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일지 - 1. 9/22, 목요일
필라테스는 평소보다 힘들었다. ‘들이마시고’와 ‘내쉬고’ 사이 간격이 굼뜨게 느껴졌다. 폐부 깊숙이 숨을 들이마시면서 이어질 내쉬고 타임의 고통과 쓰라림, 절망과 포기해버리고 싶은 심정을 미리 대비한다. 처절한 ‘내쉬고’ 자세를 위해 몸 안팎을 단단히 한 뒤에는 조금의 지체 없이 동작을 시작해야 나를 어르고 달랠 수 있다. 한데 어제는 그 사이가 유난히 멀게 느껴져 편치 않았다.
운동을 마친 뒤에도 이상했다. 배가 무척 고픈데 얇은 빨대로 유동식을 먹는 기분과 비슷하달까. 마셔도 내뱉어도 시원치 않은 상태의 호흡이 이어졌다. 정상적인 사람의 24시간 호흡수는 약 18,000에서 28,000번이라 하는데, 숨 한 번에 답답하다는 생각 한 번씩. 잠들어 있던 시간을 빼더라도 적어도 만 번은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잠도 설쳤다. 그럴싸한 자료를 준비해야 할 것 같아 오래 앉아 있었더니 종아리 근육도 뭉쳤다. 저질러 버린 이 일을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역류성 식도염이나 폐렴 같은 걸지도.
대부분은 마음이 문제다, 나는.
답답함만 그득했던 건 아니었다. 하고픈 말이 참 많았다. 키보다 더 큰 웅덩이를 파서 거기에 토하고 싶었다. 더럽지만, 이보다 더 적확할 수 없다. 들이마신 만큼 내쉬지 못하는 상태에 질려버렸다. 홀린 듯 프로젝트를 열었고, 결이 비슷한 사람들을 찾기 위해 인스타그램에 5만 원어치 광고를 냈다. 함께 구덩이를 파고 배설할 용기를 내주시옵소서.
아픈 이야기에는 묘한 힘이 있다. 언젠가 스쳤던 시인이 그랬다.
고통을 알고 말하는 것에는 분명 매력이 있다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 마음이 내 메일함에 닿았다. 저마다 다르게 각진 삶 제각각을 뚫고 나간 신음, 외침, 비명이 들려왔다. 그런 걸 하나씩 클릭할 때마다 충만해지는 뭔가가 실로 있었다. 어딘가에서 가족을 먹이고 재우고 닦는 돌봄을 하는 동시에, 자신을 위해 잠과 힘을 아끼는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말했다. 광고를 보고 운명처럼 설렜다고. 자신의 이야기를 꼭 한번 내놓아보고 싶다고.
사계리 코워킹 스페이스에 미팅룸을 잡고 약속한 시각에 모였다. 늘 해오던 일처럼 촘촘하게 시간이 흘렀다. 적당한 낯섦과 예의, 내밀한 말과 커피 향이 자연스럽게 스몄다. 우린 모두 J였다. 빛나는 섬 제주에 살며 완연한 엄마로 살아가는 J들. 시종일관 밝던 J1은 ‘치유’라는 낱말 카드 앞에서 눈물을 쏟아냈고, 메일과 톡에 남긴 어투가 사무적이었던 J2는 다정하고 수줍음이 많았다. J3은 전날 상을 당해 참석하지 못했다. 그녀는 마음에 또 다른 돌덩이 하나를 들여놓고 있을 거라 짐작했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쉬어야 할 땐 무서워 도망치고 싶고 힘겨울 것이다. 생채기의 쓰라림, 절망과 포기하고 싶은 기분이 무차별적으로 교차하겠지만, 우린 지긋이 바라보고 꾹꾹 눌러내려 한다.
그리고 나는,
너덜너덜한 숨으로 사랑을 한다.
멈추고 싶다고 애원하며 도망치는 중이다.
짚이지 않는 마음을 달래고 싶지만, 짚이는 대로 하루를 보내고 나면 까무룩 잠든다.
첫 번째 글은 '어쩌다 보니 여기에'로 시작하기로 했다.
우리가 떠 있는 섬에 어떤 구름이 드리우고, 어떤 빛이 들고, 어떤 바람도 불기 시작한다.
<J, 완연한 엄마 생활> 첫 번째 모임 일지 끝. / 물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