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금나비 Jul 30. 2024

세 가지 시험

원망이 감사로

남편은 아내에 대한 로망이 컸던 것 같다. 나는 필요하면 움직이는 타입인데 남편은 바지런하고 뭐든 찾아서 하는 타입의 아내를 원했다.

"차를 마시면, 나도 이 차를 집에서도 내려 먹고 싶다는 생각 안 들어? 다른 부인들처럼."

나는 아무 생각이 안 들었는데 말이다.


2016년 늦가을 오후에 있었던 시험이다. 남편이 갑자기 모과 네댓 개와 달걀 세 개와 도토리 한 포대를 들고 와서 거실 바닥에 내려놓더니, 모과로 모과차를 만들고 도토리로 묵을 만들고 오골계알이라며 부화시키라고 했다.

“아빠, 도토리는 다람쥐 먹어야 해요. 산에서 가져오면 안 돼요!”

“응, 다람쥐 먹을 건 놓고 왔으니 괜찮아.”

남편은 막내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집 밖으로 사라졌다.


나는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다가,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내가 콩쥐야, 신데렐라야! 이걸 혼자 처리하라고!”     

딸은 병아리가 태어날 걸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한참을 앉아서 세 가지 물건을 바라보며 ‘저걸 버릴까, 말까?’를 고민하며 남편을 생각하다가 오기가 생겼다.

“내가 못 할 줄 알고!”     


하겠다고 생각하니까 즉흥적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모과는 껍질이 딱딱해서 손을 다친 적이 있다고 친정아버지에게 들은 적이 있어서, 나는 모과를 씻어 수박 자르듯 두 손에 힘을 주며 눌러 잘랐다. 최대한 조심하면서 모과를 잘라서 1:1 비율로 설탕을 넣어 모과 청을 만들었다. 도토리는 딱딱하고 양도 많아 큰 대야에 도토리를 넣고 그 안에 물을 넣어 불렸다. 불린 도토리는 껍질도 잘 까져서 막내가 재밌다며 도왔다. 오골계 알은 딸이 품어주겠다고 했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라는 걸 알기에 인터넷 *마켓에서 부화기를 사서 병아리를 탄생시켰다!

     

껍질을 깐 도토리는 믹서기에 갈아서 묵을 쑤었는데, 모양은 울퉁불퉁하게 됐지만 간장 양념을 해서 먹어보니 고소하고 먹을 만했다. 알은 택배로 부화기가 와서 그 안에 넣고 부화되길 기다렸는데, 아이들이 매일 지켜보면서 얼마나 자랐는지 손전등으로 비춰보기도 하며 신기해했다. 우리 가족 모두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알은 부화기에 넣은 지 3주 후에 ‘삐악삐악’ 소리를 냈고 병아리가 못 나올까 봐 나는 소리 나는 알의 껍데기를 조금 까주었는데, 부리로 껍질을 쫓던 병아리가 알을 깨고 밖으로 나왔다. 세 개의 알 중 두 마리의 병아리가 부화기에서 태어났다.




남편이 세 가지 물건을 가져왔을 때 속상하고 원망스러웠는데 모든 걸 내 손으로 해결하니까 뿌듯하고 아이들한테도 좋은 추억이 됐다.      

나는 그 당시 시 쓰는 동아리에 회원이었고 몇 번 참석했는데, 어느 날 동아리 모임에 참석했다가 서로 친한 회원들이 나누는 얘기를 들었다. 어떤 분이 자기는 마트에서 도토리 가루를 사서 도토리를 만들었는데 재밌었다고 하며 자랑했다. 그 얘길 듣고 있는 분은 직접 묵을 만든 것에 놀라 하며 칭찬해 주었다.      


“저는 도토리로 묵을 만들었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속으로 말했다. 그래도 뿌듯한 마음은 지금까지 남아있다. 별 걸 다 시키는 남편이라고 생각했지만, 보람된 일이 됐고 이런 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어서 내겐 특별한 남편으로 기억에 남았다. 남편이 해보라고 권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나는 도토리로 아니 도토리가루 가지고도 묵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원망이 감사가 되었다!

이전 24화 세 번의 식사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