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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숲 Oct 22. 2024

르완다에서 부는 바람 43화

해외봉사를 꿈꾸는 그대에게 (4)

"젊음은 자연의 산물이지만 나이는 예술 작품이다."

"Youth is a gift of nature, but age is a work of art." <Stanislaw Jerzy Lec>



나이는 예술작품이라는 이 말이 참 좋다. 그냥 읽기만 해도 묘한 설렘이 느껴진다. 오늘 내가 만나는 한 사람이 바로 이런 사람이 아닐까...


아침 볕이 무척 좋다고 말했는데 이것이 더위의 징조였나 보다. 모자에 선글라스. 쿨 토시를 끼고 보따리 짐 같은 파란색 천 배낭에 물병을 넣었다. 아침 8시 20분 집을 나섰다. 오늘은 코이카 프로젝트 12기 봉사단원으로 라피키 클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명희 단원을 만나러 가는 날이다. 집에서부터 3.5킬로미터의 거리를 걷는데 나는 벌써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사명감을 갖게 한다. 그래서 오늘 발걸음도 가벼운 것이다. 


그녀의 나이 68세, 전직 음악교사였고 이미 라오스에서 2년간 코이카 봉사단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집 안 형편상 늦깎이로 29살에 대학에 진학하여 작곡을 전공하였고, 피아노는 물론 갖가지 악기를 고루 다룰 수 있다. 나는 이미 그녀의 실력을 교회와 여러 행사에서 감상할 수 있었는데 음악에 문외한인 내게는 그저 신기할 뿐이었고 사실 부럽기도 했다. 왜냐하면 악기를 연주하는 동안 그녀의 표정이 너무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말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라고. 선물이라고... 


한국어 수업하는 모습


그녀는 현재 이곳에서 한국어와 음악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내가 도착할 즈음에는 한글 수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머리를 뒤로 질끈 묶고 그녀의 트렌드 마크처럼 파란 조끼를 입은 이명희 단원은 전직 교사답게 학생들을 집중시키며 수업을 하고 있었다. 걸걸한 목소리가 밖에까지 들렸다. 한 사람 한 사람과 눈 맞춤을 하며 질문도 하고 답도 들으며 또 이들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호응하며 즐겁게 이어 나갔다. 처음에는 음악 수업만 하다가 올 10월부터 한글을 가르쳤다고 한다. 비록 학생 수가 세명이었지만 이들의 눈빛은 배움에 대한 열기로 뜨거웠다. 오늘은 나이를 말하고 적는 방법, 그리고 내 이름을 말하고 옆 사람의 이름을 말하는 법. 인사하는 법 등을 가르쳤다. 한글 수업을 시작한 지 3주 정도 되었는데도 학생들 수준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았다.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에서 격려와 칭찬의 모습을 아끼지 않는다. 베테랑 선생님의 모습이 이런 것이 아닐까. 대답을 잘 못하는 피터까지 챙긴다.


"우리 지금 뭐해요?"

"우리 지금 공부해요, 한국어 공부해요."

"오, 아마니 똑똑해요, 피터도 똑똑해요"

"감사합니다~ "


아마니가 쓴 글씨
열심히 수업하는 아마니


농구 코치이기도 한 아마니는 20살인데 이 세명 중에서 가장 발음이 정확하고 학습속도가 빠르다고 한다. 내가 들어봐도 어찌나 발음이 좋은지 정말 똑똑하고 영리하다는 생각을 했다.

" 한국어 공부 재미있는데 어려워요"

"한국음식 맛있어요 그런데 비싸요." "한국 가고 싶어요"

"그런데 비행기값 비싸요" 같은 말을 더듬거리지도 않으면서 곧잘 한다. 


다섯아이의 아빠인 빈센트, 그의 핸드폰 속에 있는 자녀들
세 자녀의 아빠인 피터


피터는 34살이며 세 아이의 아빠고, 빈센트는 36살이며 다섯 자녀를 두었다. 빈센트가 내게 아이들과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참 화목하게 보이는 가정이다. 그런데 한 창 일해야 할 이 시간에 이렇게 모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이들에게 직업이 없다는 것이다. 르완다에 와 보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았다. 다양한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해 경제적으로 매우 열악한 나라다. 르완다의 경제가 언제쯤 부흥할 수 있을까. 공장이 돌아가고 물건이 나오고 사람들의 손이 바빠질 때 르완다 젊은이들이 설 수 있는 자리가 풍성 해질 텐데...


이들에게 한국은 그래서 더욱 선망의 대상이 된다. 세계 각국에서 K 팝 열풍이 불듯이 르완다에서도 한국 영화에 관심이 많고 한국에 가고 싶어 한다. 그래서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열망도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무엇보다 잘 사는 한국에 가서 일자리를 얻고 싶어 한다. 어쨌든 배우고자 하는 열정을 더욱 북돋아 주는 역할을 이명희 단원이 하고 있다.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할 수 있다는 신념을 심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제자를 또한 양육하고 길러주고자 하는 깊은 마음도 헤아릴 수 있었다. 하나라도 더 심어주고자 애쓰는 그녀의 얼굴 모습에서 그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간식을 마친 후 음악 수업이 진행되었다. 음악 수업에는 한글 수업을 받은 학생들을 포함해서 다섯 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아마니는 우쿨렐레, 피터는 키보드, 존은 리코더, 파비앙은 피아노, 빈센트는 기타를 연주한다. 역시 음악은 이들의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자연스러워 보였다. 악기 하나하나 지도해 주는 이명희 단원 모습과 함께 연주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가득 담았다. 행복한 모습이 이 속에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학생들에게 전수하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함께 따라가는 학생들의 모습 또한 그랬다. 순간 교실은 아름다운 하모니로 채워졌다.


바이올린을 지도하고 있는 모습
함께 연주하는 모습과 교실에 놓인 칠판
함께 만들어내는 하모니


그녀에게서 젊은이들 못지않은 열정과 사랑이 느껴졌다. 꾸미지 않은 수수함은 그녀의 독특한 매력이다. 몇 벌의 옷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에 푹 빠져있을 때 그것은 진정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 지치지 않는 저 열정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르완다 사람들을 향한 그녀의 애정일까? 그래서 아름다움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가 보다. 내가 보는 아름다움은 사람의 뒷모습이다. 인생 후반을 살아가는 나에게도 적용되는 말인 것처럼 오늘도 보람 있고 뜻깊은 일을 했다고 스스로 토닥인다.



수업을 마치고 우리는 근처 거리 카페에서 아프리칸 티와 짜파티를 먹었다. 오늘 바쁜 여정이 또 있어 짧은 만남으로 헤어졌지만 주어진 하루를 풍족히 썼다는 감사함이 더한 날이다. 수업하던 교실을 곧 새로 단장한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더 좋은 환경에서 학생들이 수업할 수 있는 모습을 보았으면 좋겠다. 교실에 남아있는 학생들을 챙긴다고 짜파티 다섯 장을 더 주문해서 가지고 가는 이명희 단원의 뒷모습이 오후의 환한 햇살 속에서 빛났다. 참 아름다운 뒷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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