도 늘 옷을 입고 있는 그의 보디페인팅은 5살 아이 눈에도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입도 2달 차, 제주에게 제대로 한 방 맞았다.
다음 시도는 제법 그럴 싸 했다. 다이소 천 원짜리 짚 모자를 쓰고, 긴 남방에 긴 바지 그리고 정강이까지 올린 양말 하지만 여전히 슬리퍼인 뉴 룩을 선 보였다. 해가 지면 그는 이 복장으로 현관을 나섰다. 잔디를 깎는 남편의 뒷모습에는 뿌듯함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렇게 남편의 취미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지인들과의 만남에 남편은 늘 가드너인 본인의 모습을 화젯거리로 올리곤 했다. 그러다 제주 12년 차를 만난 날, 남편의 표정은 흐려졌다.
" 잔디만 깎다니? 잔디에 시바겐도 뿌려야지 ~ 판데스는 했고?"
무지한 육지 것들은 전혀 몰랐다. 마당에 잔디를 심은 집주인은 잔디도 깎고, 잡초도 뽑고, 제초제도 뿌리고, 인체 무해한 살충제도 뿌리고, 지네 거미 약도 뿌려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잔디로 결정한 나의 입방정이 몇 날 며칠 떠올랐다. 남편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더군다나 제주의 여름은 햇살만큼이나 비도 어마 무시했다. 이 작은 섬이 가라앉을 정도로 퍼붓고 또 퍼붓고, 그렇게 매서운 비가 지나가면 (입술에 침 조금 발라) 잔디가 무릎까지 자라 있었다. 거실에서 창 밖을 내다보는 남편의 뒷모습에는 무거움이 흘러넘쳤다.
새벽 즈음, 지독하게 내리던 비가 멈췄다. 어제와는 다르게 조금 이른 시작을 해본다. 따뜻한 차를 한 잔 우려 어제 그 자리에 서서 창 밖을 바라보았다. 우드 블라인드 사이로 아직 붉게 물들지 못한 흐리멍덩한 회색빛 하늘이 빼꼼 고개를 내민다. 해가 뜨려나보다. 더 늦어지지 않도록 요란스럽게 움직여본다.
히뽀의 세 번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