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자매가 미운 순간, 서로의 입장에 서서 잠시나마 고충을 들여다보기
오늘 국어시간, 그 어느때보다도 열띤 토론의 장이 열렸다.
주제는 “언니 오빠 형 누나가 동생보다 힘들다”
아이들의 생활 속 밀접한 주제인만큼 전자칠판에 주제가 뜨는 순간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소리가 귓전에 흘러든다. 토론도 하기 전에 아이들은 자신의 형제자매를 떠올리며 불평을 하는 데 여념이 없다.
토론 전, 찬성 반대 중립 거수 투표를 했다. 찬성 13 반대 9 중립 4. 토론 후 생각이 바뀐다면 나중에 다시 거수투표를 하기로 하고 각자 의견과 까닭을 적게 했다. 드디어 토론의 시간, 아이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눈빛에 활기가 감돌았다. 먼저 찬성의 입장. 그들은 형제자매 중 첫째에 해당된다. 9명의 아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첫째의 고충을 늘어놓는다. 첫째의 책임감으로 동생에게 양보해야하고, 부모님 없을 때 돌봐야하는 문제가 여러 번 언급되었다.
다음으론 반대입장. 동생에 해당하는 아이들이 반기를 든다. 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언니나 형이 시키는 대로 해야하고, 부모님에게 혼나면 화풀이대상이 된다는 것, 그리고 형의 권위를 들어 자주 때린다는 것이 주 요인으로 손꼽혔다. 중립의 입장은 대부분 외동친구들. 외동이라 자세한 사정은 알길 없지만 나름 힘들 것 같다는 의견들.
아이들은 마치 누가누가 더 힘드나 겨루기를 하듯 얼굴에 열을 올리며 각자의 언니누나오빠형동생의 만행을 낱낱이 고해바친다. 그 만행들이 어찌나 살벌한지 교실의 온도가 1도 정도 훅 올라간 느낌이든다. 서로의 입장에만 서서 반박을 하느라 잠시 싸움터가 된 교실. 나는 아이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얼마 전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를 건넨다.
“얘들아, 지금은 세상 웬수에 미운 형제자매들이지? 선생님의 경험으로 점점 나이가 들면서 그 형제자매들이 애틋해지더라. 선생님 친구 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분이 있어. 그 친구가 그러더라구. 평소 늘 오빠와 사이가 안좋아 연락도 잘 안하고 지냈었대. 하지만 엄마가 돌아가시며 둘도 없는 동지가 되었어. 우리 엄마가 없다는 슬픔은 친구도 남편도 그 누구도 오롯이 그 아픔을 공감해줄 수 없대. 오로지 엄마 뱃속에서 나와 엄마의 추억을 공유한 오빠만이 깊이 공감해줄 수 있다고. 둘이 지금도 마주 앉기만 하면 우리 엄마 비빔국수 새콤달달하게 해줬지. 집 화초 가꾸는 걸 참 좋아하셨지 하며 둘이서 엄마와의 추억을 깊이 있게 나누며 그리운 엄마를 함께 그려본다고 해“
나의 말에 형재자매에 대한 원망으로 이글거리던 아이들의 눈이 호수처럼 깊어짐을 느꼈다. 삐걱대는 잡음으로 가득하던 교실 공기가 일순 고요해진다. 평온하던 가정에 예기치 못한 시련이 닥쳐오는 순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화합해 그 순간 전에 없이 돈독해진다는 사실은 누구나 경험해본 일이리라. 그들 사이에 벌어지던 크고 작은 갈등이 무색해질만큼 말이다.
이번 토론으로 나도 여태껏 첫째라는 페르소나로만 살아와 좀체 알 수 없었던 둘째의 설움과 고충들을, 둘째인 아이들의 입을 빌려 들을 수 있게 되어 참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그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친구지만 서로 다른 입장에 놓인 아이들의 생생한 고충을 들으며 잠시나마 형제자매의 마음을 어렴풋 이해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아무리 미워도 형제자매는 엄마아빠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가족의 슬픔이나 기쁨을 온전히 공감하고 공명할 수 있는 유일한 피붙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한시간을 꽉채운 토론이 끝났고 교실은 전에 없이 은은한 온기로 가득찼다. 수업 말미에 바뀐 입장이 있냐는 나의 물음에 7명의 친구가 중립으로 돌아섰다. 언니에 대한 불만을 그 누구보다 핏대세워 말하던 아이도 마지막에 슬며시 중립으로 돌아선 걸 보면 마지막 내 말이 크게 마음에 와닿았으리라.
서로 입장도 위치도 달라 늘 부딪히지만 결국 형제자매는 부모라는 공통분모로 귀결된다는 사실은, 상대방을 향한 미움으로 마음이 차가워지는 순간에 따뜻함 한 스푼의 역할을 해 마음의 온도를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수업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