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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과꽃 Sep 02. 2024

추석빔을 입었던 그 시절이 그립다


아직 여명도 밝아오지 않아 바닥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길을 깨춤을 추며 뛰어간다.


"다친다, 조심해서 걸어라"


뒤에서 아버지가 말려도 언니랑 펄쩍펄쩍 앞서 걸었다. 추석이면 엄마는 첫새벽에 밥을 지어 우리를 깨웠다. 아버지를 따라 큰 집 제사에 가려면 새벽밥을 먹고 나서야 했다. 엄마는 올 추석에도 여지없이 긴 팔 티와 바지 그리고 운동화를 사주셨다. 간간이 꺼내보며 손꼽아 기다리던 추석이다.


싸하게 콧 속을 스며드는 새벽 공기는 어느새 팔다리를 따라 한기를 몰고 왔다. 새 옷은 기분 좋은 향을 뿜으며 한기 든 팔다리를 포근하게 감싸줬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추석의 기분은 그냥 걸을 수 없게 했다. '쿨렁쿨렁 칙칙!, 쿨럭쿨럭 칙칙!' 기차 타고 큰집에 갈 생각에 발이 먼저 춤을 추고 있었다.


시내버스에서 내리면 아직 해가 뜨기 전 역은 대낮처럼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아버지가 철도 승차권을 구입하시고 드디어 승강장 쪽 문이 열리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다. 제복을 입은 아저씨가 승차권에 펀칭을 해주면 우리는 풀린 망아지처럼 철도 건널목을 건너 마산행 승강장 쪽으로 뛰어갔다.




그렇게나 넓던 그 역이 어찌 그렇게 작아졌는지. 신 역사로 이사한 후 그 역사부지는 공원으로 조성됐다. 철로도 거의 다 걷어내고 아기자기한 화초가 심어졌다. 잘 정돈된 수목과 벤치가 그 시절 추억을 묻는다. 더듬어 보는 시선마다 목을 타고 올라오는 그리움이 시야를 흐릿하게 한다.


그 시절 추석빔 설빔을 해주느라 부모님은 참 고됐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자라서는 아롱다롱 많은 형제자매가 부모님 옷을 사드렸다. 아버지 의복은 철마다 오빠가 사 왔고, 엄마 옷은 막내 동생과 바로 위 언니가 자주 사드렸다. 내 차례도 많을 줄 알았다. 언젠가 엄마 옷을 사러 중앙시장을 방문한 기억이 난다.


친정엄마를 위한 옷이라 하니 주인아주머니는 화색이 돌았다. 오래전 알던 집 마냥 반겨주던 그 보세집에서 윗 옷 3장을 샀다. 밝은 보라색과 분홍색 빨간색이었다. 엄마가 좋아하실 거라더니 정말로 엄마는 꽃 자주색 옷을 들고 환하게 웃으셨다. 그랬는데 그런 기회를 더 가지지 못했다.


세월이 흐른 뒤 장롱에서 여전히 새 옷 같은 그 옷 몇 장을 발견했다. 한 장 외에는 새 옷 같았다. 불편했는지, 아꼈는지. 물어볼 수가 없었다. 좀 더 편안한 옷을 사줄 걸, 그저 고마워서 좋아하셨던가. 좀 더 자주 사 드리고 장롱도 간혹 들여다봐야 했다.


올 추석에는 엄마 옷을 샀던 그 옷가게 골목을 한 번 가보고 싶다.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부드러운 옷도 사고, 그 옷 입고 엄마 아버지를 만나러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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