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el Jan 10. 2023

엄마의 첫 번째 기일

상 차리지 않아도 괜찮아

엄마가 돌아가신 지 벌써 일 년이다.  

     

작년 겨울.

나는 엄마가 회복되는 기적을 빌고 빌었지만

삶은 내게 엄마 없이도 평안한 기적을 가져다주었다.

      

문득문득 올라오는 슬픔에 눈물을 훔치지만

마음 깊은 곳은 평안하다.      


엄마의 첫 번째 기일을 앞두고 어떻게

지내야 좋을지 동생과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생은 본인이 직접 상을 차려

엄마의 기일을 보내고 싶어 했다.      


이제 막 돌도 안된 아기를 키우는 동생이

작은집 식구들까지 스무 명 가까이 되는

대가족의 식사를 준비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였기에 식구들은 모두 말렸다.      


우리 집은 할머니 할아버지 기일에도  

추모관에 갔다가 근처 식당에서 식사한다.

두 분 기일도 따로 챙기지 않고

합장해서 모신 날 하루만 모인다.     


식구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때처럼

엄마의 기일에도

엄마에게 갔다가 식당에서

편히 식사하고 이야기하자고 했다.     


동생은 단단히 마음이 상했다.

본인이 괜찮다는데 다들 왜 말리는지

자신에게는 음식을 준비하고

상을 차리는 모든 것이 보고 싶은

엄마를 애도하는 과정인데 대체

왜 못하게 하냐며 화를 냈다.      


그 맘도 이해가 간다.

동생 임신 막달에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제대로 앉아 있기도 어려운 몸으로

엄마의 장례를 치렀다. 동생은 그렇게

배속에는 아이를 가슴에는 엄마를 품었다.


아이를 낳으면 하루에도 열두 번 엄마가 생각난다.

우리 엄마가 나도 이렇게 낳으셨겠구나,

엄마, 아기가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해?

엄마, 우리 아이가 오늘은 이랬어~ 하고

조잘조잘, 하고픈 말도 나누고픈 기쁨도

수도 없이 많을 텐데, 동생에게는

그 중요한 순간들이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   

  

아직 엄마가 필요한 초보 엄마는

젖을 먹이려, 기저귀를 갈려, 옷을 입히려

아가에게 “엄마가~” 하고 말할 때마다

내 엄마가 떠올라 육아를 하는지 애도를 하는지

분간할 수 없는 슬픔과 혼돈의 시간을 보낸다.      


그 마음을 짐작하기에

동생이 하고픈 대로 하라고 했으나

어른들의 입장은,

부모들의 마음은 그게 아닌가 보다.      


그렇게 안 해도 괜찮아.

네가 안 해봐서 그래, 그거 보통 일 아니야.

애기 데리고 어떻게 하려고 하니

꼭 그렇게 해야만 애도가 아니란다.

너 힘들어. 몸살 난다. 아서라.     


결국, 동생은 항복하고

기일에 조촐하게 혼자 상을 차렸다.     


그리고 그 주 주말,

엄마의 생신이기도 한 일요일.

가족이 모두 추모관에 모여 엄마를 보고

식당에서 편하게 밥을 먹고

경치 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가족은 일 년 만에 만나도 어제 본 듯

살갑고 가까웠다. 그 편안한 품에서

나도 한참 포근하고 따스했다.

그 사랑이 동생에게도 전해졌으리라.      


엄마의 기일에 혼자 상을 차려서 그런지

가족의 마음이 전해진 건지  

동생은 스르르 마음이 풀린 듯했고

내게 이런 문자를 보내왔다.      


언니, 잘 들어갔지?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

준비하면서 여러 차례 내가 언니에게 화 많이 내서 미안하다.

많이 바쁠 텐데 식당도 액자 사진도 준비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나도 내 자리에서 엄마에 대한 마을을 기리며

잘 보낼 수 있었던 것 같아. 고마워. 잘 지내고

푹 쉬어 형부께도 안부 전해드려 줘.      


엄마의 기일을 지내러 가던

그 일요일 아침.      

문득,

이런 생각이 났다.     


동생이 그렇게 고집해서 하려 해도

어른들이 죄 다 말린 것은,

그래서 결국 대식구의 상을 차리지 않게 된 것은,

어쩌면, 어쩌면 우리 엄마의 마음 아니었을까.     


엄마가 계셨다면 똑같이 말리셨을 것이다.

똑같은 이유로 똑같은 방법으로.

가족의 입을 빌렸지만

엄마가 동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귀한 내 딸,

소중한 내 딸,

힘들게 애쓰지 마라.

그런 거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엄마는 그런 거 원하지 않아.

우리 딸이 아기와 편안했으면 좋겠어.

그게 다야. 엄마가 바라는 건.

너 힘들게 하지 마라.

사랑한다. 내 딸.

소중한 내 딸.      


사랑은,

부모의 사랑은,

내가 헤아리기에는

아직도 너무 크고 깊기에.

작가의 이전글 띵동! 사랑이 도착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