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대학 진로 정해준 아들이
이 편지는 천국에서 발송돼
무지개 미끄럼 타고 슝~ 배달된 편지입니다.
엄마, 안녕~
꿈에 한 번만 나와 달라는 엄마 목소리 들었는데
아직은 준비가 안 된 것 같아서 편지 먼저 써.
무슨 준비냐고?
이 편지 다 읽으면 알게 될 거야.
엄마 꿈에 내가 안 나타나 준다고
내가 엄마를 잊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내가 어떻게 그러겠어?
엄마 소원 덕분에 따뜻한 집이 생겼고
엄마 사랑 덕분에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는데.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엄만 좀 아팠잖아?
고등학생이었던 엄마 마음에 심한 감기가 들어서
부모님이 생일 선물로 엄마의 오랜 소원을 들어줘서 날 만났지.
엄마는 날 보자마자 바로 사랑에 빠졌지?
내가 예쁘고 귀엽고 깨발랄하고
누구라도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외모이긴 하지. 헤헤
내 덕분에 엄마는 마음 감기가 다 나아서
약도 안 먹게 돼서 참 다행이었어.
집안의 막내여서 이름도 ‘막내’가 됐던 내가
나중에 엄마랑 둘이 부모님 집에서 독립해
이름이 ‘아들’로 바뀌면서 난 엄마의 유일한 아들이 됐지.
엄마 출근하면 나 심심할까 봐 입양한 동생 이름을
남자인데도 ‘딸’로 이름 붙인 건
엄마 아들은 나뿐이란 뜻인 거지? 헤헤
엄만 나랑 동생이 어떻게 지내는지가 제일 궁금하지?
예전에는 우리가 서로 엄마 차지하려 하고 데면데면 마이웨이였지만
여기선 어딜 가든 같이 다니고 신나게 놀고 있어.
동생이 호기심은 많으면서 겁쟁이인 거, 엄마도 잘 알지?
그러니 어쩌겠어.
형인 내가 앞장서서 잘 데리고 다녀야지.
사실 동생이 좀 안쓰럽더라구.
나랑 엄마 사이 질투할 정도로 엄마바라기였던 녀석이
나 떠나고 나서 엄마랑 알콩달콩 좀 오래 살다 올 것이지,
겨우 일 년 있다 여기 왔잖아.
지상에서의 견생도, 엄마랑 산 기간도 나보다 훨씬 짧아서 좀 안 됐어.
아무튼 내가 예전하고 다르게 동생 잘 챙기고 있으니까 엄만 걱정 마.
옆에서 동생이 전해 달래.
갑자기 뱅글뱅글 돌기 시작해서 엄마 무섭게 해서 미안하다네.
자기도 머리에 병이 생겨서 맘대로 할 수가 없었대.
여기선 돌지도 토하지도 않고 하나도 안 아프니까 걱정하지 말래.
엄마랑 함께여서 행복한 순간들이 참 많았어.
“산책 갈까?” “나가까?” 하던 엄마 목소리 아직 생생해.
난 엄마 말 떨어지기 무섭게 귀 쫑긋 세우고 미소 발사하면서
파바바바박 현관으로 뛰어갔잖아.
리드 줄 채울 땐 신나서 앞발 들고 웃으면서 빨리 가자고 재촉했고.
내 귀 쫑긋과 미소에 엄마 얼굴에도 미소가 꽃처럼 피었지.
유난히 과일도 좋아해서 엄마가 사과, 딸기, 귤만 들어도
우다다다다 신나서 간식자리로 뛰어가
나 한 입, 엄마 한 입 달콤 상큼했던 시간들.
엄마 퇴근 기다리며 오늘은 어떤 간식일까 기대하던 것도 생각난다.
지친 퇴근길에도 반려용품점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던 엄마였잖아.
함께한 모든 순간이 좋았지만 그래도 내가 제일 좋아했던 시간은
엄마한테 딱 붙어 기대거나 밤에 이불속에서
엄마 사랑 같은 체온을 느낄 때였어.
엄마랑 하는 건 뭐든 다 좋았는데
목욕이랑 미용은 왜 해도 해도 적응이 안 됐을까?
그것 때문에 엄마 대학 진로까지 내가 정해준 셈이 돼 버렸잖아.
참, 대단한 아들이다 그치? 헤헤.
나 스트레스 덜 받게 하려고 해줬던
“엄마표 시간 차 미용” 정말 고마웠어.
하루는 얼굴, 하루는 다리, 하루는 몸통.....
덕분에 완벽한 내 미모가 며칠 동안 우스꽝스러워지긴 했지만 말이야.
그 모습마저 엄마 눈엔 너무 귀여웠지?
날 정말 많이 사랑한 탓에,
하필 내가 떠난 날이 내 생일이어서 너무 슬퍼했던 엄마,
이미 떠난 나를 데리고 장례식장까지 갔다가 차마 못 보내고 다시 돌아와
다음날 아침에 가서도 내내 못 보내다가 오후에야 겨우 보내줬던 엄마.
가족들한테 “유난이다.” 소리까지 들어서 더 마음 아팠을 엄마,
엄마가 내 유골함 안고 내내 울다 지쳐 잠들고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먹으면 토하더니
2주 만에 몸무게가 10킬로나 빠졌을 때 내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어?
엄마가 왜 그렇게 힘들어하는지 알아.
날 너무 어이없이 떠나보냈기 때문에,
다 엄마 잘못이라 생각하기 때문인 거지?
그러지 마.
나 건강검진 해줘서 심장에 있는 혹도 찾아내고
큰 병원 여러 군데서 검사해
그중 한 곳에서 수술해 잘 회복시켰던 엄마잖아.
엄마가 그렇게 큰 병도 이겨내게 해줬는데
스케일링 때 마취 사고 겪은 뒤부터
내가 계속 토하고 밥을 안 먹어서
결국 엄마가 강제 급여까지 하게 만들었지.
마지막에 엄마가 넣어준 밥이 목에 걸려서 떠났던 게 아니야.
물에 충분히 불린 습식 사료가 걸려서겠어?
아니야, 하늘이 정한 떠날 때가 돼서 그마저도 삼키지 못했던 거야.
엄마가 나 떠난 슬픔에 동생 산책도 못 챙기다가
며칠 만에 나갔을 때 마주쳤던 아주머니 기억나?
아련한 눈빛으로 동생을 한참 보다가
엄마랑 눈 마주친 순간 동시에 눈물 터졌던 아주머니 말이야.
엄마는 처음 본 그 아주머니랑 얘기하면서
가족들한테도 이해받지 못했던 슬픔을 위로받았잖아.
알고 보니 그 아주머니도 비슷한 사연이 있었지.
첫째가 떠난 뒤 너무 슬퍼서 둘째를 제대로 못 챙겼는데
둘째가 한 달 만에 떠나서 후회로 힘들다고,
힘들겠지만 동생 잘 챙기라고,
자신처럼 후회하지 말라고 말했잖아.
그때 엄마 망치로 한 대 맞은 느낌이었지?
동생도 형을 잃어 슬플 거고, 엄마가 자신을 잘 챙기지 않아서
또 슬플 거라는 걸 그제야 깨닫고 다시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잖아.
엄마가 그 순간을 잘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여전히 우리 생각날 때마다 슬퍼하는 엄마는 혼자가 아니잖아.
내가 둘이 뽀뽀할 때마다 끼어들면서 질투 좀 했던
전 남친, 현 남편인 아빠도 있고
결혼 전 아빠랑 살다가 함께 살게 된 개냥이 설이랑 아리도 있고
엄마가 낳은 예쁜 딸 민이도 있잖아.
우리 때문에 더는 슬퍼하지 말고
우리한테 못다 준 사랑은 아빠, 민이, 설이, 아리에게 다 줘. 알았지?
엄마가 꿈에 와 달라고 하지만 아직은 못 가겠어.
엄마가 또 울고 슬퍼할까 봐 못 가는 거야.
편지 처음에 말한 준비는 엄마 마음의 준비야.
우리를 생각날 때 슬픔 대신
신나게 놀고 있을 우리 떠올리면서 미소 지을 수 있게 되면,
엄마 마음이 지금보다 조금 더 튼튼해지면 그때 찾아갈게. 약속할게~
엄마, 우리 같이 신나게 놀았던 그 바다 있잖아.
민이한테도 꼭 보여줘.
엄마 아빠가 민이랑 예전 우리처럼 신나게 노는 모습 여기서 지켜볼게~
그럼 안녕~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된 게 아니고
'천국'에서 시작된,
행운의 편지가 아니고
'위로'의 편지입니다.
펫로스를 겪은 분들께 무지개다리 건넌
반려동물 시점에서 편지를 써 드립니다.
편지 신청 : revision0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