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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일기 2일차. 감사일기는 일상 속 숨은 감사찾기

감사일기를 통해 잊고 지나갈 뻔한 감사를 찾다.

by 이유미 Jan 15. 2025

 (감사일기를 1.2부터 써오고 있지만 연재는 그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만 뽑아서 쓰니 날짜와 일차가 맞지 않아도 너그러이 양해부탁드립니다.)


 어제는 아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대망의 디데이였다. 바로 충치치료를 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지난 주 우연히 잇몸에 생긴 불룩한 염증을 발견하고 치과를 찾았더니 충치소견이 있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해 받고 난 뒤 꼬박 일주일 만이었다. 아들은 아침부터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가는 중간중간 울먹이기도 했다. 나는 그런 아이를 달래기 위해 시시각각 다정한 어투로 괜찮을거라며 내내 위로해주었다.


 치과에 도착하니 아이는 내 손을 있는 힘껏 부여잡았고, 그 긴장은 손을 통해 고스란히 내게도 전달되었다. 치과라는 말만 들으면 자동연상으로 떠오르는 지잉하는 기계음이 낼 모레 사십을 바라보는 나도 여전히 공포스러운 무언가인데 이제 겨우 9살 먹은 아들은 오죽할까? 조금은 착잡한 마음이 되어 아들의 손을 조금 더 힘을 주어 잡고 치과 안으로 들어간다. 아이들 전용치과는 내부부터가 아기자기하다. 공포를 줄여주기 위한 온갖 수단이 다 동원된 셈. 천장에는 마침 아들이 좋아하는 흔한남매 시리즈가 방영되고 있었다. 다행히 흔한남매 덕분에 아들은 큰 저항없이 주황색 바탕에 뽀로로 무늬가 새겨진 치과 침대에 털썩 누웠다.


 간호사들의 분주한 준비가 시작되고 곧이어 의사선생님이 들어오셨다. 흔한남매를 보다 웃던 아들은 갑자기 달라진 공기에 다시 울상을 짓는다. 나는 아들의 한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며 엄마의 체온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아이의 입에 집게가 물려지고 신경치료가 시작되었다. 나는 살면서 치과치료에 들어가는 바늘이 그렇게나 많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번갈아가며 바늘이 쉴새없이 오고가다 가장 큰 왕바늘이 내 시야에 들어오자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는다.

 순간 그 바늘이 아들의 잇몸으로 찔려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외튼다. 아야 라는 신음이 간간이 새어나왔지만 아들은 내 우려보다 훨씬 치료를 잘 소화해내었다. 동시에 엄마의 죄책감이, 머리로 아이의 충치를 생기게 만든 지난 역사를 더듬는 과정에서 마음 속 가득 먹구름처럼 드리워졌다. 아들의 어금니 중간이 뻥뚫린 것을 망연하게 바라보며 나는 시험을 망친 후 다음엔 필사의 노력으로 시험을 더 잘보리라 굳은 다짐을 하는 수험생의 심정이 된다.


 "다시는 아이가 이런 치료를 받지 않도록 좀 더 양치에 세심히 신경써야지"

 20분여의 치료가 끝나고 난 뒤 아직 마취가 풀리지 않아 얼얼한 상태의 아들이 침대에서 내려온다. 여린 얼굴만면에 아까 웃음가스라는 마취를 하느라 씌운 마스크 자국이 선연히 박힌채. 그 모습이 어쩐지 애잔해서 마음 한 구석이 칼날로 베인 듯 아팠다. 다행히 아들은 치료가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마취가 된 입은 그대로 둔 채 눈으로 웃는 표정을 그린다.


 아이의 힘든 치료가 끝나면 부모들의 마음은 한없이 약해진다. 약국에서 나와 바로 옆 문방구엘 잠시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아들은 요즘 빠져있는 해리포터에 나올법 한 프리즈마 장난감에 눈을 떼지 못한다. 나는 빨려들어갈 듯한 맹렬한 눈빛으로 그 장난감을 보는 아들에 2만원이라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 무장해제가 된다. 홀린 듯 계산을 마친 뒤 함박웃음을 가득 지으며 그 장난감을 가지고 나오는 찰나 아이의 손에서 떨어진 장난감. 겉면이 유리구 모양 형태인 장난감은 땅의 단단한 저항을 이기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그 순간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야 만다. 놀란 문구점 주인의 "어째요"한 마디가 얼어붙은 우리를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다.


 아까의 애잔함은 순식간에 날아가버리고 마음 속 어두운 화마가 이글거리려든다. 하지만 그 순간 나보다 더 속상할 사람은 바로 아이라는 생각을 인지한다. 아이는 속상함보다는 그걸 사준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더 커보이는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심호흡을 한 차례 한 뒤 나는 아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아까 치과에서 했던 태도와 억양으로 "괜찮아"라고 부드럽게 위로한다. 아이는 여전히 얼얼한 얼굴을 한 채 내 손을 다시 잡았고 영어학원 시간이 임박해오자 얼른 학원에 가자며 나를 채근했다.


 그렇게 스펙터클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식탁 위에 올려진 파란색 감사일기를 꺼낸다. 힘든 하루를 보냈기에 감사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며 공책을 덮으려던 찰나, 무언가 하나 잊은 사실이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바로 힘든 치과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약국에서 사탕이나 젤리를 안 산다고 다짐한 아들의 예쁜 행동. 하마터면 장난감을 깬 사건에 그 일이 안타까이 묻혀버릴 뻔 했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열심히 감사한 일을 적어내려간다. 감사일기를 쓰니 좋은 점이 바로 이 점이다. 충분히 감사할 일인데 하루를 보내며 불쑥 치고 들어오는 크고 작은 사건에 묻힐 뻔한 감사들을 발굴해낼 수 있다는 일이다.


 한 시간 뒤 조금 풀이죽은 자세로 영어학원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에게 인사와 함께 감사일기를 건넸다. 아들은 무슨 비밀장부를 열어보듯 조심스레 열었고 입가에 배시시 웃음이 번져나갔다. 아들은 내가 정성스레 깎아놓은 사과를 식탁 옆에 두고 내가 쓴 볼펜을 손에 들고 자신의 감사한 일을 열심히 적어내려간다. 자신의 연필도 있는 데 굳이 내가 쓴 파란 볼펜을 쓰겠단다. 아마 엄마의 체온이 담긴 볼펜을 쓰면 그 마음이 더 잘 전달되어서 그런걸까? 넘겨짚어본다.


 아들이 척 하고 내게 건넨 감사일기를 눈으로 가만가만 더듬으며 읽어본다. 가슴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차오르는 느낌이다. 아들도 엄마가 아까 깨달은 진리를 알았구나. 장난감이 깨졌다는 사실에 파묻혀 감사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을 아들. 그래서 영어학원에 가서도 풀이 죽어있었을 아들. 하지만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장난감이 깨졌는데도 크게 혼을 내지 않은 엄마의 태도가 참 감사한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으리라.


 감사일기는 우리에게 단순히 감사한 일만 찾는 것을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보내다 놓쳐버릴 수도 있었을, 숨어있는 감사도 찾을 줄 아는 지혜를 주는 고마운 존재라는 사실에 가슴이 벅찬 하루였다.

가끔 싫증이 나서 관두고 싶은 날도 분명 찾아올체다. 그래도 감사일기가 주는 감사함을 가슴 속 깊이 인지하며 계속 써보자 아들. 또 어떤 진리를 발견할 지 모르는 일이니까.


 우리의 실험은 계속된다. 쭈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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