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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TS May 05. 2023

1억짜리 바나나

를 먹은 서울대학생

"서울대에서 미학을 전공하는 제 지인이 리움미술관 카텔란의 작품을 먹었습니다!"


1. KBS에 위와 같은 제보 메일이 왔습니다. 이탈리아 설치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개인전 '위(WE)'에 전시돼 있던 작품 속 바나나를 누군가 먹었다는 내용인데, 논란의 주인공인 서울대생 A 씨는 작품인 바나나를 먹는 장면을 지인을 통해 영상으로 남기고 스스로 제보까지 했다고 합니다.


https://youtu.be/XMRK0a-nK9c (논란이 된 1억짜리 바나나를 먹는 영상)


2. 상황이 발생하고 미술전측 관계자는 곧바로 달려가 A 씨에게 작품을 무슨 생각으로 먹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아침을 안 먹고 와서 배가 고파서 먹었다."라고 답했습니다. A 씨는 이후 껍질만 남은 바나나를 원래 작품이 있던 곳에 붙여놓았고 30여분 후에 미술전 측은 새로운 바나나를 붙여 놓으며 사건은 일단 락된듯 싶었습니다.

A 씨가 다녀가자 껍질만 자리에 남았다. 원래는 바나나가 붙여져 있었다.


3. 이후 A 씨는 KBS와의 통화 중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카텔란의 작품이 어떤 권위에 대한 반항이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반항에 대한 또 다른 반항을 해보는 것일 수도 있고, 그리고 사실 제가 마지막에 껍질을 붙이고 나왔어요. 작품을 훼손한 것도 어떻게 보면 작품이 될 수 있을지 뭐 이런 것도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현대미술을 보면 이런 기획은 없었던 것 같아서, 장난 삼아서 한 번 붙여놓고 나왔어요. 사실 먹으라고 붙여놓은 거 아닌가요?"




서울대 학생들끼리 사용하는 SNS인 '에브리타임'


4. 곧바로 이 사건은 널리 퍼졌습니다. 그러나 A 씨의 의도완 달리 사람들에겐 작품을 훼손한 범죄로 보였나 봅니다. '선을 넘었다'는 여론이 대부분입니다.

"서울대생이라며, 그 좋은 머리가 아깝다."

"이건 절도죄에 해당하는 거 아닌가?"

"전시관측에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먹으라고 갖다 둔 것이 작품의 의도도 아니고, 이미 2019년에 다른 나라에서 바나나를 먹어 이슈화가 된 적이 있다”며 “톰브라운 넥타이 매고 먹은 뒤 손수 영상 찍어 언론사에 스스로 제보까지 한 자의식 과잉에 넌더리가 난다”라고 했다. 이외에 “포트폴리오를 채우려는 연출로 밖에 안 보인다” “서울대 미학과라고 밝힌 것도 속 보인다” “자아가 비대한 서울대 학부생을 행위예술로 표현한 것” 등의 반응도 올라왔다. <조선일보발췌>






<이렇게 까지 욕먹을 일 인가?>


1. 작가인 마우리치노 카텔란 작가가 이 소식에 전해 듣고 "전혀 문제 될 게 없다(No problem at all)"고 전했습니다. 작품의 제목은 '코미디언'으로 개념미술입니다. 개념미술은 작품의 형태보다 의미를 중요시하는데 바나나가 아닌 ‘바나나를 벽에 붙였다’는 아이디어가 중요하기에 큰 문제로 여기지 않은걸까요?


2. 2019년 이 작품은 12만 달러(약 한화 1억 5천만 원)이라는 거액에 팔렸습니다. 저에겐 그저 시장에서 파는 바나나 한 개의 가치지만 다른 이에게는 1억을 넘는 가치를 가졌다는 게 참으로 신기하죠. 예술은 대체 뭘까요? 작품을 돈으로 가치를 매길 수 있을까요?


3. 예술이 무엇이라고 딱 잘라 정의하기엔 개개인의 가치판단에 따라 여러 견해가 있지만 예술은 가장 높은 ‘자아실현의 욕구’를 표현하기에 적합합니다. 작가가 가진 가치관, 현실에선 이루기 힘든 이상, 존재 의미들을 각종 수단과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죠. 작가는 '누군가 바나나를 먹고 껍질만 걸어놓은 행위까지' 자신만의 작품으로 인정했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밝혔으리라 생각합니다. 바나나를 먹은 행위가 마냥 작품의 가치를 훼손시킨 일로 해석하기엔 단편적일 수 있다는 거죠.


4. 또한 작가는 '코미디언'을 통해 작품의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작가가 담고 싶은 욕구 등 담고 싶은 모든 걸 녹여낸 작품을 돈으로 가치를 매겨 사고파는 게 예술인지 장사인지, 예술품인지 아닌지, 그저 바나나를 테이프로 붙여놓은 게 1억의 가치를 지니는지, 여러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5. A 씨는 배고파서 바나나를 먹은 것도 아닌, 작품을 훼손할 목적을 지니지도, 다른 감상자들을 방해할 생각도 없었을 겁니다. 오히려 작가가 던진 질문에 나름의 답을 했다고 볼 수도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 여론이 이토록 거센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그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1. 2019년, '아트 바젤'에 같은 제목의 바나나 작품이 있었습니다. 작품은 경매에서 1억 5천만 원에 낙찰되며 큰 이목을 끌었죠. 이야기는 끝이 아닙니다. 한 행위예술가 데이비드 다투나(48)가 "배가 고프다" 며 벽에 붙은 바나나를 떼서 먹어버리는 퍼포먼스를 벌였죠. 이 사건을 통해 작품은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 어디서 들어본 거 같지 않나요?


2019년 아트바젤에서 12만 달러에 팔린 카텔란의 ‘작품’을 먹는 행위예술가


그렇습니다. A 씨가 한 행동과 똑같죠. 그러나 앞서 A 씨와는 달리 대중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입니다. 다투나가 같은 행동을 할 때 관람객들은 오히려 다투나가 바나나를 먹는 모습을 보며 웃으며 즐겼고 대중들 또한 각종 패러디를 쏟아내며 유쾌하게 받아들였습니다. 2019년 최고의 화제를 모았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형 업체에서 이를 패러디하여 광고에 쓸 정도였죠.


'코미디언'을 패러디한 버거킹 광고

1. 차이가 나는 이유는 작품을 공개할 당시의 분위기에 있습니다. 2019년에 작품이 공개될 때는 '바나나만 붙여놓은 황당한 작품이 1억 5천이 팔렸다는 사실'을 조롱하거나 풍자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렇기에 '배고파서 바나나를 먹었다'라는 행동이 웃길 수밖에 없죠. 그러나 이번에 A 씨는 카텔란의 작품을 조용히 관람하는 분위기인 리움미술관에서 소동을 일으켰다는 게 대중들의 반감을 샀지 않나 싶습니다.


2. 그리고 중요한 건 '이미 했던 걸 또 했다'라는 점입니다. 창작이 정말 중요한 개념인 예술계에서, 남에 걸 그대로 모방했다는 사실이 예술인들에겐 안 좋게 보일 수밖에 없는 거죠. 2019년에는 고가의 바나나 작품을 먹은 행위예술가의 처분이 어떻게 이루어질지, 그 대담할 행동을 자처한 카투나는 호감을 샀지만 A 씨는 달랐습니다.


만약 A 씨가 바나나를 껍질만 붙이는 것보다 그곳에 다른 과일을 걸어놓는다든지, 바나나를 먹고 곧바로 자신의 주머니에서 준비해뒀던 또 다른 바나나를 걸어둔다든지, 색다른 시도를 했다면 반응은 달랐을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카투사의 작품에 나름의 답을 한다면 어떻게 하실껀가요? 모든 사람이 껍질만 다시 붙여두진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여러 신선한 방법으로 자신만의 개념 미술이 이뤄지지 않을까요? 단순히 벽에 붙여진 바나나일 뿐이지만 관점에 따라 여러 대답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예술은 참 재밌고 흥미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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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log.naver.com/elem1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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