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아버지가 말려도 언니랑 펄쩍펄쩍 앞서 걸었다. 추석이면 엄마는 첫새벽에 밥을 지어 우리를 깨웠다. 아버지를 따라 큰 집 제사에 가려면 새벽밥을 먹고 나서야 했다. 엄마는 올 추석에도 여지없이 긴 팔 티와 바지 그리고 운동화를 사주셨다. 간간이 꺼내보며 손꼽아 기다리던 추석이다.
싸하게 콧 속을 스며드는 새벽 공기는 어느새 팔다리를 따라 한기를 몰고 왔다. 새 옷은 기분 좋은 향을 뿜으며 한기 든 팔다리를 포근하게 감싸줬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추석의 기분은 그냥 걸을 수 없게 했다. '쿨렁쿨렁 칙칙!, 쿨럭쿨럭 칙칙!' 기차 타고 큰집에 갈 생각에 발이 먼저 춤을 추고 있었다.
시내버스에서 내리면 아직 해가 뜨기 전 역은 대낮처럼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아버지가 철도 승차권을 구입하시고 드디어 승강장 쪽 문이 열리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다. 제복을 입은 아저씨가 승차권에 펀칭을 해주면 우리는 풀린 망아지처럼 철도 건널목을 건너 마산행 승강장 쪽으로 뛰어갔다.
그렇게나 넓던 그 역이 어찌 그렇게 작아졌는지. 신 역사로 이사한 후 그 역사부지는 공원으로 조성됐다. 철로도 거의 다 걷어내고 아기자기한 화초가 심어졌다. 잘 정돈된 수목과 벤치가 그 시절 추억을 묻는다. 더듬어 보는 시선마다 목을 타고 올라오는 그리움이 시야를 흐릿하게 한다.
그 시절 추석빔 설빔을 해주느라 부모님은 참 고됐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자라서는 아롱다롱 많은 형제자매가 부모님 옷을 사드렸다. 아버지 의복은 철마다 오빠가 사 왔고, 엄마 옷은 막내 동생과 바로 위 언니가 자주 사드렸다. 내 차례도 많을 줄 알았다. 언젠가 엄마 옷을 사러 중앙시장을 방문한 기억이 난다.
친정엄마를 위한 옷이라 하니 주인아주머니는 화색이 돌았다. 오래전 알던 집 마냥 반겨주던 그 보세집에서 윗 옷 3장을 샀다. 밝은 보라색과 분홍색 빨간색이었다. 엄마가 좋아하실 거라더니 정말로 엄마는 꽃 자주색 옷을 들고 환하게 웃으셨다. 그랬는데 그런 기회를 더 가지지 못했다.
세월이 흐른 뒤 장롱에서 여전히 새 옷 같은 그 옷 몇 장을 발견했다. 한 장 외에는 새 옷 같았다. 불편했는지, 아꼈는지. 물어볼 수가 없었다. 좀 더 편안한 옷을 사줄 걸, 그저 고마워서 좋아하셨던가. 좀 더 자주 사 드리고 장롱도 간혹 들여다봐야 했다.
올 추석에는 엄마 옷을 샀던 그 옷가게 골목을 한 번 가보고 싶다.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부드러운 옷도 사고, 그 옷 입고 엄마 아버지를 만나러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