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밭을 밟는 쾌감이 보송보송했다. 이제 갈색으로 변해가면서도 촘촘하게 받쳐주는 잔디의 쿠션감은 의외였다. 그럼에도 온전히 발을 다 놓지 못한 이유가 있었으니, 혹여 아직 덜 마른 은행 과육을 밟을까 해서다. 삐죽삐죽 웃음을 삼키며 뭐 하러 은행나무 밑으로 들어갔는지. 비닐장갑을 끼고 봉지까지 준비해서 말이다.
길을 덮었던 은행알은 물러서 고약한 냄새를 한동안 피웠다. 제 스스로 뛰어내리면서 깨지고 누군가가 밟아서 깨어진 은행은 제 윤곽을 확실히 표했다. 은행잎이 거의 떨어진 지금은 바람과 햇살이 완충작용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예상대로 과육이 제법 말라 탱글탱글 했고 마치 동그란 구슬을 줍듯 잔디 사이에 숨어있는 은행을 조심스레 주웠다. 서너 알씩 집으면 노란 은행잎도 같이 따라왔다. 처음으로 해본 일이다.
이른 점심을 먹고 활터에 갔을 때만 해도 은행을 주울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우리 부부 외에는 아무도 없는 텅 빈 활터는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지 뭔가. 처음엔 은행나무 아래쪽으로 가봐야지만 생각했는데, 시를 3 순 놓고 145미터 잔디밭을 지나 활을 치러(주우러) 가는 길에 채비를 하고 갔다. 한 사람은 활을 치러 가게 두고 나무 아래로 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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