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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Oct 30. 2024

초등1학년 아들이 인생 최대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자신의 고통을 마주하고 극복하려 울면서도 끝까지 풀어내는 자세.

 고통을 대신해줄 순 없지만 그 고통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여 극복하게끔 옆에서 도와줄 순 있어


 요즘 우리 초등생 1학년 아들의 방에선 늘 울음소리가 새어나온다. 그 울음소리의 원인은 바로 받아올림 덧셈 계산. 초등학교 입학 이후 어언 8개월차에 다시금 맞이한 두 번째 위기다. 아이는 나름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터라 자기가 스스로 잘 해내지 못하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그럴 때는 옆에서 도와주는 일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남편의 고함소리가 가끔 천장 지붕을 뚫고 나오는 것이 아이 울음소리보다 더 스크레스였던 나는,어제 남편에게 오늘은 내가 그 고통을 감내하마 라고 당당히 선언을 한다. 선언 후 숨을 고르고 전쟁터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결연히 아이의 방으로 입장했다.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울음 시동을 거는 중이었다. 하얀 지면 위에 세로셈으로 수놓인 학습지. 학습 내용은 두자리수 더하기 한자리수 덧셈이다. 받아올림이 없는 첫번째 문제는 수월히 통과. 두번째 문제에서 고전을 한다. 울음 직전 연필을 꽉 눌러 짓이긴다. 나는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만 보았다. 그러더니 일의 자리는 잘 쓰고 십의 자리에선 하나 올려주기를 하지 않은채 답을 쓴다. 나는 조용히 1을 올려주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지한 아이. 작은 가슴 가득 채워넣은 눈물샘이 용량초과로 일시에 팍 터져나온다. 울음소리가 작은 방을 메운다. 속으로 화가 솟구쳐오르지만 애써 누른 채(남편에게 나는 소리 안지를거야 라고 당당히 말했으니 책임을 져야 한다)옆에서 그 울음을 잠자코 지켜보며 낮게 말했다.


 "속상해서 우는 건 괜찮은데 그 울음이 이 문제를 대신 풀어주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면 해. 울고 싶은 건 너의 마음이니 일단 울고 싶을 때까지 울어 엄마는 기다린다"


 예상과는 다르게 자기를 달래주지 않아 더 서운했는지 아이는 아까보다 더 큰 데시벨로 광광 울어버린다. 5분쯤 울었을까? 울어도 풀지 못한 문제는 제자리라는 내 말을 기억했는지 아미면 제풀에 지쳤는지, 아이는 조금 잦아든 울음소리를 내며 연필로 꽉꽉 눌러 문제를 풀어간다. 그러고보니 문제 하나당 눈물 한 방울이다. 서너문제쯤 넘어가니 약간 요령이 생겼는지 아까보단 실수의 빈도가 낮아진다. 나는 십의 자리에 일을 쓰지 않을 때마다 손짓으로만 안내해주었다. 처음엔 1과 2사이에서 무수한 줄다리기를 하더니 요령을 터득하자 15번 문제부터는 수월하게 풀어갔다. 그렇게 스무방울 넘는 눈물자욱을 문제 옆 하얀 여백에 남기고 나서야 20번 문제를 깔끔한 정답으로 장식하며 숙제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그제서야 눈물을 거둔 아이는 아까보다 세상 개운해진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주었다.그리고 함께 눈물로 얼룩진 학습지를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네가 고통을 이겨낸 흔적이 이 학습지에 눈물꽃으로 피어났다고. 세상 아름다운 학습지라며 추켜올려주었다. 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싱긋 웃음을 지어보인다. 눈가에 고통의 흔적인 눈물자욱을 고스란히 남긴 채.

나는 그런 아이를 보며 말을 이어갔다.


"앞으로 이보다 더 어려운 문제가 00이를 또 고통스럽게 할 수 있어. 그때마다 엄마가 그 고통을 대신해줄 순 없어. 오늘 잘 극복해내서 마지막 문제를 나 풀어낸 것 처럼 앞으로도 네 스스로 그 고통의 순간을 잘 극복해나가는 힘을 기르자. 오늘 엄마는 네가 정답을 다 맞춘 것 보다 울면서도 그래도 끝까지 풀어낸 우리 아들이 제일 자랑스럽고 멋져“

 아이는 신나서 거실로 뛰어나가 아빠에게 자랑아닌 자랑을 한다.

  나는 어제의 고통의 현장?에서 절실히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자식이 옆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웃으며 넘길 부모가 어디있으랴? 하지만 그 자식의 고통을 대신 짊어주려하는 것은 아이의 인생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옆에서 묵묵히 있어주며 아이로 하여금 그 고통을 알아차리게 해주고, 지금 너가 이것때문에 고통스럽구나. 울고 싶으면 울고 말로 표현하고 싶으면 해. 라는 말로 고통을 직면하게 한 뒤. 나름의 방법으로 털어내고 극복할 수 있게 든든한 표지판으로 옆에 서있는 것.  그리고 그 고통을 아이 자신의 힘으로 이겨냈을 때 그 과정을 더 큰 칭찬으로 아이를 주켜세워주는 것. 그런 것이 부모의 진정한 역할이 아닐까 싶다.


 학교 현장에서 가끔 마주하는 말들. “우리 아이 상처받았어요.. 마음 다치면 안돼요. 짝이 마음에 안든다고 하니 자리 바꿔주세요 등 ” 끊임없이 학교에 민원을 넣으며 정작 아이들이 해결할 수 있는 고통마저도 제거하려는 학부모님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자신이 처한 고통을 감내해 본 경험이 없어 어른이 되어서도 나이 든 부모에게 내 고통 없애줘 라는 말을 수시로 달고 사는 헐렁한 어른이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려운 수학문제라는 고통을 스스로 감내하고 극복해보는 과정을 통해 아이는 깨달았을 것이다. 내안의 고통은 우선 내가 먼저 알아차리고 극복해나가야 할 무언가라는 것을. 그리고 그 경험들이 몸에 켜켜이 쌓여 정답이 없는 초고난이도의 인생문제를 맞닥뜨리더라도 자신의 힘으로 해결해내려는 능력을 키워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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