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도 사람이다 Nov 11. 2024

아들과 함께 해낸 작은 성공

함께 느껴본 성취감

작은 쓰레기 하나로 시작해서 두 개, 세 개 계속해서 눈에 보이는 것이 눈살을 찌푸리게 된다.

작년부터 생각을 해왔지만 잊어버리기도 했고 날씨 탓도 해가며 미루고 미루던 일이 있다.

"아들, 하교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쓰레기 주우면서 걸을까?"

"네! 좋아요!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어요!"

"지금은 등굣길이니 일단 학교로 가고, 이따가 엄마랑 집게 사서 편하게 줍자! 쓰레기봉투는 챙겨 올게!"

하교시간이 다가오고 쓰레기 줍자는 걸 기억하는 아들, 기특하다.

사실 기억을 못 하면 굳이? 사서 고생한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나로서는 고민 아닌 고민을 했을지도 모른다.

기분 좋게 아들과 손을 잡고 다이소로 향했다.

2천 원짜리 집게 두 개를 사들고 당장 포장지부터 뜯어 쓰레기봉투에 담는 아들 녀석이다.






두리번두리번, 없어야 할 쓰레기들이 왜 자꾸 보이는지, 담배꽁초는 말할 것도 없고 과자 봉지도 많다.

마음먹고 담아내는 쓰레기를 보며 뿌듯하고 보람된 일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고 있지만 집까지 고작 20분 거리를 걸으며 줍는 쓰레기 양이 생각보다 많다.

심지어 눈앞에 보이는 길은 깨끗해 보이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곳곳에 숨어있는 쓰레기들이 많다.

작고 작은 쓰레기 하나로 시작해서 쌓이는 것을 보니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이 생각났다.

보통은 비유해서 속담이나 사자성어를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아이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해 주는데 오늘은 비유 자체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아 입을 꾹 닫았다.

반대로 쓰레기봉투 20리터 가격 800원으로 며칠 동안 뜻깊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적어도 돈 낭비, 시간 낭비라고 느껴지지 않을 것임은 확실했다.






"지금 아들이 하는 일은 굉장히 특별한 거야,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거고 아주 대단한 거야."

"왜요? 그냥 쓰레기 줍는 거잖아요."

"고개 돌려서 형 누나들을 봐, 어른들을 봐봐."

"그냥 지나가는데, 왜요?"

"응, 그냥 지나가, 우리도 그래왔고, 그런데 오늘은 쓰레기를 줍고 있잖아? 아들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을 하고 있는 거야.^^"

"힘들지도 않은데 왜 안 할까요?"

그렇다. 힘들지도 않은 일이다.

정확히 말해서 힘들지도, 어려운 일도 아니다.

단지 자기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굳이 힘들게 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피곤하게 산다는 사람들, 반응은 다양하고 아무도 해 볼 생각은 하지 않거나 미룬다.

굳이, 해야 될 이유도 없지만 환경을 생각만 해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겠다는 점에서 이왕 하는 거 일회성으로 끝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우리 이거 매일 해볼까? 내일은 다른 길로 가보자! 어디로 가든, 집 방향만 맞으면 되니까^^"

"좋아요! 재밌겠다!"

물론, 환경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분명 생활하면서 모순이라는 부분도 느끼는 순간이 올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들과 함께 쓰레기를 줍는 일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다.






더 흥미로운 건 아들의 재밌다는 표현이다.

무슨 일을 하던 고민이라는 게 늘 따라왔는데, 아들 녀석이 재밌다고 표현해 준 덕에 고민할 필요가 없다.

"줍는 게 좋아요~! 기분도 좋고 지구도 살리고~! 쉽고 재밌는데 왜 안 해~!"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녀석이다.

"엄마! 쓰담 걷기 좋아요!"

"쓰담 걷기?"

"쓰레기 담고 걷기~^^"

"아하하, 그래~쓰담 걷기 매일 해보자^^"

아들이 작은 성취감이라도 느낄 수 있도록 엄마로서의 역할이 또 하나 생긴 것에 감사한 순간이다.

기특한 것, 내가 낳았다.






아들이 한 바퀴 더 돌자고 하지만 나는 화장실이 급했다.

"아들, 오늘만 날이 아니니까 오늘은 집으로 곧장 들어가자~ 엄마 화장실 급해~"

"엄마! 지구가 더 급해요~! 엄마도 창피해하지 말아요~ 어른도 실수할 수 있어요~ 옷에 쉬해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요~"

"뭔 소리야 인마!!!!"

아주 엄마를 잡는다.

겨우 설득해서 들어온 아들에게 오늘 아주 뿌듯했다고 말하며 아들 덕분이라고 웃어 보이니 이때다 싶은 아들 녀석이 저녁에 비빔면 먹잔다.

뭔들 못해주겠나, 비빔면도 질리도록 먹여주마....

아들 녀석의 자칭 "쓰담 걷기" 성공이다~!





작가의 이전글 8살 아들에게 취미가 생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