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담은 내면의 목소리
오늘은 인문학 발표대회 전날이다. 지난 7월, 교내대회를 치르고 선발한 6학년 한 여학생을 데리고 지금까지 준비해왔다. 아이는 섬세한 문장력과 감수성이 깊은 편이라 진솔한 글을 참 잘쓰는 편이다. 책 한권도 40분 만에 읽어내고 글쓰기 능력은 좋은 편이나 내내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발표 목소리.
대회이름이 인문학 발 표 대 회 인지라 목소리가 크고 우렁차야만 좋은 점수를 얻는다. 하지만 타고난 작은 목소리는 내 지도 영역 밖이다. 그래서인지 지도하는 내내 입상은 어려울 것 같은데 대충 할까? 열심히 지도해도 발표에서 고배를 마신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지 않을까? 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내 열정을 사그러들게 했다. 아이 앞에서 웅변대회를 하듯 우렁찬 시범도 보여주며 큰 목소리를 요구해봤지만,그건 마치 음량을 최대로 높인 스피커의 음량 버튼을 억지로 올리는 헛수고에 불과했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작은 샘이 있어서라고 했던가. 아이는 작은 목소리에도 불구 단 한가지 희망을 찾자면 성실함이라는 샘을 단단히 장착하고 있는지라 내가 1을 요구하면 10을 해내는 아이였다. 발표대회가 많이 남았다고 설렁설렁하다 대회일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발등이 불이 떨어진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래서 이주 내내 매일 한 권의 책과 독후감을 써오라고 안내했는데 단 한번도 꾀를 부린 적이 없이 제 할 몫을 다해냈다.
또 내가 첨삭해준 내용들을 머릿속에 정확히 새기고 인지해주었다. 자신의 경험을 책 내용에 녹여내기. 마지막엔 세상을 향해 던지는 메세지를 쓰기. 이런 깨알같은 지도내용을 자신의 글에 잘 녹여내었다. 맨 처음 심사때 줄거리가 반 이상 차지해 거칠은 원석같던 글이 점점 매끈한 옥석이 되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의 마음 속에 숨은 성실함이라는 보석을 발견한 뒤로 이주간 성심껏 지도 열정을 발휘했다.
하마터면 목소리라는 장애물에 파묻혀 아이의 글쓰기 실력까지 일시정지 될 뻔 했다. 나는 목소리 크기라는 장애물은 차차하고 이 아이가 가진 강점에만 집중해 그 강점을 어떻게 하면 십분 발휘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남은 기간을 지도해왔음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회 전날인 오늘, 나는 아이와 두시간 가까이 글쓰기를 함께 했다. 책 한권을 주고 같이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 청소년 책이 이야기하는 주제는 희망. 아이는 이렇게 대회 전 마지막 독후감을 마무리한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와도 마음 속에 희망을 품고 꾸준히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지금껏 그래왔듯이 말이예요. 여러분도 앞으로 힘든 상황이어도 희망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다보면 원하는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 희망이라는 작은 불씨를 마음에 품고 살아갑시다 감사합니다."
아이의 마지막 문장이 꼭 우리 얘기같아서 글을 읽다 울컥했다. 아이의 훌륭한 문장력에 잠시 전율마저 일었다. 나는 뜬금없이 울컥하는 내 모습이 들키기 싫어 잠시 호흡을 고르고, 잘썼다고 그간 수고많았다고 어깨를 토닥였다. 그리고 말을 이어갔다.
"내일 상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함께 노력한 과정이 더 중요한 거야. 점점 늘어가는 나의 글쓰기 실력. 그간 읽었던 좋은 책들. 결과에 상관없이 다 너의 몸속 곳곳에 스며 앞으로 네가 글쓰기를 더 잘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을거야. 우리 조금만 더 힘내자"
물론 작은 목소리가 여전히 마음 속에 가시처럼 걸려있지만 나는 아이의 숨어있는 성실함을 꺼내어 그것이 글쓰기로 잘 녹여내게끔 최선을 다했다. 그 과정에서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글쓰기 실력이 늘어가는 모습을 보는 아이자신도, 그것을 지켜보는 나도 참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목소리의 크기보다 글에 담긴 내밀한 진심이 누군가의 마음을 울린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뒤돌아서는 아이를 배웅한다.
“내일 발표대회에선 목소리 크기를 넘어설 내면의 큰 소리를 당당히 내어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