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12월 어느 날, 동생과 아침에 통화를 하면서 “잔소리도 사랑이다!”라는 걸 느꼈다.
나는 언니와 갈등을 빚은 얘기를 동생에게 했는데 동생은 이렇게 말했다.
“큰언니가 하는 말은 다 진심으로 사랑이야!”
나는 동생과는 달랐다. 언니니까 무조건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 같아서 그랬다. 하지만 동생이 나보다 언니를 믿고, 언니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깨달았다. 나도 언니의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 잔소리도 사랑이라고.
내가 직장 생활할 때 상사가 단점을 얘기하면서 “내가 언니로서 위하니까 너한테 이런 얘기해 주는 거야! 누가 나같이 얘기해 주겠니?”라고 말했다. 그때는 ‘그런가 보다’라고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상사가 말해주는 내 단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도 있고, ‘내가 그런가?’ 생각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상사는 어린 시절에 알던 언니였고, 언니를 믿고 이 직장엘 다니게 된 거여서 나는 언니에게 의지를 많이 했고 언니의 말에 크게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언니가 일을 시키면 배우며 따라 했고 언니가 칭찬을 해주어서 힘이 났다. 자연스럽게 언니가 하던 일도 내 일이 되었다. 언니는 다양하게 알면 도움이 된다고 일을 점차 늘려주었다. 이 직장에서도 2년을 일하니 슬럼프가 왔다. 다른 일을 하고 싶던 차에 친구가 추천을 해주는 곳이 있어서 그곳으로 이직하려고 했는데 언니가 말렸다.
“절대 너보다 내가 먼저 퇴사할 일은 없을 테니까 어디 가지 말고 계속 같이 일하자! 곧 승진도 할 거고.”
그런데 나보다 먼저 퇴사할 일은 없을 거라던 상사 언니가 먼저 퇴사한 것이다. 언니가 나가기 전에 먼저 퇴사하는 꿈을 꾸긴 했지만 정말 현실이 되고 말았다. 나는 배신감을 느꼈다. 그때는 언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미워했는데, 세월이 흘러 다시 그때 일을 찬찬히 생각했다.
‘그 당시 언니는 가정이 있었고 나는 솔로였어!’
나도 엄마가 돼서 언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언니는 남편의 벌이가 적어서 집안 살림에 자녀들을 키우며 경제적인 부분도 책임져야 했을 거야. 그리고 언니는 아파서 자주 병원엘 갔었어. 얼마나 힘들었을까!’
언니는 나보다 더 책임져야 할 자녀들이 있었다는 생각에 언니를 이해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용서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미안하다며 떠난 언니가 떠오른다.
친정 언니와 얼마 전에 통화했을 때 언니가 충고했다. 언니니까 너한테 할 수 있는 말이라며.
“언니가 이렇게 얘기해 주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해!”
자녀들이 방황을 하니까 언니가 예전에도 잘하라고 말해줬는데 무시했다며 내 잘못이 크다고 했다. 나는 언니가 해준 충고에 대해 인정할 수 없었다. 나도 아이들한테 부족하지만 노력하며 키우고 있었고, 아이마다 사정이 있는데 언니가 내 마음을 몰라준다고 느꼈다. 나는 언니의 충고를 사랑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무조건 사랑이니 받아들이라고 말하니까 더 거부감만 들었다.
“언니가 내 사정을 알아? 내 마음 알아? 언니 말이 위로가 안 돼!”
뚝―
언니는 전화를 끊었고 나는 격하게 서운하고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자연스럽게 기도하는 마음이 돼서 찬찬히 생각하게 됐다.
‘내가 아이들을 방치한 건 아닌데, 언니 말이 너무 서운해! 나의 노력이 모두 부정당한 기분이야! 정말 언니가 날 위해서 한 충고일까?’
나는 직장 상사였던 언니와 친언니를 비교했다.
‘상사 언니도 날 위해서 한 얘기는 맞지만, 친언니가 날 더 위한다고 느껴! 친언니니까.'
내가 자녀들한테 이렇게 하면 좋다고 목이 터지라고 반복하며 얘기해도 안 됐던 일이 생각났고, 친정엄마도 자녀들에게 말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구나, 표현이 부족하지만 동기는 사랑이지! 빨리 고쳐주고 싶어서 그렇게 나무란 거야. 하지만 엄마도 자녀의 싫은 행동에 화도 났고, 고치려고 애쓰셨고, 목소리도 높았어! 마음처럼 행동에도 사랑이 묻어나면 좋았겠지만, 그것도 위하는 마음에서 출발했으니 사랑이야! 언니의 충고도 사랑이야! 상사 언니도 그렇고.”
위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지만 사랑이 아니라고는 부정할 수 없었다.
물론 엄마도, 언니도, 나도 자녀에게 사랑의 마음에서 출발한 것처럼 말과 행동도 그렇게 느껴지게끔 변해야 한다고 느꼈다.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이 0.1%라도 있으면, 그 마음을 안 나는 100%의 사랑으로 느낄 수도 있어. 그 0.1%의 진심은 부정할 수 없는 100%니까. 크기가 작더라도 사랑이니까!
이렇게 느끼고 있는데,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안해, 동생의 자식도 내 자식이란 마음에 얘기한 건데. 딸이 나보고 엄마는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하지, 위로는 안 된다고 말했던 게 기억났어!”
“응, 언니도 위로받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아. 언니도 가족에게 위로를 충분히 받았다면 언니가 하는 얘기가 나한테 위로가 될 수 있었을 것 같아. 나도 요즘 언니와 같은 마음이야. 언니, 그렇게 생각하지?”
“그래.”
나는 언니와 같은 마음에 공감하며 우린 서로를 위로했다. 언니도 자녀와 갈등이 있다고 말했고, 우리는 엄마로서 자녀를 사랑해 주며 항상 응원하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