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생활, 더워요더워, 삶의 의지 찾기
요즘 차를 많이 마신다. 일본 가서 차를 많이 사오기도 했고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기도 해서. 차나 커피는 마시기까지의 과정이 즐겁다. 물을 끓이고 차를 고른다. 달콤한 향이 나는 가향차도 좋고 차 자체의 맛을 즐기는 스트레이트 티도 좋다. 잔을 고르는 것도 즐겁다. 홍찻잔은 내부가 하얀 것이 수색이 잘 보여 좋다. 물이 끓으면 포트와 잔을 데우고 차를 우린다. 바쁠 때는 타이며만 맞춰두고 다른 일을 하지만 부러 차가 우러나는 것을 보며 기다리기도 한다. 차가 식는 게 싫어 텀블러에 차를 옮긴다. 잔 부딪히는 소리가 나지 않게 코스터를 깔면 좋다. 그렇게 차를 마시는 순간만큼은 웅웅거리면 세탁기가 돌아가는 내 방에서도 제법 여유를 느낀다.
지구 최고로 더운 날은 끝났다지? 이제부터 지구는 계속 끓는 날일 거니까. 근데 진짜 너무한 거 아닙니까 지구씨? 지난주까지 비가 왔다갔다 하면서 내내 습하더니 장마가 끝나자마자 열대야 시작이다. 가능하면 에어컨을 참아보려 하지만 진심으로 더워서 죽을 것 같다. 취침 모드로 돌려놓고 자도 꼭 한 번은 땀을 뻘뻘 흘리며 깨버린다. 당연히 수면의 질이 좋을 수가 없고 아침마다 일어나는 게 너무 피곤한다. 침대가 닿은 벽면부터 지글지글 끓는 게 느껴지면 아침부터 인상을 쓴 채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과연 이게 맞는 것일까?
여름은 더운게 맞다. 안 더운 여름이 온다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다. 그렇지만 우리가 언제 상상이나 해봤을까? 사람이 더워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대학 시절 농활을 가면 한 창 더운 두 시부터 네 시까지는 일을 하지 않았다. 새참으로 나온 미숫가루를 시원하게 마시고 그늘에서 한숨 자는 거다. 아무리 더운 날이라 해도 정자나 나무 밑은 바람만 불면 시원했다. 그러고 나면 한 풀 꺾인 더위에 마무리 작업을 하고 에어컨도 없는 회관에서 잠을 잤다. 오히려 그런 여름은 더워도 땀 흘리는 만큼 개운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지금은 양산이 생존템이 됐고, 에어컨은 필수품이 됐다. 집에 들어와 찬물 샤워하고 뽀송하게 가루분 바르고 선풍기 앞에서 바람 쐬는 건 옛날 드라마에나 나오는 낭만이 되어 버린 요즘이다.
가끔씩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은 얼마나 삶을 즐기면서 살고 있는 걸까? 인스타속 허세샷 같은 걸 말하는 게 아니라 나처럼 평범, 아니지 평범보다 모자란 사람들은 다들 삶이 즐거워서 사는 걸까? 나이가 들수록 내 삶의 모양새가 나아지지 않는 걸 느낄 때면 더더욱 나는 왜 사는걸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살기 싫다는 말이라기 보다는 정말로 삶의 이유를 모르겠다는 의미다. 나는 그냥 이렇게 살려고 태어난 걸까? 그리 대단하지도 못할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매일매일을 이렇게 꾸역꾸역 보내는 게 맞는걸까? 그러다가도 내가 건방지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는 게 재미없다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세상 모두를 내려치기 하는 것 같아서. 매일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사는 게 너무 괴롭다. 그래서 일부러 즐거운 걸 찾아 나선다. 아이돌에 빠져보기도 하고 운동 가서 억지로 땀을 뺄 때도 있다. 요즘 들어 생긴 새로운 관심사 중 하나는 저금이다. 이 나이에 이제서야? 라고 다들 비웃겠지만 지금이라도 관심이 생긴 게 어디야. 라며 자기합리화를 해 본다. 커다란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나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의지 쯤으로 보면 된다. 자기객관화가 잘 되는 인간이라 3년짜리 5년짜리 적금은 자신이 없다. 요즘에는 모바일로 간단히 가입할 수 있는 단기 적금이 많아서 군것질 하고 싶을 때 쓸데없이 돈 쓰고 싶을 때 조금씩 넣어둔다. 사는게 재미없을 때마다 잔액 확인 하면 예전 돼지 저금통 흔들어 보던 생각도 나고 즐겁다. 다 모이면 주식 사야지, 겨울 코트 사야지 뭐 이런 생각 하면서 일상의 의지를 조금씩 살려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