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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슴 엄마에게

엄마의 영원한 경호원 앵두가

by 금강이 집사


이 편지는 천국에서 발송돼

무지개 미끄럼 타고 슝~ 배달된 편지입니다.



엄마, 안녕?

원래도 걱정 많고 겁 많은 엄마가

요즘 내 빈자리 더 자주 느끼고

힘들어해서 편지를 써.



동생 자두가 자꾸 아파서

나 떠나던 일 년 전 생각도 부쩍 많이 나고

덜컥 자두가 떠날까 봐 겁나는 엄마 맘 잘 알아.

처음 만났을 땐 작고 귀여운 아기였던 내가

엄마 사랑 쏙쏙 받아먹으면서 쑥쑥 자라

엄마의 든든한 보디가드가 됐잖아.

그런데 지금은 옆에서 지켜줄 수가 없어서 맘이 아파.


내가 산책할 때는 물론이고

집에서도 얼마나 임무에 충실했는지 엄마도 잘 알지?

엄마가 옷방에서 빨래 널 때도

주방에서 음식이나 설거지할 때도

심지어 화장실에서 볼일 볼 때도

늘 엄마 곁을 지키는 그림자였잖아.

집에 온 손님이랑 같이 놀다가도

엄마가 잠깐 일어나면

자두는 손님이랑 계속 놀았지만

난 예외 없이 엄마 뒤를 따랐잖아.

엄마가 우리 두고 출근한 날이면

침대에서 자다가도 엄마 퇴근 한 시간 전부터

현관으로 나가 대기하고 있었고

밤에 모르는 사람이 문 두드려서 엄마가 무서워했을 때도

내가 얼른 엄마 침대에 뛰어올라가 지켜줬잖아.




내가 유일하게 임무를 잠시 망각했던 건 전봇대를 만날 때였지.

엄마 출퇴근길 함께하면서

온 동네 전봇대를 하나하나 그냥 지나치지 못했잖아.

어떤 댕친이 다녀갔는지 킁킁킁 꼼꼼하게 확인하고

내 흔적도 남겨주고 어떨 땐 아예 누워버리기도 했잖아.

기다리다 지친 동생 자두까지 땅바닥에 주저앉게 만들어서

엄마 맘 조급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그래도 출근길에는 엄마 종종걸음 쫓아 전봇대 빨리 지나친 건 기특했지?

퇴근길에는 이때다 싶어 전봇대마다 오줌 도장 찍느라

출근길보다 몇 배나 더 걸렸지만 말이야.


내 유일한 불만은 경호 임무를 못 하게 되는 거였어.

주로 날씨가 안 좋아서 엄마 혼자 출근할 때였지.

엄마 신발 물어다 침대에 두거나

현관 앞 발 매트에 내 흔적 남겨뒀잖아.

그래도 엄마 치우기 힘들까 봐

살짝 아주 살짝 화난 티만 내줬던 거 알지?


내가 유모차에서 잘못 뛰어내려 낑 소리만 내도

다쳤을까 봐 화들짝 놀라던 엄마였는데

내가 그런 식으로 떠나서 많이 놀랐지?

엄만 내가 전날 저녁을 잘 안 먹고

좀 거칠게 숨을 쉬니까 감기라고 생각했잖아.

다음 날 아침 병원 가려고 택시 기다리던 엄마 품에서

내가 갑자기 떠나버려서 너무 슬펐지?

엄마는 더 일찍 병원에 가지 않을 걸 아프게 후회했지만

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해.

이미 정해져 있었던 그때가

엄마 없을 때가 아니고, 병원 침대 위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그렇게 떠나는 바람에

엄마가 자두 건강에 더 전전긍긍하게 된 것 같아서 걱정이야.



비록 이제는 엄마 곁에서 보디가드는 할 수 없지만

마인드가드가 되려고 해.

엄마 마음을 지키는 영원한 경호원!

엄마, 예전에 낯선 사람이 우리 집 문 두드렸을 때처럼

걱정과 불안이 엄마 맘을 두드리면

심호흡하면서 내가 엄마 맘 진정시켜 줬던 그때를 떠올려봐.


엄마, 언젠가는 자두도 엄마 곁을 떠날 거라는 거 알지?

아직 오지 않은 일에 대해서

언제 올지도 모르는 일에 대해 미리 걱정하지 마.

엄마는 한 번 겪어봤기 때문에 더 무섭다고 생각하지?

아니야. 한 번 겪어봤기 때문에 나 때보다는 잘 견딜 수 있어.

엄마가 느끼지 못하더라도 엄마 마음에 근육 생겼으니까.

알았지? 엄마 자신을, 조금 더 강해진 엄마 마음을 믿어야 돼.



자두야~

늘 붙어 있던 언니가 갑자기 떠나서 슬펐지?

네가 한동안 무기력에 빠져있어서 걱정했는데 다시 기운 차려서 다행이야.

나처럼 편식하지 말고 엄마가 챙겨주는 거 잘 먹어.

네가 덜 아프고 건강하게 엄마 옆에 더 오래 있다 올 수 있게

하느님한테 부탁하고 있어.

네가 놀자고 할 때 더 잘 놀아주지 못한 거 후회하고 있어.

언젠가 네가 여기 오면

언니가 그때 못 놀아준 몫까지 다 놀아줄게.

엄마 보디가드 역할은 이제 네가 맡아줘~ 부탁해~


엄마, 자두야~

오늘 하루하루, 지금 순간순간 즐겁게 잘 지내~

둘이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 지켜볼게~ 안녕~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된 게 아니고

'천국'에서 시작된,

행운의 편지가 아니고

'위로'의 편지입니다.

펫로스를 겪은 분들께 무지개다리 건넌

반려동물 시점에서 편지를 써 드립니다.

편지 신청 : revision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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