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돌아가신 지 벌써 일 년이다.
작년 겨울.
나는 엄마가 회복되는 기적을 빌고 빌었지만
삶은 내게 엄마 없이도 평안한 기적을 가져다주었다.
문득문득 올라오는 슬픔에 눈물을 훔치지만
마음 깊은 곳은 평안하다.
엄마의 첫 번째 기일을 앞두고 어떻게
지내야 좋을지 동생과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생은 본인이 직접 상을 차려
엄마의 기일을 보내고 싶어 했다.
이제 막 돌도 안된 아기를 키우는 동생이
작은집 식구들까지 스무 명 가까이 되는
대가족의 식사를 준비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였기에 식구들은 모두 말렸다.
우리 집은 할머니 할아버지 기일에도
추모관에 갔다가 근처 식당에서 식사한다.
두 분 기일도 따로 챙기지 않고
합장해서 모신 날 하루만 모인다.
식구들은 할머니 할아버지 때처럼
엄마의 기일에도
엄마에게 갔다가 식당에서
편히 식사하고 이야기하자고 했다.
동생은 단단히 마음이 상했다.
본인이 괜찮다는데 다들 왜 말리는지
자신에게는 음식을 준비하고
상을 차리는 모든 것이 보고 싶은
엄마를 애도하는 과정인데 대체
왜 못하게 하냐며 화를 냈다.
그 맘도 이해가 간다.
동생 임신 막달에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제대로 앉아 있기도 어려운 몸으로
엄마의 장례를 치렀다. 동생은 그렇게
배속에는 아이를 가슴에는 엄마를 품었다.
아이를 낳으면 하루에도 열두 번 엄마가 생각난다.
우리 엄마가 나도 이렇게 낳으셨겠구나,
엄마, 아기가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해?
엄마, 우리 아이가 오늘은 이랬어~ 하고
조잘조잘, 하고픈 말도 나누고픈 기쁨도
수도 없이 많을 텐데, 동생에게는
그 중요한 순간들이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
아직 엄마가 필요한 초보 엄마는
젖을 먹이려, 기저귀를 갈려, 옷을 입히려
아가에게 “엄마가~” 하고 말할 때마다
내 엄마가 떠올라 육아를 하는지 애도를 하는지
분간할 수 없는 슬픔과 혼돈의 시간을 보낸다.
그 마음을 짐작하기에
동생이 하고픈 대로 하라고 했으나
어른들의 입장은,
부모들의 마음은 그게 아닌가 보다.
그렇게 안 해도 괜찮아.
네가 안 해봐서 그래, 그거 보통 일 아니야.
애기 데리고 어떻게 하려고 하니
꼭 그렇게 해야만 애도가 아니란다.
너 힘들어. 몸살 난다. 아서라.
결국, 동생은 항복하고
기일에 조촐하게 혼자 상을 차렸다.
그리고 그 주 주말,
엄마의 생신이기도 한 일요일.
가족이 모두 추모관에 모여 엄마를 보고
식당에서 편하게 밥을 먹고
경치 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가족은 일 년 만에 만나도 어제 본 듯
살갑고 가까웠다. 그 편안한 품에서
나도 한참 포근하고 따스했다.
그 사랑이 동생에게도 전해졌으리라.
엄마의 기일에 혼자 상을 차려서 그런지
가족의 마음이 전해진 건지
동생은 스르르 마음이 풀린 듯했고
내게 이런 문자를 보내왔다.
언니, 잘 들어갔지?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
준비하면서 여러 차례 내가 언니에게 화 많이 내서 미안하다.
많이 바쁠 텐데 식당도 액자 사진도 준비해줘서 고마워.
덕분에 나도 내 자리에서 엄마에 대한 마을을 기리며
잘 보낼 수 있었던 것 같아. 고마워. 잘 지내고
푹 쉬어 형부께도 안부 전해드려 줘.
엄마의 기일을 지내러 가던
그 일요일 아침.
문득,
이런 생각이 났다.
동생이 그렇게 고집해서 하려 해도
어른들이 죄 다 말린 것은,
그래서 결국 대식구의 상을 차리지 않게 된 것은,
어쩌면, 어쩌면 우리 엄마의 마음 아니었을까.
엄마가 계셨다면 똑같이 말리셨을 것이다.
똑같은 이유로 똑같은 방법으로.
가족의 입을 빌렸지만
엄마가 동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니었을까.
귀한 내 딸,
소중한 내 딸,
힘들게 애쓰지 마라.
그런 거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엄마는 그런 거 원하지 않아.
우리 딸이 아기와 편안했으면 좋겠어.
그게 다야. 엄마가 바라는 건.
너 힘들게 하지 마라.
사랑한다. 내 딸.
소중한 내 딸.
사랑은,
부모의 사랑은,
내가 헤아리기에는
아직도 너무 크고 깊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