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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버 Jan 31. 2024

분수(分數)

 내 분수에 맞지 않는다. 내 한계는 여기까지다.

라는 말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비겁한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나는 재능이라는 단어와 더불어 분수라는 단어가 나의 한계를 멋대로 단정 짓는다고 느껴지기에 이 말들을 극도로 싫어한다.
 재능이란 단어는 사람들이 노력하길 포기하게 만들며 분수란 단어는 사람들이 현실에 안주하게 만든다.
  이와 같이 의미 없는 말은 우리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우리는 때때로 아니 번번이 타고난 것이라고 유전자로 인한 것이라고 치부되는 노력 범주 외의 것으로 인해 자신의 지능, 외모, 성격, 환경 등을 탓하며 원망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를 막연하게 갈망한다.

 과거의 나 또한 이를 앎에도 끊임없이 나 자신을 의미 없이 채찍질하고 비난해 왔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와는 달리 생각하고 행동한다. 내가 달리 생각할 수 있던 데에는 단 하나의 태도 변화로부터 온다. 이 깨달음은 더 이상 막연한 쫓음에 종속되지 않게 해 주며 인생을 살아갈 때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태도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그만큼 중요한 태도이기에 깨달음을 얻게 된 상황과 그 깨달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누런 조명을 받으며 회색빛의 러닝머신에 올라 제자리 뛰기를 할 때마다 얼마 안 가 나는  '조금만 강도를 낮출까?'라고 되새긴다.
 이에 처음에는 달콤한 속삭임에 넘어가 지조 없이 내림버튼을 누르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내 기대와 괴리된 모습이었기에 나는 매번 더 빡시게 달릴 것을 다짐했지만 이 결심 또한 물거품으로 돌아갈 따름이었다.
 그렇게 좌절하던 나에게 한 가지 생각이 불현듯 뇌리에 스쳤다. 나의 뇌를 간지럽힌 그 생각은 벼가 바람을 대하는 태도에 그것이었다.
 친숙한 벼는 바람이 불 때면 바람이 불어나가는 방향으로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그런 태도를 취하기에 벼는 아무리 강한 바람이 분다고 할지라도 제자리를 지킬 수 있다. 반대로 생각해 만약 벼가 제 고집에 고개를 뻣뻣히 치켜세운다면 조금만 강한 바람이 불어도 그의 생명을 막을 내릴 것이다.
 이런 생각이 달리기를 하는 데에 확장되어 내가 오래 달리지 못 한채 싫증을 느끼는 이유가 달림으로써 오는 고통을 피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내 생각을 확실히 하기 위해 다시 러닝머신 위에 올라 전과 달리 고통을 수용하겠다는 각오로 고통을 온전히 느끼며 달리니 20분을 훌쩍 달릴 수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현재 자신의 지능, 외모, 환경, 성격을 받아들이는 수용을 지향해야 하며 이것이 우리의 삶에 변화를 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바탕이 될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의 핵심 키워드는 수용(받아들임)이다. 여기서 마친다면 제목이 분수보다 수용이 더 어울리겠지만 제목에 부응하듯 분수에 관한 다른 얘기를 하고자 한다.
 
 여기까지만 글을 읽으신 분이라면 분명 자신의 삶이 나아지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는 진취적이 분임에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음으로 내가 할 말을 몇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분수는 고정된 것이 아니며 높은 성취에 맞게 노력하는 자에겐  그 성취가 그들의 분수이며 노력하지 않는 자들에겐 욕심일 뿐이다."로 마칠 수 있다. 문장 그대로 나는 한 개인이 노력하는 정도에 따라 분수가 달라진다고 믿으며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만 바라고 노력하지 않는 자에겐 욕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의 최종 결론은 노력 외의 것을 탓하지 말고 각자가 생각하는 우선 가치를 생각하며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라는 것이 끝이다.
 
이번에도 내 글을 정성껏 읽어주신 독자분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또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20000 빠이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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