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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비둘기 Feb 01. 2023

(8) 마주하다





정윤은 틈만 나면 셀카를 찍고 사진을 보았다. 이제 그의 휴대폰 사진첩은 셀카로 가득했다. 윤정에게는 차마 말할 수 없었지만 마음에 드는 것은 인화도 해서 두어 장은 지갑에 넣고 가지고 다녔다. 윤정을 만나고 최초로 이 얼굴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는 사흘 동안 잠들기 전까지 몇 시간이고 바라보았다. 지금 자신의 얼굴이 이것이라니 아무리 보아도 믿기지 않았다. 사진 속의 여자는 너무 예뻤다. 감히 내가 이 사진 속 여자라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정윤은 목을 만지며 생각했다.

윤정을 보는 기분은 복잡했다. 그 얼굴을 마주하는 것은 유쾌하지 않았다. 그럭저럭 견딜 만할 때도 있기는 했지만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편할 때도 있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것 자체는 기왕이면 영영 보고 싶지 않았다. 되짚어보면 처음 한두 번은 반은 윤정의 기세에 휘말려, 반은 의무감에 만났다. 윤정이 연락해오면 무시할 수가 없었다. 이 얼굴의 원래 주인이니까.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어떠한 죄책감이 몸 한 구석에서 꿈틀거렸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심심찮게 꿈에도 보였다. 거울 앞에 섰을 때 보이는 그 익숙한 얼굴. 다시 그 얼굴로 돌아온 자신의 모습. 그 꿈을 꾸고 나면 불안하고 꺼림칙해 셀카를 오십 장은 찍고 연신 들여다보아야 겨우 마음이 진정됐다.

그러나 같은 얼굴임에도 윤정에게 달려 있는 그것은 자신에게 붙어 있을 때와는 기묘하게 달랐다. 마치 다른 사람 같아 보였다. 처음 보았을 때는 거울을 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보면 볼수록 그런 느낌은 옅어져 갔다. 꼭 윤정이 열심히 꾸미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조금이라도 그것을 예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렌즈를 끼고, 얼굴에 좋은 것을 바르고,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만졌다. 거울로 보이지 않는데 화장을 어떻게 하는지도 신기했지만, 그 얼굴에 화장을 하겠다는 발상 자체도 놀라웠다. 정윤은 애당초 화장을 하려고 시도해 본 적도 없었다. 하나마나 수박에 줄긋기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윤정의 손에 의해 가꿔진 모습은 그가 막연히 예상한 것과는 또 달랐다. 무엇보다 보기 싫어했던 얼굴임에도 달라져 가는 모습이, 남의 얼굴이 되어 가는 것이 경이로웠다. 정윤은 그 얼굴을 볼 때마다 피하고 싶은 불편감과 요리조리 뜯어보고 싶은 기묘한 유혹을 동시에 느꼈다.

얼굴의 문제를 배제하면 그는 윤정이 싫지 않았다. 그녀의 기세에 휘말리면서 시작된 관계였지만 정윤은 그런 느낌이 좋았다. 누군가가 이토록 관심을 가져 주고, 자주 연락해 주고, 심지어는 욕망어린 눈빛으로 바라봐 준 적이 없었다. 그 눈빛에는 중독성이 있었다. 정윤은 윤정과 두 번째 만난 날 술집에서, 그녀가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붙잡고 잡아먹을 기세로 열렬히 쳐다보던 그날의 눈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가슴이 뛰면서 거기가 뜨거워졌고 아래에서 물이 나왔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싫지 않다는 말에는 어폐가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윤정의 생각을 하고 있는데, 싫지 않다니. 거짓말이나 진배없다. 정윤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또 빠졌구나. 또 빠졌어, 심정윤.

그는 윤정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자신만만하고 다소 높은 음조의 목소리, 거침없는 행동. 가느다란 팔다리와 섬세한 목, 작지만 둥근 가슴, 날씬해 다소 중성적인 골반과 여린 허리.

어쩌면 이렇게라도 인연이 닿은 것이 다행인지도 몰랐다. 이런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말하자면 정윤과 윤정의 얼굴이 바뀌지 않은 채 어딘가에서 알게 되었다면 아마 윤정은 정윤의 존재를 인지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고 정윤은 그녀를 멀찍이서 바라보며 가슴앓이만 했을 터였다. 

윤정이 남자친구의 존재를 언급했을 때는 그러면 그렇지 싶었다. 어디를 보나 완벽한 이성애자였고 주위에 남자들이 들끓는 것이 훤히 보였다. 정윤의 추하기 그지없는 얼굴을 갖게 되었음에도 남자의 호의를 받는 것에 익숙해 보였다. 그 애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내내 그렇게만 살았을 것이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모두의 환심을 사고 손쉽게 호의를 얻는 삶. 본인은 그런 걸 알기나 할까? 그럴 턱이 없지. 원래 복 받은 인간은 자신이 복 받은 줄 모르는 법이었다. 더군다나 그 애는 영민한 편도 아니었다. 

윤정의 말투나 성격은 어느 한 구석도 정윤과 맞는 부분이 없었다. 돈 쓰는 습관만 해도 그랬다. 단 한 번도 돈 걱정을 해본 적 없는 유년기를 보냈으리라는 것이 훤히 보였다. 길을 걷다 마음에 드는 게 보이면 냉큼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사고, 목이 마르면 편의점에 들어가 생수를 사고. 대체 집이나 학교에 가는 길에 물을 왜 사는 건지, 길 막힌다고 불평해 대면서도 택시는 왜 그렇게 자주 타는 건지 정윤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언제나 목소리가 크고, 사진에서는 항상 가운데에 있어야 하는, 전혀 결핍을 느껴본 적 없는 그런 이들. 정윤이 가장 혐오하는 부류의 인간들이었다.     


“정윤 쌤, 퇴근 안 하세요?”

정윤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지훈이었다. 혹시 또 한가하냐고 물어보려는 건가? 만날 의향은 원래부터 추호도 없었지만 윤정과 섹스를 한 뒤로는 그가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는 것조차 괜히 불편했다. 자리에 없는 윤정이 신경 쓰였다. 사귀는 것도 아닌데. 그 앤 남자친구도 있는데.

“아. 가야죠.”

그는 뻣뻣하게 대답하고는 서둘러 옷과 가방을 챙겼다. 자신과 자 놓고도 남자와 헤어질 생각은 해본 적도 없는 것 같은 윤정을 떠올리자 울컥했다. 좋아하지도 않는 지훈을 신경 쓰는 자신의 상황이 억울하기도 했다.

“정윤 쌤!”

서둘러 학원 문을 나서는데 아니나다를까 지훈이 불러세웠다. 정윤이 돌아보자 그가 미소를 지었다.

“다음에 같이 식사 한 번 해요. 같이 일한 게 몇 달이 됐는데 밥도 한 번 못 먹었네. 정윤 쌤 회식도 잘 안 오시잖아요.”

“아. 네. 그러죠.”

정윤은 불편한 티를 내색하지 않았다. 승낙하지 않으면 말이 더 길어질 것 같아 그냥 좋다고 했지만 정말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묘한 것은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남자가 식사를 하자고 말을 걸어온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이런 게 데이트 신청인 건가? 데이트가 아니어도 밥은 먹을 수 있지만. 에이, 빈말일 수도 있어. 빈말일 거야. 그냥 하는 말…하지만 예전의 나에겐 그런 빈말조차 아무도 한 적 없었지.


정윤은 혼란스럽기도 하고 다소 의기양양하기도 하고, 윤정 때문에 짜증이 나기도 하는 기분을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현관문 도어락을 해제하고 신발을 벗자마자 전화가 걸려왔다. 윤정이었다. 머뭇거리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애교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기! 퇴근했어어?”

섹스를 한 뒤 윤정은 정윤을 온갖 애칭을 붙여 본인 마음대로 부르기 시작했고 말투도 달라졌다. 그전부터도 정윤의 무뚝뚝한 말투와는 달랐지만 지금은 억양이나 어조가 훨씬 어리광을 부리는 느낌이었다. 남자친구한테도 이런 식으로 말할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정윤은 그것이 두 번째 경험이었다. 태어나서 해 본 두 번째 섹스.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은 셀 수 없이 많았지만 그를 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못생기고 자신감도 없고 성격도 어둡고 자존감도 바닥이니 당연하지. 정윤은 그에 대해 크게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씁쓸하긴 해도 그게 현실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봐도 자신 같은 사람은 좋아할 수 없었다.

첫 번째 경험은 얼떨결에 하게 된 것이었다. 평소 잘 참여하지 않던 과 내 술자리에 갔다가 3차까지 끌려갔고 엉망으로 취한 선배 한 명을 재우기 위해 술집 근처 모텔에 데려갔다가 일어난 일이었다. 정윤은 술이 거의 깬 상태였고 선배는 고주망태였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고 처음은 반강제로 시작했지만 1학년 때 잠깐 좋아했던 상대였기 때문에 괜찮다고 여겼다. 이럴 때 아니고서는 누가 나랑 자려고 하겠어, 그런 생각도 없지는 않았다. 그 선배는 그날 이후로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그전에도 연락을 주고받던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정윤은 지금까지 살면서 두 번의 섹스를 했는데 연애는 해본 적이 없었다.

“나 너무 심심한데 우리 집 놀러올래? 지금 아무도 없어.”

본인이 심심하다고 이런 저녁에 전화해 난데없이 집에 오라니. 남자친구나 만날 것이지. 하지만 그녀의 집이라니, 정윤이 거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정윤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가겠다고 답했고 윤정은 흡사 돌고래 울음 같은 소리를 지르며 기뻐했다.          



정윤은 집을 나서기 전, 오랜만에 화장실로 가 거울을 보았다. 윤정처럼 예쁘고 세련된 옷은 없어도 깨끗하게 입고 싶었다. 옷매무새를 다듬기 위해 거울을 보는 것이 얼마만이지? 

거울 속 얼굴에는 여전히 그 검은 것이 있었다. 처음에는 구멍이 뚫렸다고 생각했다. 있던 것이 보이지 않으니 없어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가끔 이렇게 보았을 땐 밤의 바닷물처럼 시커먼 물웅덩이가 고여 있는 것 같기도 했고, 또 어떻게 보면 연기, 혹은 거의 연기처럼 얇디얇은 장막으로 가려진 것 같기도 했다.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몰라도…이렇게 잔재주가 많이 필요한 거라면 그것은 있는 것을 가리기 위한 것일 터였다. 이미 없어진 것이라면 뻥 뚫린 구멍, 머리 뒤로 통하는 구멍을 보여주는 데 무슨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어차피 얼굴 거죽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비밀도 아닌데. 그래서 정윤은 얼굴 위에 고인 어둠을 부재의 징표가 아니라 존재의 은폐라 여기게 되었다.

무엇의 부재이든, 무엇이 은폐되었든, 정윤은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윤정이 아무리 바란다 해도 그럴 수는 없었다. 정윤의 삶은 그날부터 극단적으로 달라졌다. 혐오감 섞인 시선, 동물원 원숭이 보듯 던지는 눈길은 감탄과 동경, 호감, 질시의 눈빛으로 변했고, 퉁명스럽고 무관심하던 말투와 무언의 무시는 다정한 미소로 탈바꿈했다. 아무 것도 부탁하지 않았는데 무언가를 공짜로 받을 때도 있었다. 어깨 너머로 종종 듣던 ‘진짜 못생겼다’라는 수군거림은 ‘너무 예쁘다’로 바뀌었는데, 몇 번이나 욕설로 잘못 알아듣고 화들짝 놀라곤 했다.

정윤은 용기를 내어 오 년 만에 처음으로 옷가게에도 들어가 보았다. 스물 한 살 때 손님한테 어울리는 옷은 가게에 없으니 나가달라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는 한 번도 옷가게에 발을 들인 적이 없었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면서도 손바닥에 땀이 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직원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무릎이 뻣뻣하게 굳어 저도 모르게 멈춰 섰다. 직원은 어서 오세요, 인사를 건네며 상냥하게 미소를 지었다. 몰려오는 안도감과 함께 고마운 마음이 솟아올랐다. 정윤은 손에 걸린 게 뭔지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계산대로 가 카드를 내밀었다. 집에 돌아와서야 자신이 결코 입지 않을 노란 꽃무늬 프린트의 점프수트를 샀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윤이 이십 몇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살아왔던 세상이 거칠고 혹독하기 그지없는 극지방이었다면 윤정의 얼굴로 사는 세상은 하와이나 제주도였다. 같은 곳에서 같은 시간을 사는데 어쩌면 이다지도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인지, 종종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사실 세상을 극지방으로 만드는 데에는 자신도 한몫했을 거라고, 정윤은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는 항상 아름다운 여자들에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표를 내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알아차리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좀 더 어릴 때는 넋을 잃고 예쁜 애를 쳐다보다가 불쾌한 얼굴을 한 상대에게 험한 소리를 들은 일도 있었다.

윤정이 입을 맞춰온 그 순간. 정윤은 도무지 현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누가 나한테 키스를 하다니. 그것도 먼저. 심장이 심하게 뛰어 금방이라도 실신해 버릴 것 같았다. 고막 속에서 심장 뛰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다. 윤정이 옷을 벗어던지고 그를 끌어당길 때까지만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이게 현실이긴 한 건지 실감할 수가 없었다. 어찌나 정신이 쏙 빠졌던지 지금까지도 뚜렷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 보려고 하는 것만으로도 정윤은 살짝 애가 달았다. 이런 상태로 그녀의 집에 갔다간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정윤은 다른 생각을 하려 애쓰며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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