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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풀 Jan 12. 2023

'으른의 식당' 문을 열다.

모임 일지 - 2.   9/29, 목요일

겨울날 얇은 코트 하나에 몸을 방치하다 시려오는 손발에 불빛이 보이는 건물로 무작정 들어왔는데, 장작 태우는 냄새가 코 끝을 스쳐 고개를 돌리니 새빠알간 불꽃 팡파르가 열린 벽난로, 그리고 그 앞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핫초코와 반지르르 윤이 나는 귤, 손가락 사이사이로 간지럽혀오는 보드라운 극세사 담요가 목덜미부터 꼬리뼈 언저리까지 뜨겁게 안아준 기분, 응 딱 그런 기분이었어요 나는.

으른의 식당에서 함께 한 식사시간


 음식에는 각각의 온도가 존재한다.


‘ 차게 식어버린 스테이크 ’  

‘ 크림이 녹아내린 미지근한 생크림 케이크 ’


잠시 상상만 했을 뿐인데도 미간 주름이 겹겹 접혀온다.


어떤 식재료로 무슨 조리 방법을 택하는가에 따라 그 음식에 알맞은 온도가 정해진다. 요리하는 사람에게도 요리를 받는 사람에게도 매우 중요한 요소다. 제 아무리 미슐랭 셰프라 할 지라도 서늘한 가을 공기에 식어버린 음식을 자신 있게 선보이진 못 할 것이다.




우리의 만남에도 온도가 존재했다.


 만나기로 한 식당 간판이 보였다. 눈에 들자마자 약간의 설렘과 긴장이 온몸을 스쳤고, 동시에 따스한 신남이 내 두 발을 움직였다.  

 조금 잠재울 필요가 있다. 오늘 처음 만나는 J와 두 번째 만남인 J에게 ‘나는 글과는 다르게 조금은 차분하고 반듯한 사람이에요’라는 말도 안 되는 첫인상을 남기고 싶었나 보다.


 식당 문을 열고자 했던 손이 멈칫했다. 열 발 뒷걸음 후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손 위로 느껴지는 무게감, 반만 살짝 뜬 눈, 호옵 참아보는 숨.


 “ 찰칵 ”


 하루라도 안 들으면 병이 날 것만 같은 셔터 소리. 마약도 이런 마약이 없다.

우왕좌왕 갈피 못 잡는 오늘의 마음들을 나만의 익숙함으로 가라앉혀본다.


이제 나는 저들의 온도에 섞일 준비가 되었다.




이 곳의 분위기가 사진에 다 담기지 못해 아쉽다.


“ 끼익 ”


 조심스레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반짝이는 두 눈과 마주쳤다.

등 뒤로 쭈뼛쭈뼛 숨어있던 나의 어색함이 순식간에 부질없이 녹아내렸다.


'으른의 식당을 가보자'

어른이지만 편히 못 가는 어른의 식당에서 오로지 어른끼리 밥을 먹기로 약속했다. 알록달록 현란한 식탁 위 타일들에 시선을 잠시 뺏기던 그 찰나, 무언가가 코 끝을 툭툭 건드린다. ' 아 빵 냄새! '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바삭하게 구운 기름 진 식전 빵 냄새. 굳어있던 입가를 느슨하게 만들어줬다. 

 차례차례 나오는 음식들. 옥수수 크림소스에 사르르 녹는 뇨끼와 종합 선물세트처럼 값진 재료들 품고 있는 라자냐. 리프레쉬시켜주는 리코타 치즈 샐러드와 사정없이 짙고 깊은 비스크 크림 파스타까지.

한 입 한 입 할수록 우리의 데시벨은 높아만 갔고, 포크를 내려두면서까지 깔깔깔 와하하하하.


 그들이 먼저 물들인 이 공간의 온도에 나 또한 무리 없이 스르르 섞이고 있었다. 우리의 몸은 서로에게 아직 낯선 존재지만, 마음은 그러하지 않았다. 나는 J의 중학생 시절 잦은 지각으로 교내에 코스모스를 매일 심던 걸 기억한다. 또 다른 J의 어머니께서 그녀를 낳고 기록하신 육아일기 내용을 기억한다. 함께하지 못한 J의 서른 살은 처음으로 가득했다. 가족을 두고 떠나는 영국행, 아쉬움을 달래고자 떠난 제주행 역시 나는 기억한다.


 긴 시간을 나누지 않았어도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 각자의 글이 담겨있다.


오늘의 온도는 샐러드의 차가움도, 라자냐의 뜨거움도 아닌, 데이지 않게 시리지 않게 무탈한 당신의 안녕을 바라는 응원이 담긴 미지근함이었다.



<J, 완연한 엄마 생활> 두 번째 모임 일지 끝. / 히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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