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금나비 Aug 13. 2024

대부도 대환장 여행 2

구멍을 메울 희망 갖기

11시에 출발하기로 한 계획이 남편의 늦장으로 30분이 지체됐다. 그래도 가까운 곳으로 가는 여행이라 한 시간 사십 분이면 도착한다 생각하고 점심을 가서 먹기로 했다. 나는 저녁에 바비큐를 해 먹을 생각에 김치를 챙겼고 양파절임을 해서 과일과 함께 보냉백에 넣었는데, 혹시 상할까 봐 안고 조수석에 탔다. 아이들 셋은 뒷좌석에 앉고 남편은 운전을 하면서 가는데 에어컨에서 냉풍이 아닌 송풍만 나왔다. 땀이 나는 것보다 열기로 답답한 게 더 힘들었다.  


“에어컨 바람 안 나와요?”

“그게, 가스가 다 됐나 봐. 스를 충전해야겠네!”

찜통더위에 에어컨이 고장 나서 아이들이 아우성이다.

“아빠, 너무 더워!”

“덥니? 창문 열어줄게.”

남편은 창문을 열어 애써 아이들의 마음을 잠재우려 했다.


“김치 냄새 나. 트렁크에 실어!”

남편도 기분이 상했는지 김치 탓을 하는 것 같았다.

“트렁크에 놔두면 쉬어요!”

“차 안에 냄새나는 것보단 낫지! 김치 보냉백에 넣었지?”

“네.”

“그럼 트렁크에 넣어. 얼마 안 걸리니까 괜찮아!”


남편은 차를 세우더니 트렁크를 열어줬다. 보냉백에는 과일과 음료수도 같이 있었다. 모두 넣고 나니 허전했다. 과자도 음료수도 과일도 모두 트렁크에 있어서 나와 아이들은 목도 마르고 입도 심심하고 더위에 조금은 지쳐있었다. 다행히 작은 손가방에 얼음물을 넣어놔서 그것으로 아이들과 나눠먹었다. 남편은 운전하며 비상으로 챙겨둔 젤리를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금요일이라서 그런지 자주 정체됐지만 안산으로 들어가는 지점에서는 길이 트였다. 차는 속도를 내며 달렸고 에어컨 바람도 잘 작동됐다.

“에어컨이 갑자기 잘 나오는데요?”

“으응, 속도를 높이면 에어컨 바람도 잘 나와.”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남편의 태도에 한 마디 하려다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넘겼다. 말할 걸 그랬나? 2박 3일 여행이 1박도 못한 채 당일치기 여행이 될 줄 알았다면...     


에어컨은 냉방이 되다, 안 되다를 반복했고 더위와 에어컨 바람의 박자에 적응할 무렵 차는 대부도 인근 시화나래휴게소로 들어왔다. 남편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다고 해서였다.

간식을 사서 주차장 반대편에 있는 휴식 장소로 이동했다. 우리는 벤치에 앉아 바다를 보면서 음료와 핫도그와 추로스를 먹고 있었다. 공원 벤치를 활보하는 비둘기처럼 이곳은 갈매기가 그랬다. 서해바다는 처음인데 갈매기가 반겨주는 것 같아 좋았다. 부산 바다처럼 짠맛은 안 났지만 심심한 향의 바람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연초에 갈매기 꿈을 꿔서 갈매기가 내게 행운을 가져다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연신 갈매기 사진을 찍었다. 벤치에 갈매기가 변을 봐도 물티슈로 닦으며 그 자리에 앉았다. 이런 행동도 행운이 깃들어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갈매기의 소리도 가까이서 들으며 갈매기를 실컷 구경했다. 가족들은 바다와 한쌍을 이룬 갈매기 얘기에 화기애애했다. 대부도의 뜨거운 볕도 우리를 맞는 인사 같았다.




휴식을 취한 가족은 다시 차에 올랐다. 남편 기분도 좋아 보였고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방아머리 해수욕장을 지나치고 있었다.

‘내가 처음 예약한 숙소가 이 근방일 텐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그때가 2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나는 아이들과 해수욕장 인근에서 점심을 먹고 숙소로 들어가길 원해서 계속 음식점 이름을 댔다. 아니 작은 소리로 먹고 가는 게 어떻겠냐고 말했었다.

“해물칼국수도 있네! 오리백숙도 있고, 냉면집이 좋겠지? 와, 포도찐빵은 처음 봐!”  

옆에서 남편은 내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고 있었나 보다. 곧장 숙소로 갔다.

숙소는 생각한 것보다 멀어서 3시가 체크인인데 2시 45분 정도에 도착했다.  

    

“숙소 사장님이 해수욕장에서 15분 거리라고 했었는데 30분 거리인 것 같아요. 점심을 먹고 들어올 걸 그랬어요.”

“미리 말을 하지! 이럴 줄 알았으면 먹고 왔지.”

남편은 핀잔을 줬고 아이들도 그랬다.

“점심 먹고 가자고 그랬는데...”

나는 분명 음식점을 지나칠 때마다 뭘 먹을까 고르고 있었고 이것저것 음식점 이름을 대며 같이 호응해 주길 바랐는데, 가족들은 내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엄마, 말을 해야지! 점심 먹고 들어가자고.”

“그래, 내가 잘못했다! 먹고 들어가자고 강력하게 말했어야 했는데.”     


남편은 체크인이 2 시인줄 알았고 나는 3시라고 얘기한 것 같은데 내가 남편의 머릿속에 박힐 만하게 얘기하지 못했나 보다. 나는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했었다. 남편은 2시가 체크인이니 빨리 가서 짐을 풀어놓고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던 것이고, 나는 그러면 좋지만 숙소 도착시간이 생각보다 늦으니 미리 점심을 먹고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큰딸은 알고 있었지만 조용히 있었고, 아들과 막내는 관심이 없고 바다가에서 놀 생각에 기쁜 것 같았다. 나는 숙소가 어떤 곳인지 미리 카톡에 남겼는데, 남편이 잘 살펴보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았다. 생각해 보니 이번 여행에서 내가 꼭 해야 될 말은 하지 않고 지나친 것이 많았다는 걸 느꼈다.      


숙소 안은 그야말로 환장할만한 곳이었다. 편백나무로 내부가 지어져서 피톤치드의 향이 날 줄 알았는데 곰팡이 나무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도저히 나도 견디기 힘들 정도인데 남편은 어떠랴? 아토피에 비염까지 있는 남편은 참을 수 없는 공간이었다. 곰팡이가 있는 곳에선 재채기에 콧물이 나와서 피하는 사람이다. 남편은 잠깐 앉아서 아무 말이 없더니 바로 밖으로 나갔다. 펜션 안에서 정적이 흘렀다.  

“오 마이 갓!”




부산 여행이 틀어져서 이곳에 오기까지 험난했는데 제일 중요한 숙소가 문제가 되니, 망친 여행이 돼버렸다. 내가 막내가 고른 숙소라고 그냥 따라준 것이 가장 큰 잘못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후기도 봤는데 이렇게 까지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는데, 냉장고도 찌그러져서 잘 안 열리고 냉동고는 성에가 잔뜩 끼어있고 곰팡이 냄새는 심각했다. 그야말로 창고였다! 막내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는데 자기가 고른 곳이라서 그런지 적응을 하는 눈치였다.

‘숙소를 미리 와서 볼 수도 없고!’


벌써 3시가 넘어 점심때를 놓쳤다. 아이들은 배고파했고 나도 그랬다. 가져온 새우깡을 펴서 아이들과 와그작와그작 씹으며 이 환장 귀신 나올 것 같은 펜션에서 어떻게 날을 샐지 고민하고 있었다. 에어컨을 틀어놨다는데도 더운 것도 환장할만했다. 곳곳에 먼지도 쌓여서 물티슈로 닦으며 한숨만 나왔다. 하염없이 기다려야 되나 생각할 때쯤 머리를 식히고 온 남편이 들어와서 앉지도 않고 말했다.


“나가서 점심 먹자!”     

우리는 해수욕장에 갈 짐만 한 케리어에 담아서 부리나케 나갔다. 다시 이곳에 안 올 사람들처럼...  

남편은 ‘배 터지게 먹는 날’이란 음식점을 발견하고 들어가자고 했다. 해물칼국수에 영양밥, 파전, 보리밥을 시켜서 먹었다. 해물칼국수 양이 어마무시했다. 다섯 식구가 먹고도 남을 양이었다. 생각보다 음식도 맛있었다. 갯벌이 있는 곳이라 조개도 많겠지! 해감 토한 바지락이 신선했다. 국수는 남겨도 바지락은 남김없이 먹었다.      


방아머리해수욕장에 주차를 하고, 나와 딸들은 먼저 해수욕장에 가서 주변을 살폈다. 남편과 아들은 산책을 하는지 십 분이 지나도 보이질 않았다. 부산 바다와 제주도에서 볼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파라솔 아래에 사람들이 있는 건 똑같은데, 대부분 튜브를 사용하지 않았다. 너무 낯설었다. 막내는 수영이 하고 싶어 튜브를 찾았는데 튜브를 대여하는 곳도 흔치 않았다. 겨우 찾아서 튜브를 빌리려고 했는데 6시까지만 빌릴 수 있다고 했다. 1시간 밖에 사용할 수 없어서 막내가 안 빌리겠다고 했다.      


큰딸은 바다에 들어가지 않아 짐을 지키고 있고 막내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는 입고 온 옷 그대로 바다에 들어갔다. 발만 담근 샘이다. 막내 사진 기사로 들어간 것인데 뻘밭을 지나 바다로 들어가려면 한참 걸렸다. 서걱거리는 모래사장을 밟으며 거닐 걸 기대했는데 온통 뻘밭. '푹푹' 빠져서 슬리퍼는 소용없어 벗어버리고 맨발로 들어갔다. 그래도 뻘의 감촉이 나쁘진 않았다.      


딸은 발가락에 뭔가 느껴져서 집었는데 게를 잡았다고 좋아했다. 나는 종아리까지 잠길 정도로 들어갔는데 막내는 깊이 들어가서 온몸을 담그며 좋아했다. 사람들이 깊이 들어간다고 해도 바닷물이 가슴까지도 차지 않을 정도의 깊이였다. 그래서 그런지 사고가 나지 않나 보다. 안전요원도 없었다. 서해안 대부도 바다가 이런 곳일 줄이야! 그래서 튜브가 안 보이는 거였다.  파라솔 가격도 만원, 튜브도 만원, 모든 빌리는 용품은 만원으로 통하는 것 같다.


바다로 들어가려면 뻘을 지나야 돼서 우리는 내일을 기약하고 한 시간도 수영을 못했다. 6시면 확성기로 모두 해변에서 나오라고 안내를 했다. 그 시간이 수영하기는 좋은 시간대였다. 물이 차올라 뻘을 덮는 시간이었다. 이때부터는 튜브가 필요한 시간인데 나오라고 한다. 아직 해도 떠 있어 물놀이하기 좋은 시간이고 7~8시까지 수영을 해도 좋을 것 같은데, 이곳에서는 6시만 되면 해수욕을 할 수 없었다. 많이 아쉬웠다.




우리는 아쉬운 마음에 해변 주위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아이스커피와 딸기셰이크를 먹으며 바다를 봤다. 일몰이 너무 예뻤다. 잔물결 위로 태양이 쓰다듬는 손길을 빛으로 뿌려주는 아늑함의 바다, 나는 눈으로 가슴으로 커피를 마시며 흡수했다. 투명한 바다가 아니어서 그런지 잔물결에 비치는 일몰의 반짝임이 더 빛나보였다. 나는 카페에서 열린 계단으로 내려와 해변을 거닐며 갈매기와 놀았다. 비둘기처럼 옹기종기 모여있는 갈매기를 놀라게 하며 날아오르는 날갯짓의 자유를 느껴보았다.      


8시가 넘어서 카페 옆 건물에 수제 버거집이 있어 우리는 그곳으로 이동했다. 수제버거를 먹으며 또 해변으로 열리는 계단으로 내려와 바다를 봤다. 폭죽을 즐기는 가족과 연인들이 보였다. 우리는 한 시간가량 저녁을 먹고 가기 싫은 숙소로 향했다. 차창으로 스프레이 뿌리듯 가녀린 비가 오고 가기를 반복했다.      

숙소는 외진 곳이라 초행길에 가기는 위험한 곳이었다. 갈림길도 있어서 귀신에 홀린 듯 남편이 숙소를 찾지 못하고 같은 길을 반복해서 왔다. 남편이 명을 단축한다며 화를 냈다. 나와 아이들은 숨을 죽이며 무사히 숙소에 도착하길 기다렸다. 내비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갈림길을 잘못 들면 해안가로 빠질 수 있는 위험한 길인 것 같았다. 남편은 한 번 잘못 들더니 두 번째는 바로 찾았다. 그래도 20분은 더 지체됐으니 화가 날 만도 했다.

숙소에 차를 세우고 남편이 말했다.     

“숙소에서 짐 싸들고 나와! 집에 가자!”

우리는 모두 남편의 명령에 즉각 행동했다. 나도 하루 종일 열기를 마셔서 머리도 아픈 데다 숙소에서는 한숨도 못 잘 것 같았다. 집에 가는 게 나을 것 같은 마음에 아이들을 부추겨 일사천리로 짐을 싸들고 차에 올랐다.


우리는 대부도에서 서울로 올라오기까지 아무 말도 안 했다. 집 근처로 올 때는 머리도 개운해지는 것 같고 졸리기도 한 게 안심이 됐다. 아이들에게는 미안했지만 큰 사고 없이 집에 온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2박 3일 대부도 여행은 당일치기가 됐다. 막내는 혼자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왔지만, 불평불만이 돌림노래가 됐다. 아쉬운 건 당연한 일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다음엔 택시를 타더라도 바쁜 아빠는 데려가지 말자고 하며 아이들을 달랬다. 남편은 일요일에 일이 있었고 어떻게 할지 걱정하고 있었는데, 숙소 문제로 모든 게 해결된 것 같았다. 나도 장롱면허를 탈피하고 운전을 다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아침에 숙소 사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갑자기 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다.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사장님이 그 방은 7일 동안 문을 닫고 있었고 올해는 유독 비가 많이 와서 곰팡이 냄새가 났나 보다고 미안해하여 일부 환불을 해주겠다고 했다. 미리 말을 해줬다면 다른 방도 있었다며 아쉬워했다. 전액환불을 받고 싶었지만 우리도 아무 말 없이 나온 터라 일부 환불을 받는 것으로 만족하고 숙소 일을 잊기로 했다.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여행을 다녀왔다. 아쉬운 마음을 누르며 다음 여행지를 생각해 본다. 다음엔 여유롭게 잘 계획 잡아서 다녀오리라.... 아이들도 아쉬운 여행보다 훗날 만족한 여행을 다녀오면 이번 대부도 일은 아무것도 아닌 짧은 경험이 될 거라고 믿는다.

시어머님이 코로나에 걸려서 계획된 일이 틀어지며 겪게 된 대부도 여행에서 힘든 일도 있었지만 깨달은 바도 있다. 나의 역할이 중요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해바다의 감성과 갈매기를 실컷 보고 느끼고 온 것은 행복했다. 그걸 얻으려고 다녀온 여행 같다.


아이들에게 숙소를 맡기지 말고 엄마가 정하면 그걸 밀고 나가는 것. 책임을 지는 사람이 욕도 얻어먹는 법인데 막내 말에 전적으로 따른 내 행동에 반성이 많이 됐다. 그리고 남편과 시어머님의 말에 서운한 점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내가 어떻게 방향을 잘 잡고 여행을 이끌어가는지가 더 중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를 예약했다 취소하는 과정에서 취소 사유에 대한 증빙을 첨부하라고 했을 때 시어머님의 코로나 확인증이 필요했다. 그걸 시어머님께 요구했었는데 어머님이 나는 그런 것 할 줄 모른다고 하실 때 조금 서운했었다. 하지만 어머님이 숙소에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머님의 일도 아니다.       

  

여행에 대해서 모든 걸 쥐고 있는 게 나인데, 내가 좀 더 신중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잘 이끌어가면서 여행 계획을 세우고 마무리까지 신경을 써야 됐다는 걸 느꼈다. 그래야 모두가 행복한 여행이 되는 것이었다. 사소한 구멍들이 모여 여행을 마냥 즐길 수 없게 만드는 것 같다. 혼자 가는 여행이 아닌 가족 여행이면 더 그런 것 같다. 그래도 그 구멍을 메우게 한 꿈속의 담쟁이덩굴처럼 푸른 희망들이 구멍을 메워준 것 같다. 그리고 서해바다의 추억도 내 가슴에 벽화처럼 남아 있다.    

‘배웠으면 됐다! 다음 여행은 좀 더 즐겁고 만족스러운 여행으로 만들면 되지!’

이번 여행을 통해 나도 그렇지만 내년에는 가족들도 행복한 여행이 될 수 있도록 더 도와줄 거라 믿는다.           





이전 29화 대부도 대환장 여행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