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정이 없는 주말이다. 놀러 온다는 사람도, 참석해야 할 곳도, 당장 끝내야 할 일도 없다.
넷이서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는 다 같이 근처 카페엘 갔다. 아이들은 가져온 보드게임을 하다가 책을 읽고 음료와 빵을 먹었다. 남편은 수첩을 꺼내 일정을 정리했고 나는 책을 읽었다. 가볍게 비까지 내리는 카페의 창밖 풍경은 운치까지 더해주었다. 아, 이 얼마나 그림같이 여유롭고 평안한 장면인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주말의 그림이다.
하지만, 내 마음은 밖에서 들여다보는 그림만큼 평화롭지 않았다. 카페에 나오기 전 얼른 나가자고 1시간을 졸라대는 큰 애가 버거웠고 레고 한다고 안 가겠다던 둘째에게, 그럼 형아랑 다녀오겠다고 했더니 자기 안 데려간다고 갑자기 생떼를 쓰며 울어버리는 둘째가 당황스러웠다.
카페에 와서는 조용한 공간에서 의자를 시끄럽게 끄는 둘째에게 눈총이 갔고 자신이 들고 온 책을 동생에게는 양보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첫째에게 미간이 찌푸러졌다. 하... 마음은 하나도 여유롭지 않은 주말이었다.
왜일까? 무엇일까? 이 마음은? 왜 나는 여기서 감사함이 아닌 짜증이 올라올까! 분명 그림만 놓고 보면 감사해야 마땅할 상황인데, 왜 나는 짜증이 먼저 고개를 드는 걸까! 왜 감사함이 사라졌을까. 카페에서 두어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오는 내내 궁금했다. 뭘까? 도대체 왜 그럴까?
내가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이 하나 있다. 이민을 가게 되어 한국에서 보다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시간을 지나고 있는 가족이야기이다. 없는 살림에도 그 가족은 늘 하하호호이다. 아이들은 사이좋게 서로가 서로를 챙기고, 수제비 한 그릇만 놓고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가족 간의 웃음과 사랑이 넘쳐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감사가 끊이지 않는다. 나는 그 가족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 너무 예뻐서!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나도 예뻐서 볼 때마다 미소와 눈물이 동시에 번진다. 그렇게 얼굴도 모르는 그 가족에게 나는 늘 배운다.
커피숍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짧은 길. 순간 그 가족이 오버랩되면서 나는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다. 왜 내가 오늘 계속 짜증이 나는 지를! 그래, 너무 많이 가졌어! 너무 많은 것을 늘 가지고 있어서 내가 가진 것의 소중함을 몰랐던 거야. 이 모든 게 당연한 게 아니라 기적일 수 있는 것들 투성인데!
가족이 모두 건강하게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 당장 일하러 뛰어 나가지 않고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 아이들과 커피숍에서 책을 읽고 음료를 먹을 수 있다는 것, 이 모두 얼마나 기적 같은 일들인가! 아인슈타인이 그랬다. 세상을 사는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고. 하나는 세상에 기적이란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처럼 사는 것이라고.
아! 알아차리지 못하고 또 잠들어있었네! 의식적으로 감사할 것을 찾는 대신 무의식 적으로 불평, 불만을 선택하고 있었다. 택하는 줄도 모르고 그냥 자동반사적으로... 다시 고민이 이어졌다. 너무 많이 가져서 탈이면... 아, 그럼 어쩌지? 다 버려야 하나? 다 내다 버리고 무소유를 실천해야 다시는 감사함을 잊지 않을 수 있는 건가? 다 내다 버리면, 감사함이 찾아오기는 할까? 아니, 왜 다 없어지고 난 후에 감사를 찾으려 하는 거지? 그냥, 지금 바로 감사하는 건 어때?
그렇게 또 하나의 작은 게임이 시작되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족을 모아놓고 입을 열었다. "있잖아, 엄마가 뭘 생각한 게 있는데, 다들 들어봐." 우리 이제부터 게임을 할 거야! 엄마가 생각할 때, 우리는 지금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장난감도, 입을 옷도, 먹을 것도, 너무너무 충분해.
그러다 보니 우리가 감사함을 잠시 잊은 거 같아. 엄마가 밥을 차려줘도 힝~ 나 이거 싫어하는데~ 소리가 나오고 장난감도 서로 갖겠다고 다투고 또 다른 장난감을 사달라고 하지. 물건이든 뭐든 좀 적고 부족해야 있는 것에 감사가 나오거든! 없어야 있음을 알고, 아파봐야 건강함에 감사하고. 잃어봐야 가진 것의 소중함을 알지. 우리, 다 없어지기 전에 먼저 알고 감사하자!
엄마가 이번주에 장을 안 볼 거야. 좀 전에 마트를 들를까 하다 그냥 들어왔는데 아주 잘됐다! 오늘이 토요일이니까 다음 주 토요일까지 마트에 가지 않을 거야. 당연히 외식도 없어. 일주일 동안 집과 냉장고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먹고도 남을 거라고 생각해. 이번주 우리 모두의 미션이야! 무슨 음식이 올라와도 불평하지 않고 먹기! 안 먹고 싶으면 안 먹어도 돼. 그럼 다음 끼니가 더 맛있을 거야. ^^
우리가 정말 돈이 없어서 못 사 먹는다고 생각하면 슬프겠지만 이건 게임이야! 그러니 더 가볍게 할 수 있을 거 같아. 어때? 응~ 좋아!! 좋아!! 미션, 게임이란 말에 아이들은 신이 났고, 남편도 고개를 끄덕이며 지지의 표현을 한다. 내가 아이디어를 내면 언제는 흔쾌히 따라와 주는 세 남자 덕에 나는 생각나는 것을 실천해 보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그 역시 감사하다.
빈손에 배가 고프면 서럽지만, 만원을 들고 배가 고프면 아무렇지도 않다. 만원이 내 배를 불려주는 게 아니라 언제든 원하는 걸 사 먹을 수 있다는 나의 생각과 믿음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손에 만원을 쥐고 있다. 충분히 가볍게 일주일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일주일을 넘어 인생도 이와 같이 가뿐하게 살 수 있다.
그날, 장을 보지 않았음에도 냉장고가 가득가득 채워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기적을 택했더니 정말로 기적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