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놓는다
22살에 맞이하는 첫사랑은 쓰나미처럼 다가와 자기를 보호할 겨를을 주지 않는다. 늘 의심하고 따지고 확인하는 이성도 여기엔 작동하지 않는다.
그가 내게 다가와 다정하게 말을 걸었을 때부터, 심장은 뛰었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사랑에 빠진 나는 후각과 청각만 살아있었다. 그가 멀리서 다가오면, 그의 냄새로 알아챘고, 그가 자기 사무실을 나오는 순간, 그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회사에 출근하고 그의 사무실문을 보는 순간 그가 보고 싶고 그립다.
약에 중독되면 그런 증상일까?
하루 종일 그가 올 때를 기다린다.
영업사원들이 수금한 것을 입금하기 위해 사무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나의 가슴은 황홀하다.
그가 온다. 벌써 그의 향기가 난다. 거의 다 왔다. 그의 슬리퍼 끄는 소리가 말해준다.
미스 김, 이거 입금해 줄래?
다정한 목소리에 나는 거의 대답도 못한다. 그저 한번 수줍게 웃고 돈을 세고 입금표를 확인한다.
그리고 퇴근 시간만 기다리다 우린 다시 연인으로 만난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말을 못 했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해 말이 떨린다.
회사의 여직원들은 모이기만 하면 그의 이야기를 했다. 여직원사이에서 그는 인기가 제일 많았고, 그와 사귀고 싶어 했다. 나는 승자로서의 미소를 숨겼다.
그는 고등학교 때 본 영화 '몽테 크리스토 백작'의 주인공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훤한 이마, 높고 날카로운 코, 쌍꺼풀진 깊숙한 눈과 하얀 피부, 가늘고 흰 손가락은 내가 만나지 못했던 인종이다. 그의 발은 내 손보다 곱다.
그와 헤어지고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회사 언니를 만났을 때, 언니는 그가 그렇게 잘생긴 건 아니라고 했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럼 어떻게 생겨야 잘생긴 거야?
내 눈에 낀 콩깍지는 아주 두터웠다.
그가 S대 출신들 가족 이야기를 했을 때도, 나의 가족과 맞지 않아서 관계를 계속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 그는 외대를 나왔는데 그가 집에서 내놓은 자식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나에겐 오직 신앙이 걸림돌이었다. 그가 하나님을 믿게 해 주세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메지 말라는 목사님들의 설교에 저항할 수 없었다.
다만 그가 사표를 쓰고 외무고시 공부를 하겠다고 했을 때, 고졸인 내가 외교관 부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절대 안 된다고 말렸다.
그러면서 나의 학력을 높이기 위해 대학을 가겠다고 했다. 그는 4년을 어떻게 기다리느냐고 반문했다.
만난 지 두 달 후, 그는 제주영업소 소장으로 발령 났고, 그와의 헤어짐에 조바심이 났다. 멀리 날아가버리는 것 같아서 회사에 사표를 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겠다는 명목이었다. 그가 떠난 지 한 달 보름 만에 나는 제주도로 갔고 그를 만났다.
서울로 돌아온 나는 대학입시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퇴직금으로 학원을 다니면서, 틈틈이 전화로 서로 연락했다.
내가 전화를 하면 영업소 여직원이 소리 질렀다.
소장님, 서울서 애인한테 전화 왔어요.
훗날 그는 그 영업소 직원과 결혼을 한 것 같았다.
제주에 갔을 때 그의 사무실에서 여직원을 봤다.
밝고 활동성 넘치는 평범한 여자였다. 경계대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학력고사 성적이 좋았으나 내가 가고자 하는 대학을 갈 수 없었다. 대학을 포기하고 제천 집으로 가서 방앗간 일을 도왔다. 그때 그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결혼 허락을 받으러 왔을까?
나는 아버지께 결혼을 하겠다고 했고, 아버지는 눈을 크게 뜨고 소리를 지르셨다.
네가 어른인 줄 알아? 23살이 어른이야?
할머니 방이 그렇게 누추한 지 그날 처음 느꼈다.
벽마다 옷이 걸려있고 이불은 시골에서 가져온, 드라마에 나오는 빈민가 소품 같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내의를 입고 주무시다 일어났는데, 목둘레가 축 늘어지고, 때가 꼬질꼬질했다. 꿰맨 곳도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꼿꼿이 앉아 절을 받았다.
절을 하는 그의 모습이 풍경과 어울리지 않았다.
뒤이어 들어온 부모님은 더 부끄러웠다.
산발을 한 엄마의 머리칼에 하얀 떡가루와 고춧가루가 보였다. 수금한 돈을 넣은 앞치마는 땟구정물로 반질반질했고, 500원짜리 슬리퍼가 시장통에서 소리 지르는 장사치 같았다.
왜 그렇게 창피했을까? 나는 우리 가족과 집안 구석구석이 창피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가 눈치를 챘는지 차시간 이야기를 하면서 급히 떠났다. 물 한잔도 마시지 않았다.
제주도 그의 하숙집을 생각했다. 하숙집 화장실은 엿날 푸세식이었는데, 바닥에 타일을 깔았다. 화장실 청소하는 걸레가 우리 집 행주보다 하얗다. 주인아주머니는 매일 걸레를 삶아서 뽀얀 걸레로 화장실을 닦았다. 그릇을 닦듯이.
화장실이 그러한데 다른 곳은 어떠했겠는가, 집 어느 곳도 정리되지 않은 곳이 없었고 매일 닦고 정리해서 호텔처럼 정갈했다.
그런데 우리 집은 겉만 멀쩡한 2층 양옥집이고, 안에는 가구도 별로 없었다 넝마 같은 옷가지들이 사방에 겹쳐져 걸려있고 온통 먼지가 쌓였다.
부끄럽고 창피해서 다시 그를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다행히 그는 다시는 연락하지 않았고 나도 연락하지 않았다.
헤이진 지 2년 후 그가 자기 영업소 여직원과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잘 먹고 잘 살라고 하면서 저주의 편지를 썼다. 그리고 내가 교대에 입학한 후 전화를 했다. 그는 "공부 열심히 했구나 "하면서 반가운 목소리로 축하한다고 했다. 그리고 완전히 끝났다고 믿었다. 그러나 나는 끝내지 않았나 보다.
그 이후 남자를 만나면, 그가 우리 집을 방문했을 때를 상상했다. 그리고 고개를 흔들면서 헤어지곤 했다.
지도교수 후배가 강사로 왔는데, 그 강사와 몇 번 식사를 했다. 그 강사는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그는 S대 조각과 교수의 아들이었고, 그 집은 하나의 건축 작품 같았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는 기품 있는 옛날 왕비 같았다. 조용했고 따스한 미소로 나를 반기고 안내했다.
그날 이후 다시는 그 강사와 만나지 않았다.
우리 집의 풍경이 거부하게 했다.
가족과 가난한 풍경들이 내 앞을 막는 거대한 벽 같았다. 그래서 첫사랑을 잃었다는 상처를 안고 살았고, 함부로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
사실 첫사랑과 맺어졌다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더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건 홍역 같은 것이고, 에스트로겐과 도파인같은 호르몬에 취한 상태였다.
콩깍지가 벗겨진 이후 이성적으로 분석하면, 우리는 결점 투성이고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훨씬 컸을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행복을 기대하긴 힘들다.
다만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연민이며, 거절당한 이유와 배반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끄러운 고백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제 '그대를 놓는다'는 글자를 쓰고서 탈진했다. 내 몸에서 슉~하고 바람 빠지듯 무언가 빠져나간 것 같았다. 나의 무의식을 꽉 움켜쥐고 있던 오랜 상처가 나간 것일까?
시에서처럼 한때 나를 타오르게 한 소중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그를 용서하게 하고 감사하게 했다.
덕분에 그를 온전히 놓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