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작전으로 가족이 된 몽돌이가
이 편지는 천국에서 발송돼
무지개 미끄럼 타고 슝~ 배달된 편지입니다.
누나, 안녕? 나 몽돌이야.
날개 같은 커다란 귀를 가진 나를 처음 봤을 때
누나가 나를 천사 같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진짜 천사가 돼 버려서 많이 힘들지?
누나의 비타민이고 홍삼이었던 내가 떠나고
축 쳐져 있는 누나 모습이
마치 내가 기운 없어 쫑긋 귀 쳐진 채 엎드려 있을 때 같더라.
내가 누나 자주 핥아 주던 것처럼
내 편지가 누나 아픈 마음도 핥아 줄 수 있으면 좋겠어.
큰누나 친구 집에서 더는 살 수 없게 된 나를 처음 데려왔을 때
누나랑 큰누나가 벌였던 비밀 작전 생각나?
작전명, “몽돌이 가족 만들기, 할머니를 속여라!”
원래 반려동물 입양은 절대 안 된다던 할머니한테
친구네 사정이 생겨서 잠깐 돌봐주는 거라고 거짓말했잖아.
할머니가 나한테 푹 빠진 뒤에 진실을 밝힐 계획이었지.
내 협조가 없으면 성공이 불가능한 작전이었는데
내가 처음에 좀 까칠하게 굴어서 누나들 맘 졸였지?
그래도 결국은 내가 할머니 맘 사로잡아서 작전 성공했잖아.
처음에 상황 파악 제대로 못하고 까칠하게 굴어서 미안해.
갑자기 낯선 집으로 가서 불안했던 거였어.
그래도 금세 적응해서 내 귀염력 뿜뿜 하면서
누나들이랑 할머니 졸졸 따라다녀서 기특했지?
처음 누나네 갔을 때 다섯 살이던 내가 10년 넘게 함께 살면서
행복한 순간이 참 많았어.
아니다, 많은 정도가 아니라 매 순간이 행복했어.
같이 장난감 가지고 놀고 산책하고
내 개견기 뽐내서 할머니한테 과일 받아먹고
누나 퇴근 시간에 맞춰 할머니랑 밖에서 기다리다가
꼬리 흔들며 반겨주는 내 모습에 누나가 환하게 웃어줄 때도 좋았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누나랑 같이 누워 있을 때도 참 좋았어.
아, 그래도 최고는 누나가 일 그만두고 일 년쯤 쉴 때였네.
누나랑 거의 떨어지지 않았던 때라 사진도 동영상도 많이 찍었잖아.
나는 여기서 집 생각 나면 이렇게 좋았던 때만 떠올리는데
누나는 내가 아팠던 때만 떠올리더라?
내가 좀 이상해서 병원에 데려가 만성신부전인 걸 알았을 때부터
내가 떠나기까지 겨우 3주 정도인 그 시간 말이야.
우리 함께 행복했던 시간의 150분의 1도 안 되게 짧은 그 시간!
내가 만약에 지금 행복했던 시간보다
누나를 아프게 했던 때만 계속 떠올리면 누난 어떨 것 같아?
한밤중에 누나가 깨서 잠든 나를 실수로 쳐서
놀라 잠에서 깬 내가 누나 팔뚝을 물어버렸던 때,
물린 상처가 덧나는 바람에 누나가 입원까지 했던 때,
내가 병원에서 수액 맞다가 발작 일으켜서 누나 맘 아프게 했던 때,
주간 입원하고 집에 와서 잠깐 누나가 주방에 간 사이에 떠나버려서
누나 오열하게 했던 때, 그런 시간들 말이야.
누나 사는 모습 지켜봐 달라는데
나만 떠오르면 자꾸 슬퍼하니까 맘 아파서 못 보겠어.
누나가 뭘 잘못해서 내가 떠난 건지 이유를 찾으려고 하지 마.
병을 늦게 발견해서?
병원 처방 사료로 바꿔서 내 입맛을 잃게 만들어서?
억지로 약 섞어 강제 급여해서?
여러 번 발작하는데도 수액을 계속 맞춰서?
누나가 내가 앓은 병 공부, 약 공부를 제대로 못해서?
그렇게 자꾸 거슬러 가다 보면 어디까지 가는지 알아?
날 가족으로 품은 것부터가 잘못이 돼 버려.
그게 맞아? 아니잖아.
내가 떠난 이유는 단 하나야.
하늘이 정한 떠날 때가 됐던 거야.
누나 사랑이 부족했다고 생각하지 마.
사랑이 너무 넘쳐서 지금 누나가 힘든 거니까.
누나를 미워하는지 궁금하다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어?
내가 어떻게 누나를 미워해?
제일 고맙고 제일 사랑하는 누나인데.
나한테 미안하다는 말도 이제 그만!
내 사진 보면서 “미안해.” 대신에
“사랑해”라고 말해줘. 알았지?
내 사진이랑 동영상 자주 보는 건 좋은데
내가 아플 때 이후 거는 보지 마.
그때 모습은 지금 내 모습이랑 완전 달라.
난 여기 오자마자 아주 옛날,
내 견생 최고 몸무게와 최고 깨발랄을 뽐내던 때로 돌아갔거든.
누나, 나 처음 데려왔을 때처럼 우리 작전 하나 하자.
작전명, “슬픔 잘 보내기, 슬픔을 승화시키기!”
요즘 집을 잃거나 한 번도 집이란 게 없었던 댕친들한테 관심이 생겼다며?
나 잃은 슬픔에 빠져있던 누나가
다른 곳에 관심이 생겨서 정말 반가워.
나중에 동생 데려오면
누난 분명 나랑 지냈던 때보다 훨씬 잘할 수 있을 거야.
누나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고
나 때문에 후회했던 거, 깨달은 것들도 많으니까.
내가 다른 댕친들한테 까칠했을 때 제대로 가르쳐볼 걸 싶었던 거,
내가 마지막에 너무 힘들어할 때
그냥 집에서 꼭 끌어안고 있을 걸 후회했던 그런 것들 말이야.
새로 오는 동생이 누나 사랑 듬뿍 받아도 난 질투 하나도 안 할 거야.
그런데 할머니랑도 충분히 의논하고 시간을 갖고 고민했으면 좋겠어.
할머니도 내가 자꾸 아른거린다고 하시고 그리워하시지만
동생 데려오는 일은 앞으로 십 수년을 함께하겠다는
책임이 따르는 약속이라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잖아.
바로 입양하는 거 말고 '임시 보호'도 있으니까 잘 생각해 봐.
전국의 집 없는 친구들 다 모여 있는 ‘포인핸드’라는 데가 있대.
시간 날 때 짬짬이 거기에 누나 눈에, 마음에 들어오는 녀석이 있는지 봐 봐.
누나, 밖에서 댕친들이 놀자고 불러.
난 여기서 신나게 놀면서 가끔 누나 잘 지내나 지켜볼게.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지내야 돼.
내가 제일 사랑하는 누나, 안녕~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된 게 아니고
'천국'에서 시작된,
행운의 편지가 아니고
'위로'의 편지입니다.
펫로스를 겪은 분들께 무지개다리 건넌
반려동물 시점에서 편지를 써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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