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봄날 태어날 동생을 품은 엄마에게

엄마의 버팀목이었던 호야가

by 금강이 집사

엄마 안녕~

우리 마지막 인사도 못한 게 맘에 걸려서 편지를 써.

꼬물이였던 나한테 엄마가 첫눈에 반해서

호랑이처럼 멋지고 강하라는 이름도 지어줬는데

내가 순식간에 약한 모습 보이면서 너무 이르게 떠나버렸지?

이름에 걸맞게 자라서 엄마의 듬직한 버팀목이 되긴 했는데 말이야.



주말 연인이었다가 주말 부부가 돼서 아빠 없는 시간이 긴 엄마였잖아.

그 시간을 버티게 해준 나였는데

함께 한 시간 7년도 못 채우고 떠나서

한 달이나 된 지금까지도 엄마는 실감이 안 나서 멍한 거 알아.

주변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들 엄마한테

뱃속의 아기 생각해서 얼른 슬픔을 털어내라고 해서,

엄마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잘 안 돼서 괴로운 거 알아.


여기 와서 배운 건데 슬픔은 억지로 누르면 안 된대.

슬픔은 풍선 같은 거라서 한쪽을 누르면 다른 데서 튀어나오고

너무 세게 눌러 빵 터져서 온 마음에 번지면 더 힘들어진대.

엄마, 억지로 괜찮은 척하지 않아도 돼.

슬프면 슬퍼하고 눈물 나면 울어도 돼.

그래도 분명한 건 앞으로 그런 날들이 점점 줄어들 거라는 거야.

난 언젠가 엄마가 내 생각하면서 눈물짓지 않고

슬며시 미소 짓는 날이 올 거라는 걸 알아.

우리한텐 내가 떠날 무렵의 아픈 기억보다

함께 행복했던 추억이 훨씬 더 많으니까.


우리 집에 온 사람들은 내가 딱히 경계는 안 하지만

곁에 가지 않고 캣 타워 위에서 무심히 쳐다만 봐서

무뚝뚝 도도냥인 줄 알지만 엄마는 내 진짜 모습 잘 알지?

엄마 한정 최강 애교냥!

혼자인 엄마한테서 자석처럼 떨어질 줄 몰랐고

엄마 부드러운 손길에 가르릉 골골송 부르고

엄마가 멀리서 부르면 걸음마다 냥, 냥, 냥 소리 얹으며 다가갔고

퇴근해 들어온 엄마 다리 사이로 8자 그리며 오가다가

배 뒤집어 누워 발라당 애교로 엄마 하루치 피로 다 풀어줬잖아.

엄마가 “간식 먹을까?” 하면 따라가면서 “냐아아아~” 대답하고

트릿 빨리 달라고 솜방망이 앞발로 툭툭 칠 때는 또 얼마나 귀여웠게? 그치?




보통은 거실에서 혼자 자던 내가 가끔 엄마 침대에 올라가기도 했지.

엄마가 새벽에 깨서 나를 발견하면 근무 때 피곤할 걸 감수하고

다시 안 자려고 애썼던 거 알아.

엄마 손바닥 베개 베고 엄마 엄지 쓰담쓰담 받을 때면

행복에 취해서 스르르 눈이 감기곤 했어.


난 엄마 한정 애교쟁이면서 엄마 한정 똑쟁이기도 했지.

엄마가 해주는 거 뭐든 빨리 배우고 익숙해졌잖아.

우리 집 화장실은 내 전용 미용실이었지.

엄마가 내 빗 들고 화장실로 가면 내가 얼른 앞질러

엄마 잘 따라오나 확인하면서 먼저 들어가서

엄마 부드러운 빗질에 편하게 몸을 맡겼잖아.

처음엔 기겁했던 발톱 깎기에도 금세 익숙해져서 5분 컷 가능해졌고

댕댕이들 특기인 “기다려. 먹어. 이리와.”도 금방 깨우쳤고 말이야.

물론 엄마의 치트키 닭 가슴살 트릿에 아주 살짝 혹하기도 했지만.


엄마, 내가 낯선 이곳에서 잘 지내는지 걱정이지?

내가 엄마랑 여러 번 이사할 때마다 적응력 끝내줬던 거 기억하지?

여기도 오자마자 바로 구석구석 탐방 끝내고 금세 적응 완료했어.

여긴 춥지도 덥지도 않고 맛난 간식이 넘쳐나고

실컷 먹어도 살도 찌지 않는 신기한 곳이야.

오자마자 갑자기 못 쓰게 됐던 뒷다리도 멀쩡해졌고

막혔던 혈관도 뻥 뚫려서 아픈 곳 하나도 없이 쌩쌩해.

엄마랑 살 때는 몰랐던 냥친들이랑 날듯이 뛰어노는 재미랑

맛난 간식을 냥친들이랑 같이 먹으면 더 맛나다는 것도 알게 됐어.

예전에 좋아하던 캣 타워에서 바깥 구경하는 것처럼

가끔 엄마 있는 아랫동네 구경도 하고 말이야.



엄마는 자꾸 나한테 미안해하더라?

미안할 일이 아닌데 말이야.

엄마 출근하고 내가 혼자 있는 동안 외로웠을 거라고?

원래 우리 냥이들은 외로움이 뭔지 잘 모르기도 하고

나도 외로움이란 걸 느껴본 적 없어.

그냥 놀다 자다 바깥 구경하다 보면

엄마가 퇴근해 올 걸 알았으니까.

함께 행복할 시간이 돌아올 걸 알았으니까.

엄마가 퇴근하면 따라다니면서 냥냥거린 건

늦었다고 잔소리한 게 아니라

오늘도 일하느라 고생했다고, 반갑다고 인사한 거야.


내가 아팠던 걸 몰라서 미안하다고?

내가 울면서 뒷다리 끌고 엄마한테 갔던 그 새벽 전에는

혈관이 갑자기 막힐 수 있다는 거

나도 엄마도 전혀 몰랐는데 그게 왜 미안해?

엄마가 이렇게 힘들어할 줄 알았으면

내가 아무리 아파도 좀 참을 걸 그랬어.

엄마 품에 안겨서 피 토하면서 비명 질렀던 거,

결국 병원에서 고통스러워하다가

눈도 못 감고 떠난 모습 보여서 미안해.

우리 서로 제일 미안한 그때 모습은 이제 떠올리지 말자.

그 기억 때문에 우리 행복했던 추억들이 빛바래는 것 같아 속상해.

차라리 조금 후에 편안히 눈 감고 잠든 듯이 엄마한테 안겨서

병원을 나섰던 내 모습을 떠올리는 거 어때?


난 엄마가 언제나 나한테 최선을 다했다는 거 잘 알아.

덕분에 난 매 순간 따뜻하고 행복하고 지낼 수 있었어.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는 엄마,

넘치는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살다가 떠나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

엄마, 사람들이 아빠랑 떨어져 있어서 외롭지 않은지 물으면

내 덕분에 그런 감정 느낄 새도 없다고 대답하곤 했잖아.

앞으로는 곧 태어날 동생 덕분에 그렇게 될 거야.


아빠~ 부탁이 있어.

아직 내 물건들은 물론이고 화장실에서 캔 감자까지도

못 버리고 있는 엄마, 잘 위로해줘.

내가 부드러운 엄마 팡팡보다 묵직한 아빠 팡팡 더 좋아했던 거 알지?

아빠의 묵직한 사랑, 엄마랑 태어날 아가한테 팡팡 뿜어줘. 알았지?



엄마 아빠, 내가 품에 안기는 건 결국 익숙해지지 못했잖아?

엄마는 알레르기 때문에 나를 꽉 껴안지 못했고

아빠가 안을 때면 내가 벗어나려고 발버둥치곤 했고.

봄에 태어날 동생은 내 몫까지 맘껏 꽉 껴안아줘.

엄마 아빠가 나랑 함께하면서

작고 여린 존재를 사랑하는 법 넘치게 배웠으니까

동생도 엄마 아빠 사랑 듬뿍 받아 나처럼 행복할 거야.

동생이 자라는 만큼 행복도 점점 커질 우리 가족 모습

나도 함께인 듯 흐뭇하게 지켜볼게.

다 함께 웃는 모습 많이 보여줘. 알았지?



엄마 우리 숨바꼭질 놀이 자주 했잖아.

엄마가 “호야 어딨지?” 찾아다니면 난 조용히 숨어 있었고

엄마가 화장실 들어가면 문밖에 숨어 있곤 했지.

그러다 갑자기 점프해 나타나 엄마를 웃게 했잖아.

우리 조금 긴 숨바꼭질을 한다고 생각하자.

나중에 나중에 호호할머니가 된 엄마가 여기 오는 날,

내가 짠! 점프하면서 엄마 앞에 나타날게.

그때까지 내내 행복해~ 안녕~ 사랑해~




이 편지는 영국에서 시작된 게 아니고

'천국'에서 시작된,

행운의 편지가 아니고

'위로'의 편지입니다.

펫로스를 겪은 분들께 무지개다리 건넌

반려동물 시점에서 편지를 써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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