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트사과 Dec 16. 2023

내가 SF 소설을 적는 이유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볼까 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과학이 좋았습니다. 아, 단순히 과학이라 말하면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영역이 다를 테니 천문학과 기계로 특정 짓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세상에는 밝혀내야 할 진실들이 많고 이것들은 전부 과학적인 영역으로 치부할 수 있으니까요.


세상이 밝아 달과 별이 뜨지 않는 낮에는 문구점에서 파는 과학 상자와 레고 테크닉을 만지작 거리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틈틈이 SF 영화를 보기도 했지요. 어린이들이 봐서는 안 되는,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영화도 많이 보았습니다. 당연히 DVD, 비디오 렌트 샵에서는 빌릴 수 없었지만 당시 OCN이나 슈퍼 액션 같은 케이블 채널에서 [에일리언] 이라던가 [블레이드 러너], [리딕], [우주 전쟁], [팀 버튼의 화성 침공], [스타쉽 트루퍼스]처럼 우주와 미래를 다루는 영화들을 심심찮게 틀어주어 부모님 몰래 볼 수 있었거든요. 끔찍하고 이질적인 생김새의 외계인이 사람을 처참하게 분해하거나 아주 선정적인 장면들이 자주 등장했기에 보기 편한 영화는 아니었지만, 가끔 등장하는 광활하고 적막한 우주와 떠다니는 멋진 함선들은 어린 제 마음을 들뜨게 만들기 충분했습니다. 밤이 되면 베란다에 나가 하늘을 천천히 도는 별을 바라보았습니다. 저 별 어딘가에는 루크 스카이 워커가 패륜을 저지르고 있었고, 지구와 아주 닮은 별 어딘가에는 스카이 넷이 인류를 멸망시키려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은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상상 속에서는 그랬습니다. 실은, 지금도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면 어디선가 외계인이 나타나 지구를 침공하지는 않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제가 별 보기를 즐겼던 이유는 설렘 때문이었습니다. 아니, 별 보기 뿐 아니라 과학적인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좋았습니다. 원리를 이해하고 복잡한 수식을 해결하는 것에는 그리 재능도, 흥미도 없었지만 차갑고 단단한 철로 이루어진 물건을 보면 머릿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로봇이 떠올랐고 별을 바라보면 그들의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그것은 상상만 해도 즐거워지고 충만해지는 설렘이었지요. 어머니도 이를 알았는지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니 [과학 동아], [과학 소년]이니 하는 책을 사주고 잡지를 구독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제 관심을 끌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그저 상상하는 설렘 만으로 충분했거든요.


애매한 재능은 저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딱 저를 두고 하는 이야기 같더군요. 우주와 기계에 관심이 많았지만, 숫자만 보면 어지러워지는 고질병이 있던지라 아무리 원리를 이해하려 해도 도저히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우주에 대해, 그리고 인류의 미래와 로봇에 대해 잘난 듯 떠드는 저를 두고 천재인 줄 아셨던 부모님도 어느새 욕심을 접고 다른 길을 찾으셨습니다. 부모님의 실망도 큰 슬픔이었지만,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고 알 수 없다는 것이 큰 상실과 절망이었습니다. 그래도 우주는 저를 품어주었습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과 적막한 어둠을 보고 있자면 그들이 속삭이는 것 같았지요.


'언제나 같은 곳에 있을 테니 다른 방식으로 나를 이해하면 돼!'라고요.


그렇게 저는 아이작 아시모프를 접했습니다. SF 소설의 역작인 [파운데이션]으로 말입니다. [파운데이션] 은하제국의 쇠퇴와 파운데이션이라 부르는 새로운 은하 국가의 질서를 그린 작품입니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첫 장부터 광대한 세계관과 세세한 설정, 그리고 물리적이고 현실적인 법칙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상상의 산물로 저를 파도처럼 덮쳤습니다. 꽤 길었지만 잠도 잊은 채 몰두했던 기억이 납니다. [파운데이션]을 시작으로 [로봇과 제국], [듄],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스노 크래시] 등 수많은 SF 명작을 탐독했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길을 찾았지요. SF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겠다는 길을요.


현실적인 이유로 교사가 되었고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제 인생의 목표는 여전히 SF 작가입니다. 물론 21세기는 SF 소설을 쓰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과거의 하드 SF나 철 지난 스페이스 오페라를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아마 과학과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우리가 상상하던 시대가 어느새 눈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스노 크래시]의 메타버스는 우리가 인식하기도 전에 물리적 공간을 뛰어넘은 새로운 세계로 우리 곁에 자리 잡았고, [터미네이터]의 AI와 로봇은 이제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아이, 로봇]에서 아이작 아시모프가 제시한 로봇 3원칙이 필요한 시점인지도 모르겠네요. 몇 해 전 스페이스 X에서 로켓을 재활용하는 모습도 선보였으니 [듄]이나 [스타워즈], [건담]에서나 보던 우주 시대가 멀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상상하는 미래는 상상의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극복할 수 있는 가까운 미래에 가깝지요. 인간의 상상력은 힘을 잃었고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SF는 점차 지구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거나 판타지에 가깝게 변해갑니다. 아니면 그 반발로 오히려 전공자들이나 이해할 법한 전문 용어가 난무하는 어려운 이야기로 바뀌던가요. 글을 쓰면서도 느낍니다. SF라고 자랑스럽게 써붙이고 글을 적다가 자료를 찾아보면 이미 있는 기술이라 부족한 상상력을 저주하며 절망하곤 하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아니, 오히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한다는 것은 SF 작가(지망)에게 좋은 일이지요. SF는 현재 기술력의 민낯이며 상상력의 한계를 보여준다 생각합니다. 도구에 불과한 기술에게 이야기를 입혀 윤리적인 경종을 울리기도 하고, 시장에 적용될 지표로 활용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과거와 다르게 밤하늘에 저궤도 위성이 줄지어 떠다니지만 그것 또한 꿈꾸던, 혹은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보던 장면이라 조금은 설렙니다. 제 소설은 명백히 재미없는 졸작입니다. 제 유일한 장점이 자기 객관화가 잘된다는 것이니 이것 만큼은 신뢰하셔도 됩니다. 그래도 계속 적다 보면 언젠가 아이작 아시모프나 프랭크 허버트처럼 위대한 작품은 아니더라도 서점 한편에 먼지가 쌓일 책 하나 정도는 낼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도 적막한 밤하늘이 너무 멋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존경하는 선배님께 읍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