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언니에게

언니의 영원한 첫사랑 초롱이가

by 금강이 집사


언니, 안녕~

초롱초롱 초롱이야~

올해도 곧 끝나가네.

내가 떠난 해라 언니가 울적한 연말을 보내고 있어서 편지를 써.



13년 전 전 꼬꼬마였던 언니랑 꼬물이였던 내가

첫 눈맞춤 했던 날 기억나?

언니는 날 보자마자 반짝이는 내 눈빛에 홀려 버렸지.

나도 나한테 눈을 못 떼는 언니 눈빛에 자석처럼 끌려

처음 본 언니 무릎 위에 덥석 올라갔잖아.

길냥이였던 울 엄마를 돌봐준 언니 엄마 친구네에서였지.

내 눈빛에 홀린 언니가 나를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졸랐을 때

언니 엄마도 아줌마도 차마 거절하지 못했지.

언니 눈빛이 너무 간절하기도 했고 마침 그날이 언니 생일이었으니까.

언니가 평생 받았던 어떤 생일 선물보다 나를 소중하게 여겼던 거 알아.

초롱이라는 내 눈빛에 딱 맞는 이름을 지어준 그날부터

난 언니 사랑 듬뿍 받으며 늘 행복한 냥이로 살았으니까.


우리 함께한 4700일이 넘는 날 동안

단 한 번도 나한테 화낸 적 없었던 언니,

세상 모든 고양이 중 내가 젤 예쁘다 해주고

나랑 뭘 해도 다 좋아했던 언니,

내가 자는 모습, 밥 먹는 모습, 스크래처 뜯는 모습,

뭐 특별할 것도 없는 행동 하나하나 다

사랑 듬뿍 담은 눈으로 봐줬던 언니.

장난감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언니 손이랑 노는 걸 좋아했던 내가

너무 신이 나버려 언니 손에 상처를 내도

아랑곳 않고 손을 멈추지 않았던 언니,

내가 목욕하다 버둥대서 언니 옷에 구멍을 뚫어도

싫어하는 거 시켜서 미안하다며 씻겨줬던 언니.


그런 언니를 내가 원망할까 봐 걱정하더라?

더 많은 시간 함께해주지 않았다고 미안해하지 마.

내가 성장하는 거 봐줬던 것처럼 나도 언니가 성장하는 거 다 지켜봤잖아.

학교와 학원을 다니던 언니가 대학을 가고 기숙사 생활을 하고

알바까지 하면서 바빴던 거 잘 알아.

어쩔 수 없이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늘었던 거 다 이해해.

언니가 집에 오면 엄청 쫓아다니고 다시 나가려고 하면

계속 언니 부르면서 문 앞에 앉아 있었던 거 후회되네.

내가 원망하면서 울었다고 언니가 생각할 줄 알았다면 적당히 할걸.





아픈 티 안 냈던 것도 후회돼.

갑자기 내가 밥을 안 먹어서 병원에 데려갔다가

입원까지 해야 된대서 너무 놀랐지?

차라리 아픈 거 좀 더 잘 숨겨서 언니 옆에서 떠났더라면 좋았을 걸.

언니가 병원 연락받고 급하게 왔지만

내가 이미 떠나버린 후여서

입원시킨 것까지 후회하게 만들어 버렸네.

근데 언니, 내가 4살 때쯤 단추를 삼켜서 큰 수술한 적 있잖아.

의사 쌤이 마음의 준비하라고 했지만 기적처럼 내가 다시 회복했잖아.

그 이후는 우리한테 덤으로 주어진 행운의 시간이었다고 생각하면 어때?


언니가 거의 매일 내 생각하며 우는 모습 보면서 맘이 너무 아파.

언니는 꼬물이었던 내가 자라고 나이 들어가는 동안 내내 지켜줬잖아.

내 옆을 비운 시간에도 마음으로는 늘 지켜줬던 거 알아.

떠나기 직전 잠깐 옆에 없었다고 미안해하지 마.

병원에서 이미 떠난 나를 봤을 때

살아있는 것 같다고 느꼈던 것처럼 지금도 그렇다고 생각하면 좋겠어.

난 여전히 언니 마음속에도 살아 있잖아.



언니한테 내가 마지막 인사했는데

언니는 못 들은 것 같더라?

떠나기 전날 저녁에 언니가 면회 왔을 때

힘없이 있던 내가 갑자기 언니 품에 안겨

발 뻗어 언니 어깨까지 올라가려고 했잖아.

내 호흡이 갑자기 더 빨라져서 나한테 안 좋을까 봐

더 안고 있지 못했던 언니가

나중에 나를 너무 빨리 내려놨다고 후회하더라?

내가 작은 소리로 인사 다 마쳤을 때 언니가 내려놨던 거야.

그때 내가 했던 말 다시 해줄게.

“언니, 덕분에 행복했어. 나 곧 떠지만 너무 슬퍼하지 마. 고마워. 사랑해”



내가 떠난 날, 언니 절친이 찾아와서 아무 말 없이 언니 안아주고

내 스톤이랑 액자 보면서 같이 울어줬잖아.

그리고 며칠 계속 찾아오면서

집에만 있으려는 언니를 밖으로 끌고 나가기도 했고.

그런 절친이 있는 언니라서,

사랑할 줄 알고 사랑받을 줄 아는 언니라서,

그리고 언니가 나를 키워준 것처럼 내가 언니 마음을 키워줬으니까.

앞으로는 언니 걱정 더는 안 하려고 해.


난 언니한테 사랑하는 법을 알려준 첫사랑이잖아.

언닌 나랑 함께 하면서 그리고 떠나보낸 뒤 배운 사랑으로

앞으로 살아가면서 더 많은 존재를 잘 사랑하면서

점점 더 행복하게 지낼 거라 믿어.

언니도 내 걱정은 올해까지만 하는 거다! 약속!



난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곳에서 아픈 거 하나도 없이

냥친들이랑 신나게 뛰어놀면서 잘 지내고 있어.

혹시 다음 생이 있다면 꼭 언니 앞에 나타날게.

초롱초롱한 어떤 눈을 마주치면 언닌 바로 알아보게 될 거야.




나 떠난 직후에 나를 잊으라고 다른 아이 입양을 권한 지인한테

언니가 상처받았던 적 있잖아.

지금은 언니 생각이 좀 바뀐 거 알아.

시간이 좀 더 흘러 언니가 날 덜 슬프게,

건강하게 그리워하게 되고

언니의 마음도 통장도 지금보다 더 빵빵해지면

집 없는 누군가를 집으로 데려올 맘을 먹었더라?

난 언니만 바라보고 언니만 사랑했지만

언니도 나만 바라보고 나만 사랑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욕심쟁이 아냐.

언니의 첫사랑인 내가 언니의 두 번째, 세 번째 n번째 사랑을 응원할게.

그 대상이 동물이건 식물이건 사람이건 모두 다 말이야.



언니, 내가 간식 얼마나 좋아했는지 잘 알지?

난 여기서도 언니가 잔뜩 만들어준,

닳아 없어지지 않는 간식을 자주 맛보고 있어.

무슨 간식이냐고?

우리가 함께 만든 추억 간식.

언니도 우리 간식 가끔만 꺼내서 음미해줘.

슬픈 맛은 이미 너무 많이 먹었으니까.

행복의 맛, 귀여운 맛, 즐거운 맛, 웃기는 맛, 따뜻한 맛으로 골라가면서 말이야.


늘 서로를 지켜봐 줬던 것처럼 언니 계속 지켜볼게.

한 해, 한 해 웃음도 사랑도 행복도 늘어가는

언니의 삶 지켜봐 줄게. 안녕~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된 게 아니고

'천국'에서 시작된,

행운의 편지가 아니고

'위로'의 편지입니다.

펫로스를 겪은 분들께 무지개다리 건넌

반려동물 시점에서 편지를 써 드립니다.

편지 신청 : revision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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