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집결지
프라하에 대한 인상은 사실 실망이 많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프라하라는 도시 때문은 아니었다. 프라하에는 한국 사람이 많았다. 너무 많았다.
프라하에 도착해 거리로 나오니 길에서 보이는 인파 중 절반 이상이 한국인이었다. 다른 대륙 어딘가가 아니라 그저 배경만 갈음한 서울의 어딘가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여행지에서는 무언가 다른 경험을 하고 싶었던 나로서는 재미없는 일이었다.
그런 기억도 난다. 프라하의 구시청사 광장에는 커다란 천문시계가 있는데, 정각이 되면 시계에서 노랫소리와 함께 인형들이 나와 춤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소도시인 프라하에서 볼 만한 얼마 안 되는 구경거리 중 하나였다. 그것을 보러 정각에 맞추어 시계 앞으로 갔다. 우리와 같은 구경꾼들이 제법 많았다. 다들 시계를 향해 서서는 그걸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정각이 되어 노래와 함께 인형들이 나왔다. 춤추는 걸 이십여 초 보았나? 소박한 공연은 끝나고 인형들은 금세 시계 속으로 돌아갔다. 사실 뻐꾸기 시계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이게 다인가 싶어 어리둥절해진 군중들이 계속 선 채 쑥덕거렸다. 나도 같이 있던 동행에게 한국어로 "이게 다야?"라고 말했는데, 난데없이 한국어로 "이게 다예요! 아유 참, 별 거 없어요."하는 답이 날아왔다. 뒤쪽에 서 있던 한국인 아주머니였다. 나와 동행한 언니는 화들짝 놀랐다. 유럽의 거리에서 한국어로 어떤 답변을 들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프라하에 한국인 관광객이 그리도 많은 이유에 대해서는, 한때 인기 있었던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때문이라는 해석을 많이 들었다. 유럽에 여행할 만한 도시가 얼마나 많은데 드라마 하나 때문에 프라하에 온다고? 아직도 완전히 납득되지는 않는 이유다. 어쩌면 내가 그만큼 대중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인간인지도 모르겠다만.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체코는 유로화를 쓰지 않는 나라였다. 그래서 체코에서는 환전한 코루나를 모두 써야 했다. 덕분에 다른 나라에서보다는 조금 여유 있는 여행을 했던 것 같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다운 식사도 하고, 체코 맥주도 마시고, 디저트도 먹었다. 숙박은 평범한 호스텔에서 했는데 엘리베이터가 어찌나 구식이던지 옆으로 열리는 자동문이 아니라 수동으로 밀어서 열어야 하는 문이었다. 한국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엘리베이터였다.
한국인들로 바글거리는 프라하의 거리에 실망하기는 했지만(그리고 프라하는 관광도시답게 바가지도 상당했던 것 같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이것저것 즐겼던 것 같다.
스위스에서 하고 싶었으나 너무 비싸 비교적 저렴한 프라하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했고(무섭지는 않았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짜릿하지도 않았다), 카프카의 집에는 안 갔지만(도대체 왜 안 갔지? 암스테르담의 고흐에 이어 두 번째로 이해할 수 없는 과거의 나) 알폰스 무하의 전시회를 재미있게 보았다. 엽서도 몇 장 사 왔다. 이 엽서는 본가의 내 방 책상의 유리 아래 들어가 있다. 몇 년이 지나 서울에서도 무하 전시가 열렸는데, 프라하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며 즐겁게 관람했다.
다시 체코를 여행하게 된다면 체스키 크룸로프에 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