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일지-4. 10/13, 목요일
-Take 1-
의무, 과제, 발표, 부담. 내가 싫어하던 단어들 아니었나?
애써 그것들을 찾아 만나러 가는 길이 이상하게도 나쁘지 않다.
어느새 완엄생의 네 번째 모임이다. 무슨 바람이 들어서 난생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공개적으로 속 이야기를 꺼내고 토해내겠다고(리더가 글쓰기 모임을 결성할 당시 요구한 사항) 이렇게 나섰는지 스스로도 의아하다. 조금은 어안이 벙벙한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 좋게 술기운이 살짝 돌고 사방이 반지르르하게 빛나는 알딸딸한 느낌, 바라던 일을 잊고 있다가 얼떨결에 이루었을 때 기분이랑 비슷해서 좋다.
실은 이번 모임에선 조금 의기소침했다. 맹렬히 온 밤을 불살라 호기롭게 달려들더니... 중년의 나이에 주제넘게 밤을 새우고 아무 주전부리나 입 안에 퍼 넣더니 충격으로 몸뚱이가 고장 나 버렸나. 아줌마가 허튼 망상에 잡혀 삽질을 하다 체력이 바닥나 버렸나. 아니면 혹시? 처음으로 발행한 글 아래 ‘라이킷’ 숫자에 연연하고 있는 건가? 그럴 리가.
‘조회수, 좋아요, 구독’에 연연하지 않는다. 불특정 다수인 타인의 관심 따위는 거부한다.
확고한 모토를 가지고 세상 무심하게 살고 싶어 SNS를 접은 나인데?
애당초 에세이를 쓰겠다고, 공모전에 응모를 하겠다고 달려든 것부터 앞뒤가 안 맞는다. 언제부터 사람이 한 면만 가지고 있었던가. 피카소의 그림 속 사람들처럼 앞, 뒤, 옆, 위, 아래, 바깥, 속 죄다 뒤죽박죽 엉켜 있는 거겠지 뭐.
봉긋한 돌덩이가 보인다. 매번 카메라를 챙겨 오지 않았음에 아차 싶다. ‘다음에는 꼭’이라 되 뇌이며 눈에 최대한 많이 담아본다. 그렇게 산방산을 한 바퀴 돌아 나오면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다. 설문대 할망의 신령이 깃든 산 임에 분명하다.
-Take 2-
“안녕하세요?”
제법 익숙하면서도 반가운 풍경 그리고 살짝은 겸연쩍은 눈빛. 아! 이유는 제각각이라 할지라도 모두가 비슷한 스테이지에 와 있구나. 전날 밤 조금씩 비추었던 채팅방의 성토를 떠올려보건대 처음처럼 일이 풀리지 않는 건 나만이 아닌 듯하다.
그냥 놓아버릴까. 그냥 놀아버릴까. 아예 다른 길을 모색해볼까?
아니다. 계속 가기로 했다.
비록 잘 쓰이지 않은 부끄러운 말들을 가지고 나왔음에도, 할 말이 너무 많아 그동안 모아 온 말들이 정리가 미처 다 되지 않았음에도, 강아지가 누른 버튼에 애써 써낸 글을 통째로 날렸다 급조 한 말들을 가져왔음에도, 여느 때처럼 읽어 내려가고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땅콩버터 토스트가 맛있다고 다 같이 냠냠냠하다가 동시에 눈물을 종이에 뚝뚝 떨구었다. 그러다 푸흡,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리고 말았다.
오길 참 잘했다. 그냥 보여주길 참 잘했다. 부끄러움은 용기 전 단계일지도 모르겠다.
“나 진짜 멤버 너무 잘 뽑은 거 같아요. 완벽한 구성이야”
모일 때마다 뭐라고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를 난감한 멘트를 날리는 리더의 말이 증명되는 것인가. 상큼한 과즙 향을 칙칙 두 번 정도 뿌려주던 막내 J의 부재로 2프로의 생기가 부족한 방에는 허기가 돌기 시작한다. 각자의 설익은 말들을 후다닥 챙겨서 오랑우탄을 만나러 간다. 마무리는 호랭이와 함께.
*오랑우탄: 오랑우탄면사무소(사계리 탄탄면 가게)
*호랭이: 제주호랭이(건너편 크림 도넛 가게)
다음 만남이 기다려지는데 꼭 한 가지 이유만 있어야 하나? 여러가지 이유로 다음 만남이 기다려진다. 일주일 뒤엔 어떤 길을 마주할지 무척 기대된다.
<J, 완연한 엄마 생활> 네 번째 모임 일지 끝. / 미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