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죽음의 목격자가 된 건 비교적 어린 시절이었다. 처음 누군가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어야만 했을 때 알게 된 것은 죽음이라는 단어의 가까움과 생경함이었다.
다음으로 두려움이 문을 두드리며 그녀를 찾아왔다. 세상에 항상 존재했던 사람의 부재보다도 두려웠던 건 잠에 드는 일이었다. 이별 후, 떠나간 이에게 준 마음을 셈하게 되는 일은 필연적인 듯했다. 어떤 식으로 계산해본들 답은 늘 마이너스였다. 잠에 들면 꿈을 꿀 텐데, 그곳에선 온갖 원망이 시리도록 뾰족하게 그녀를 찌를 것만 같았다. 메꿀 방법이 없는 비극이었다. 잠에 들기 전까지 무섭다는 말을 읊조리며 몸을 한껏 움츠려야 했다. 무거운 눈꺼풀을 쉬이 내려 둘 수가 없었다. 그래봤자 꿈일 텐데.
해가 떠 있을 때, 그녀는 대부분 우는 얼굴이었다. 눈물을 어떻게 참는지 몰랐던 때였다. 하루의 전부에 가까운 시간을 떠나간 이를 떠올리는 데 써야 했다. 원하든 원치 않든 모든 생각의 방향이 그리로 수렴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눈물범벅이 된 그녀를 보며 수군거리고 있었음에도 부끄러움은 이만치도 힘을 쓸 수가 없었다. 끝끝내 울음이 그쳐져도 다시금 눈동자 가득 눈물이 차올랐다. 사무치는 감정을 손쓸 줄 모르던 때이기도 했다.
조금 더 자란 어떤 때에는 도리어 덤덤함을 유지했다.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냥 그랬다. 특히 사람들 앞에선 눈물이 쏙 들어갔다. 그래서 떠나간 이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종종 폄하되기도 했다. 슬픔의 상징이 눈물이라는 게 문제였던 걸까. 하지만 그녀의 곁에는 따스한 맘을 건네는 이가 훨씬 많았다. 그럴 때면 괜찮다는 의미가 담긴 표정과 말과 행동들을 보여줘야 했다. 그들이 그녀의 몫만큼 대신 울어 주기라도 한 건지, 그 순간만큼은 정말로 괜찮은 것 같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더 많은 순간에 그녀의 세상은 무너지고 있었다. 경험해보지 못한 두려움이었다. 그것은 태어나 처음으로 불행한 미래를 그리게 만들었다. 막막한 미래는 떠올리는 일만으로도 현재를 꽁꽁 묶어버리곤 했다. 뭔가를 계속 경험하면 익숙해진다고 하던데, 이따위 경험은 늘 새로운 두려움만을 안겨줄 뿐이었다. 그녀는 도망쳤다. 이토록 커다란 것에는 부딪혀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도망을 눈치채지 못했다. 잘 해내고 있다고 사람들을 속였고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속였다.
시간은 흘러갔다. 시간의 장점이자 단점은 지나간다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과거에 생각했던 것처럼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고 어떠한 걸 선택했건 간에 남은 건 그녀 자신이었다. 주어진 삶 안에서 선택의 몫을 살아내야 하는 그녀. 어쩌다 떠나간 이의 이야기를 꺼내야 할 때면 1순위가 되어야 했던 엉엉 우는 일도 과거가 되었다. 말이 되어 힘겹게 뱉어지는 일이 반복되자 점점 울지 않게 된 것이다. 아, 술을 마셨을 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기도 했다.
죽음이 건네는 가장 슬픈 일은 아무래도 잊혀지는 일인 것 같았다. 남겨진 사람으로서 기억해내야만 할 텐데 자꾸 그들을 잊게 되었다. 떠난 이와 함께 보냈던 그 순간만 멀어져 가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멀어져 갔다. 생김새와 목소리가 희미해지고, 우리가 나눈 추억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그녀 자신밖에 없어서 믿을 수가 없어졌다. 같이 기억하면 쉬울 것 같은데, 혼자서 기억하는 일은 무척 어렵고 혼란스러웠다. 모든 것이 스스로 만들어 낸 가상현실 같았다.
그녀는 떠난 후의 세상이 어떤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한 번쯤 이런 상상을 해본 적은 있다. 죽음을 맞이한 그때부터 다시 삶이 이어진다고. 그러나 직접 죽어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었다. 뭔가를 알아냈다면 그건 남겨진 사람의 것일 뿐. 그리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이 영원한 이별에 무뎌질 수 있을지, 그래서 죽음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 두렵기는 해도 끝내는 담담해질 수 있을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