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랫동안 너를 만나왔지만 너에게 그런 면이 있는 줄 몰랐다.'
처음 보는 사람인 듯한 눈동자로 쳐다봤다. 글을 쓰면서 글을 통해 너의 세세한 감정을 듣게 된다고, '글을 쓰야만 그 사람을 진정 알게 되나 보다'라는 말을 덧 붙인 그녀는 거의 20여 년이 다된 지우이면서 직장 선배다. 그렇게나 생각이 많은 줄 몰랐단다. 멋쩍었다. 교량 위에서 고소공포증을 느끼는 것도 늘 의외라고 한다.
사람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얼마나 많은 모습을 안고 사는가? 저도 모르는 모습이 있는데 하물며 가끔씩 보는 지인이야 오죽하랴? 이제야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우린 같이 잊어버리고 세파에 휩쓸리며 살다가 다시 또 알아가며 사는 것이다. 그래서 문득문득 '아니 너에게 그런 면이 있었어?'라며 놀란다. 우리 기억의 한계다.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정말 다양한 가능성을 안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긴 날 동안 대면하고 지냈지만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는 그 놀라움과 반가움이 삶의 묘미다. 순간순간의 감정에 따라 받아들이는 부분이 다를 수 있으니 가끔은 새삼스러울 수도 있겠다.
새 살이 돋듯 생각도 변하고 타인에게 보이는 이미지도 변한다. 세포도 매일 새로운 증식을 한다지 않은가. 후회되는 순간이 있다면 노력하기에 따라 그 이미지를 변화시킬 기회가 있다는 말이 된다. 사람들은 따뜻한 면을 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에 진심을 다하면 누군가는 그런 모습으로 또 봐준다. 얼마나 살만한 세상인가!
'옛날 우리 살던 마당 수돗가와 그 옆 담장너머를 어찌 그리 잘 기억하니, 나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이 말은 유아 때 같은 집에서 자란 언니의 말이다. 글을 쓰다 보니 더 새록새록 기억난다고 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잘 전달되지 않았다. 글을 쓸수록 그 시절과 그때의 환경이 더 떠오르는 경험은 해봐야 안다. 한 때 글 쓰는 사람과의 대화에서 그런 말을 나눈 적이 있다. 그녀도 어릴 적 이야기를 쓰면 쓸수록 그 당시가 더 기억난다고 했다. 무척 반가웠다.
글을 쓰기 전에는 몰랐다. 학창 시절을 보내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늘 예민하기도 했고 소심하고 세심한 성격이 약점이라고 여겼다.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그건 나의 특별함이기도 했다. 이제야 하게 되는 위로라고나 할까? 그런 섬세함이 관찰력이 된 것이다. 어떤 성격이든 자신만의 특별함이 될 수 있다. 자신만의 독특함을 인지하고 어떻게 발현시키느냐가 중요하다. 그렇기에 우리가 자랄 때 어른들은 늘 '뭐든 많이 해보라', '뭐든지 배우고 하고 싶은 걸 하라'라고 하시지 않았을까? 그런 과정에서 자신을 찾아갈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살아오면서 어느 날 문득 시작한 글쓰기가 나를 알아채는 방법이 되었다.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이해를 도왔고 그로 인해 자신감과 안정감이 따라왔다. 남들이 이런 면, 저런 면을 어떻게 이야기 하든, 듣고 전보다는 편하게 넘길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