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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숲 Oct 09. 2024

 바람 따라 시 한 줄. 1

 


꽃이 곡선을 만들며 피는 이유



오후 서 너 시쯤, 길을 걷다가 앉아있다

어제는 바로 이 자리에 남루한 한 여인이 앉아있었다

고단함과 가난이 몸에 밴 듯한 여인


저 둥근 길 위에는 얼마나 많은 슬픔의 시간들이 묻어있을까 

나는 뾰족해진 마음을 내려놓는다 


르완다에 온 지 열 달째다

뜻하지 않은 길이 새로운 길이 되면서 

구불구불한 산길을 가도 내 것인 것 같다


나는 똑바로 갈 길을 남들보다 조금 더 돌아왔다고 말한다

내 안에 자연스럽게 생긴 슬픔의 나이테도 둥글었다  

가지 않은 길을 아쉬워했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골목 바람을 다 안고 들어왔고 

오도 가도 못하는 바람을 껴안은 집은 늘 들썩였다 

그럴 때면 밤새 비가 더 내렸고, 밤새 바람도 세게 불었다. 


턱을 괴고 앉아 있으면 

지나 온 길들이 굽이 굽이 똬리를 튼다

발 밑에 유영하는 잎들은 

어느 파도를 넘어온 자유의 몸짓인가, 침묵의 항의인가  


말없이 흔들리며 사시사철 꽃은 핀다 

사람도 직선으로 내닫는 사람보다 

모퉁이를 돌아갈 줄 아는 사람이 좋다

스스로 깎이며 둥글어지는 것이다

꽃이 곡선을 만들며 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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