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바다의 전경이 머릿속을 떠다닐 때가 있다. 그때마다 과거의 익숙함이 뭍으로 올라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학창 시절을 바다가 있는 도시, 그중에서도 바다가 훤히 보이는 동네에서 지냈다. 거실 창문을 열면 푸른 바다가 보였다. 너무나 눈에 익은 풍경이라 나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고 마는 지금과는 달랐다. 그 푸르름이 내 삶의 배경지인 것이 당연했다. 바다의 고요함과 그 길을 따라 이어진 활기가 지난 시절의 대표 이미지였다. 친구들과 모래사장에 털썩 주저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 불꽃놀이나 소소한 먹거리들을 판매하던 상인들이 줄지어 있는 자주 걷던 그 길, 시험이 끝난 후 담임 선생님과 반 친구들 모두 그곳으로 달려가 같이 고기를 구워 먹던 그때에는 전부 내 곁으로 바다가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가끔은 생각만 하는 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멀지 않은 날에 나를 그 장소에 데려다 놔야만 할 것 같은 때도 있다. 평소 충동적인 편은 아니었지만, 나를 다른 장소로 데려다 두는 일에 있어서는 관대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 바다가 보이는 가장 가까운 도시가 어딘지를 가늠해 보았다. 두 곳 정도의 후보지가 떠올랐지만, 썩 내키지는 않았다. 굳이 또 비행기를 타고 가야지만 볼 수 있는 바다가 그 사이를 자꾸만 비집고 들어왔다. ‘그래, 나 요즘 좀 지쳤잖아.’라는 핑계와 기타 구구절절한 이유를 나 자신에게 설명하며 비행기 표를 결제하고 말았다.
바다가 보고 싶은 사람은 대부분 끝도 없는 고민에 골머리를 앓고 있을 것이다. 해결 안 되는 답답함일 수도 있고, 온 힘 다해 부딪히는 중이라 너덜너덜한 상태일 수도 있다. 때론 부딪힐 힘조차 나지 않거나 이도 저도 아니라면, 불안감에 밀려오는 쓸데없는 고민의 늪 안에 빠져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쓸데없는 고민을 사서 하는 쪽이었다. 어느 시점이 지나면 자연히 해결될 일을 너무 일찍부터 고민하여 그만큼 먼저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해결할 방법이 없을지도 모를 고민의 늪에서 열심히도 허우적대고 있었다. 화가 너무 쉽게 났고 그러는 동안 많이 무기력해졌다.
일기도 자주 썼다. 이런 시기의 내 일기장은 자주 펼쳐진다. 한 번 펼칠 때마다 몇 장은 기본으로 써냈다. 온 마음과 온 머리에 가득 찬 부정의 기운을 빼내야 했기 때문에. 내 마음을 잘 알아주는 친구들에게 나의 모든 심경을 토로하고 싶기도 했지만 좀 어려웠다. 친구들에게 이 기운을 전부 빼냈다간 내 곁에 친구가 하나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부정적인 기운은 쉽게 전염이 되곤 하니까.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피부에 얹어지는 바다 도시 특유의 습기에 맘이 한결 나아진다. 택시 기사 아저씨가 여행의 이유에 대해 물을 때에도 진짜 이유는 숨겨두고 그냥 이곳의 바다가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뭐, 아예 거짓말은 아니다. 이 도시의 토박이라는 택시 기사 아저씨께 장소 추천을 부탁드리니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해안가 드라이브가 제일인 것 같다 하셨다. 오로지 바다가 목적인 택시 뒷자리의 손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짐을 풀자마자 바다가 잘 보이는 곳으로 향했다. 지난 시절의 어떤 순간처럼 바다를 마주 보고 앉으니, 거짓말처럼 내 몸속의 모든 어둠이 씻겨 나가는 듯했다. 그때 친구의 안부 연락이 온다. 늘 나의 안부를 먼저 물어줬던 이. 이곳에 와 가장 처음 본 바다를 전송한다. 그리곤 정말 오랜만에 온갖 예민함에서 벗어난 것 같다며 바다색 하트와 함께 답장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