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딱지였다가 눈물 버튼이 된 요미가
언니, 안녕?
나 때문에 안녕하지 못할 때가 많지?
언니가 자꾸 울어서 내 털이 다 축축해진 기분이야.
잠시만, 몸 한 번 부르르르 털어줘야겠어.
언니, 내가 떠난 지 9개월이나 됐는데
아직도 지인들 약속 잡을 때
눈물 버튼이니 내 이름 꺼내지 말라고 부탁하더라?
내가 여기 오자마자 언니가 기억하는
가장 깨발랄하고 건강하던 모습으로 돌아가서
댕친들이랑 어울려 얼마나 신나게 지내는지 알면
언니가 그동안 흘렸던 눈물이 머쓱할 텐데
지금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어 아쉽네.
내가 가족들 중 언니를 제일 사랑하는 거 알지?
언니 없으면 산책도 안 가려하고
밤에는 항상 언니 이불 속에 들어가
언니한테 껌딱지처럼 딱 붙었잖아.
잠들기 전 그 순간이 하루 중 내 최애 타임이었어.
그런데 언니가 슬퍼하는 거 보니까
차라리 내가 언니 사랑을 덜 받았더라면
언니가 덜 슬플 텐데 라는 생각까지 하게 돼.
언니, 내 소중한 언니,
엄마보다 더 엄마 같은 언니,
꽃미모에 깨발랄 장착한 내 모습에 반해
엄마한테 말도 안 하고 날 집으로 데려갔던 언니,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나를 사랑하는 언니,
내가 언니 심장 같다는 언니,
내가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도
얼마나 심심하면 그랬겠냐고 웃어줬던 언니,
‘귀요미’라는 예쁜 이름 지어놓고
'요미'라고 부르며 내 이름도 잘라먹고
나한테 말할 때 항상 혀가 반토막 났던 언니.
“나가꺼야?” “산책 가꺼야?” “까까 머그꺼야?”
언니 혀 짧은 목소리 떠올릴 때면
난 꽃잎 같은 혀 내밀고 헤~ 웃게 돼.
언니도 내 생각나면 항상 나한테 지어줬던 미소처럼
환하게 웃어줬으면 좋겠지만
아픈 초롱이 때문에 쉽지 않다는 거 알아.
엄마가 나 외로울까 봐 데려온 내 동생 초롱이,
내가 늘 눈곱도 핥아주고
낯선 사람이 초롱이 만지려 하면 화도 내면서
애지중지 내 자식처럼 돌봤던 초롱인데
아픈 데가 많아서 내가 걱정이 많아.
근데 초롱이 걱정이 아니라 언니 걱정이야.
초롱이도 나만큼 언니 사랑 많이 받고
이제는 언니가 나한테 못해줬던 몫까지
더해 주려고 애쓰는 거 잘 알거든.
근데 초롱이도 언젠가는 언니 곁을 떠날 거잖아.
우리가 둘이어서 가족들에게 줬던 행복도 두 배였지만
초롱이까지 떠나면 슬픔도 두 배가 될까 봐 걱정이야.
그래서 나 떠난 슬픔이 이제 그만 사그라지면 좋겠어.
언니가 늘 우리한테 늘 최선을 다해줬던 거, 정말 고마워.
항상 뭐든 더해 주고 싶어 했고
우리가 나이 들면서 챙길 게 더 많아지면서
언니가 갖고 싶은 건 안 사도
우리 사주고 싶은 건 뭐든 사줬잖아.
정말 우리를 위해 일한다 싶을 정도로 열심인 언니였잖아.
그랬던 언니가 내가 아픈 걸 눈치채지 못했다고,
시한부 판정 듣고 병원에 딱 하루 입원시켰다고
자꾸 언니 마음에 스스로 생채기를 내더라?
언닌, 내 삶이 일주일 정도 남았다는 의사 쌤 말에 충격받았겠지만
아파서 병원 자주 가고 수술까지 받았던 초롱이에 비해
나는 나이에 비해 건강하다는 의사 쌤 말 믿고
언니가 안심하고 지냈던 거, 난 진짜 다행이라고 생각해.
매년 정기검진에서 이상 없던 내가 마지막 검진받은 뒤
의사 쌤이 췌장과 간에 암이 다 퍼졌다고 말했잖아.
난 오래 아프고 오래 입원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해.
언니가 아픈 초롱이 더 챙긴다고 나 아픈 걸 몰랐던 게 아니야.
내가 가끔 토하던 건 아주 예전부터 특별한 일도 아니었잖아.
난 병에 비해 통증이 덜했던 것뿐이야.
많이 아팠으면 내가 낑낑 앓았지 티를 안 냈겠어?
그래도 의사 쌤이 말한 일주일 넘기고
두 달이나 언니 옆에 있다 떠난 것도 얼마나 행운이야?
언니가 내 시한부 판정 듣자마자 직장까지 그만두고
내 껌딱지가 돼줬던 그 시간이 정말 행복했어.
떠날 때 아쉬움 하나도 안 남을 만큼! 진짜야!
마지막에 언니가 눈을 감겨줘도 자꾸 눈을 떴던 건
떠나기 싫어서가 아니었어.
원래 대부분 그런 거래.
요즘 엄청 똑똑하다는 인공지능한테 물어봐.
눈 뜨는 근육, 눈 감는 근육이 어쩌고 안구 압력이 어쩌고
자세하게 설명해 줄 거야.
언니, 우린 서로 눈빛만 봐도 뭘 원하는지 바로 알던 사이잖아.
이쯤 얘기했으니 내가 뭘 원하는지 알겠지?
이 편지가 가위가 되는 거야.
언니 마음속 자책의 무한굴레를 싹둑 자르는 신기한 가위!
내가 언니 슬픔에 시한부 판정을 내려줄게.
딱 나 떠난 지 일 년이 되면
나를 잃은 슬픔이랑 완전히 굿바이하는 거야.
내가 물 먹을 때 날름대는 혀끝 같은 벚꽃 잎이 지고
연초록 새순이 짙어지면
나를 잃은 슬픔도 벚꽃 따라 지고
우리 행복한 추억은 녹음처럼 더 짙어질 거야.
언니, 우리 시간은 사람들 시간보다 빨리 갔잖아?
그래서 내가 빨리 떠나기도 했지만
우리 다시 만나는 날까지도 나한텐 금방일 거야.
호호할머니가 된 언니가 올 때까지 신나게 놀고 있을게.
언니 못 알아볼까 봐 걱정 안 해도 돼.
모습이 아무리 바뀌어도
언니 목소리, 언니 냄새는 절대 못 잊으니까.
그때까지 내 털 넣어서 만든 반지,
내 스톤으로 만든 목걸이,
그리고 언니 마음속에서 늘 웃으며 함께하자!
안녕~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된 게 아니고
'천국'에서 시작된,
행운의 편지가 아니고
'위로'의 편지입니다.
펫로스를 겪은 분들께 무지개다리 건넌
반려동물 시점에서 편지를 써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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