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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Nov 23. 2024

다이소에서 만난 제자, 교직을 계속 이어가게 한 힘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내미는 따듯한 인간성이 힘든 교직을 버티게 하는 힘

 얼마 전, 같은 학교의 한 선생님이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병을 얻어 갑작스레 병가를 들어가셨다고 했다. 우리가 추측하기론 그 반에 무척이나 힘든 학생이 한 명 있었고(집에서도 어찌하지 못해 방기상태였다고 한다.)그로 인해 교권보호위원회도 열었으며, 그 이후 다른 학생들의 분위기마저 와해되어 반 자체가 걷잡을 수 없는 폭풍우에 휩싸였다는 말이 간간이 들려왔기에 그 선생님의 병가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한동안 연구실에서도 그 선생님의 안타까운 상황이 연일 화두가 되었을 정도이니 결코 쉽게 보아넘길 일은 아니었다.


 올 초, 그 선생님을 복도에서 만나서 얘기를 잠시 나눈 적이 있었다. "올해 6학년 어떄요?" 라는 나의 우려스러운 물음에 선생님은 밝은 미소를 머금으시며 "이렇게 꽃같은 애들이면 매년 6학년 하겠어요." 그 꽃이라는 말에 나는 꽃밭같은 6학년 교실을 머릿속에 그리며 잠시 기분이 좋아졌던 기억이 있다. 아스라하게 떠오른 그 기억에 나는 잠시 가슴이 뭉근해져옴을 느낀다.


 교직에 발 딛고 서있은 지 어언 12년 차, 그 길고 긴 터널을 지나오며 나도 그 선생님같은 붕괴된 교실 속에서 무력한 모습으로 힘없이 흔들리는 앙상한 한 그루의 나무같이 1년을 보냈던 기억이 몇몇 있다.


 6학년 담임시절, 출장 간 사이 벌어진 학교폭력사건. 평소 내게 자주 훈계지도를 받고도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던, 내게 자주 무력감을 주며 반 분위기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던 한 남학생이 벌인 일이었다. 장난으로 시작한 괴롭힘이 큰 불로 번져 방관자를 비롯 가해자만 열명 가까이 되는 큰 문제에 나는 연일 야위어갔다.   

쉴새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 쉬는 시간마다 교무실을 왔다갔다,점심시간에도 불려다니며 끼니도 걸러가며 하루가 다르게 피폐해졌다. 피해자 가해자가 모두 우리 반이었기에 양쪽에서 받는 압박감도 매일 덩치를 불려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교실의 분위기도 말해 무엇하리. 무엇보다 더 이상 아이들에게 나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그 무력감이 나를 더욱 죄어왔다. 교직생활 3년 차에 교사를 그만 둘까 라고도 생각했을만큼 내겐 중대한 사건이었다.


 학교로 한 발 한 발 내딛는 그 발걸음은 마치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고 크리스마스가 있던 그 해 12월은 내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길 뻔 했다. 하지만 고통 속에서도 희망은 있다고 했던가. 아침부터 가해자 학부모들의 빗발치는 민원에 힘없이 교실에 발을 들여놓았던 그날.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촛불이 꽃힌 초코파이 케잌에 나는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그리도 뒤에 교실 칠판을 수놓은 메세지들 "선생님 힘내세요. 사랑합니다"


그때 갑자기 마음 속에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한 두명이라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따듯한 인간미를 가진 아이들이 있다면 그래도 힘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연하다.


 얼마 전, 동료교사와 이야기를 나누다 그 선생님 얘기가 나왔다. 그 동료교사는 그 마음이 어떨까 감히 상상도 못하겠다며 병가를 낼 정도면 정말 힘겹게 하루를 보냈을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긋이 나를 바라보며 자신의 얘기를 했다.


 "나도 5년 전, 그런 아이들이 많은 반을 맡은 경험이 있어. 사명감으로 나는 몇명의 문제소지가 보이는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겠다며 열심히 지도했지만 별 소용이 없더라고. 그런 아이들이 방과 후에 기어이 학교폭력을 일으켰고 가해자 피해자 학부모가 무람없이 나를 압박해오는 데다, 그 이후 반 분위기도 돌이킬 수 없이 어지럽혀져 아침에 눈을 뜨기가 싫더라.“


“근데 퇴근 길 우연히 들른 다이소에서 3년전 제자를 만났어. 그 제자가 나를 보며 반색하더니 "선생님, 저 그때 선생님이 아침시간에 해주신 좋은 말들 아직도 기억하며 힘들때마다 떠올리며 잘 버텨내며 지금껏 지내오고 있어요 감사해요." 라고 하는 게 아니겠어?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에 걸린 무언가가 턱 하고 내려가는 느낌이더라고. 무기력했던 그 때 갑자기 내 마음 속에 불꽃하나가 일더라. 내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평생을 살아갈 힘이 될 수도 있구나 라고.“


 그 이후 선생님은 힘든 순간이 올 때 그 제자와의 만남을 떠올리며 남은 학기를 무사히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매년 달라지는 아이들과 학부모를 겪는 교사들. 잘 맞아 꽃같은 아이들과 1년을 행복하게 보내기도 하지만 사람의 일인지라 서로 이해관계도 다르고 오해도 하며 몇 차례씩 장대비같은 힘든 순간을 맞기도 한다. 그 속에서 그래도 희망을 갖는 건 바로 몇몇의 따듯한 가슴을 지닌 아이들 덕분이다. 숱한 노력에도 불구 내 힘으로 바뀌지 않는 아이들로 인해 어깨와 무릎이 절로 굽어지다가도 나를 향해 따듯한 애정과 감사를 보내는 아이들로 인해 힘을 얻어 천천히 위로 솟아오른다.


 올해는 내가 복이 많은건지 우리 반엔 꽃같은 아이들이 많다. 매일 나는 칠판에 명언을 써주고 좋은 말들, 그리고 내경험에서 우러나온 교훈들을 아이들에게 나누곤 하는데 그때 마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빠져들듯 듣는 아이들. 그리고 그 말들을 가슴 깊이 기억했다가 일기장에 쓰며 선생님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아이들.


 6교시 풀로 수업을 하고 나면 늘 알림장에 선생님 쉼없이 우리를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써오는 아이들.그리고 출근하면 가끔 책상 위에 놓여진 작은 비타민, 사탕과 힘내세요 쪽지들. 그 모든 것이 내가 교직에 발을 딛고 설 힘을 내게 해주는 에너지의 원천들이다.


 날이 갈수록 팍팍해지고 교사의 무력감은 커져가는 요즘의 학교 현실 속,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할 이유는 바로 선생님에 대한 따듯한 인간성을 발휘해주는 아이들이다. 물론 집에서도 바뀌지 않는 아이들을 내 힘으로 26명 아이들 모두를 바꿀 순 없지만 그 아이들 중 일부라도 나의 작은 한마디에도 영향을 받아 그것을 가슴에 새기며 평생을 살아갈 원동력으로 삼아간다면? 절로 주먹을 불끈 쥐게 하고 굵고 단단한 나무처럼 교직에 발을 무겁게 붙여야할 이유로 충분하다.


 그 선생님이 반 아이들 이야기를 하며 환하게 웃던 3월의 어느 날을 추억해본다. 무력감에 더 이상 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만큼 힘든 하루들을 보내다 눈물지으며 그 꽃밭을 돌아설 수 밖에 없었던 그 심경을 떠올리면 가슴 한 구석이 예리한 무언가에 베인 듯 내 마음도 같이 아파온다.


 부디 다시 돌아오시는 날엔, 다시 윤기를 머금고 환히 피어오른 몇 송이의 꽃을 발견하시어 가슴 속에 작은 불꽃이 피어올라 3월보다 더 영글어진 꽃밭에서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시길 바래본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만난 제자가

  "선생님이 해 주신 그말로 하루하루를 살아요."라며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 순간을 매번 그리며 학교에서의 하루를 시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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