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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공 Mar 28. 2024

한 번 더 앙코르! 캄보디아

캄보디아 씨엠립 유적 여행기

  오직 앙코르와트를 보겠단 이유로 캄보디아에 다녀왔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화폐를 쓰는지, 어느 음식점이 맛있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언제나 모호한 목표만 있고 계획은 없는 삶이다. 비행기 값과 숙소 값을 내주는 걸로 계획형 인간인 동생의 시간을 샀다. 게으르게 살라면 시간도 사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다. 마음은 편하게, 몸은 좀 불편하게 다녀온 캄보디아 여행에 대해 모든 걸 말할 수는 없다. 대신 신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도 풀어보려 한다.


<신에게 닿기 위해선 네 발로 올라오너라>

  아예 무지한 상태로 캄보디아 유적 이야기를 할 순 없으니, 약간의 배경지식을 첨가해 보자. 힌두교와 불교 신앙이 혼재된 캄보디아지만, 흔히들 구경하는 유적은 대개 힌두교 사원이다. (물론 역사의 격동기에 불교 조각이 들어갔다가 다시금 파괴당하기도 했다.) 힌두교에서는 신이 사람만큼이나 많다. 그중에서도 파괴의 신 '시바', 질서의 신 '비슈누', 창조의 신 '브라흐마'가 흔히 숭배받던 삼대장이다. 유적지에는 시바와 비슈누의 사원이 참 많다. 사원의 벽마다 재미있는 신화들이 조각되어 있는데 글의 사이사이에 두어 가지 정도 풀어낼 듯하다.


  캄보디아 사원의 1층은 지옥, 2층은 인간, 3층은 신(천국)을 상징한다. 그 옛날, 승려와 왕만이 오를 수 있던 사원의 꼭대기 층을 이제 만국의 관광객이 오른다. 쉽지 않은 일이다. 가파르게 깎인 사암과 현무암 계단을 잘못 오르내리면 그대로 추락해 저승행 편도 열차 승객이 될 거다. 3층에 오르기 위해선 무릎을 굽히고 사지를 동원해 기어올라야만 한다. 왕조차 네 발로 오르던 길이다. 인간은 신에게 함부로 닿을 수 없다. 언제나 겸손해야 한다. 무신론자인 내게는 그냥 상징적인 의미로만 다가왔다. 거의 모든 사원은 서쪽을 등지고 있어 언제나 태양의 광휘가 드리운다. 그곳을 오르는 지배층에겐 절로 후광이 비춰보일 거다. 이 얼마나 교묘한 생각인가! 네발로 기어갈지언정 신과 가장 가까운, 신과 비슷한 인간이 될 수 있다니!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3일 내내 사원을 기어올랐다. 아무래도 내겐, 신과 닿는 것보다 저 낮은 곳에서 두 발로 걷는 일이 더 적성인듯하다.



<신은 인간을 닮았다>

  신은 어떤 존재일까? 유물론자에게는 소용없는 질문이니 질문을 조금 다듬어야겠다. 인류에게 신은 어떤 존재인가? 다신교의 신들은 지극히 인간과 유사하고, 유일신을 믿는 종교에서 신은 인간을 아득히 뛰어넘는 초월적 존재이다. 그래서 그 많은 종교와 신이 인간에게 어떤 감명을 주었을까?

  한 악마가 창조의 신 브라흐마에게 '낮에도 밤에도, 집에서도 밖에서도, 동물도 인간도 너를 죽일 수는 없다'라는 신탁을 들었다고 한다. 악마는 신탁만 믿고 온갖 생물과 신들을 학살하고 다녔다. 혼란이 가중되자 질서의 신 비슈누가 브라흐마를 찾아간다.


"어떻게 하면 그를 죽일 수 있습니까?"

"낮도, 밤도 아닌 황혼 녘에, 집도 밖도 아닌 문지방에서, 동물도 인간도 아닌 반인반수의 모습으로 싸우거라"


  비슈누는 황혼 녘에 사자의 얼굴을 하고 문지방에서 악마와 혈투를 벌인다. 사진 속 부조가 바로 그 장면을 표현해 냈다. 누구보다 선하고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악마이며, 사나운 괴물 같아 보이는 것이 비슈누이다. 비슈누가 악마를 반으로 갈라 사체를 버렸으나, 불사의 악마는 몸을 합해 살아났다. 비슈누는 다시 브라흐마를 찾아간다.


"몸을 절반으로 나누어 버렸으나 그가 되살아났습니다. 어찌하면 좋습니까?"

"왼쪽 몸은 오른쪽에, 오른쪽 몸은 왼쪽에 버리거라"


  혈투가 반복되었다. 악마는 다시 반으로 갈라졌고, 방향을 잃은 몸이 합쳐지지 못해 세계엔 평화가 찾아왔다. 너무도 인간적인 이야기이다. 강력한 힘을 가졌으나 수수께끼조차 풀지 못하는 신과 방향을 찾지 못해 죽어버리는 악마라니, 상당히 귀엽지 않나.



<신의 시계, 인간의 시계>

  이렇게나 냉소적인 나라도 신에게 압도된 곳이 있다. 앙코르와트에서 차로 40분쯤 떨어진 뱅밀리아라는 곳이다. 발견 이후 한 번도 복원을 시도하지 않은 사원이라는데, 짧은 인생을 통틀어 이렇게까지 경외감을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첫인상부터 강렬하다. 무너진 돌계단이 세월을 가늠케 한다. 이 이상이 존재할 거라곤 상상도 못 한채 사원 내부로 들어갔다. 이미 온 마음을 빼앗겼는데, 도대체 무얼 보고 감동할 수 있을까? 괜한 걱정이었다. 사원 내부는 사진과 언어의 한계를 느낄 정도였다. 어떤 것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나는 한낱 미물이 되어 신의 흔적을 좇는다.



  파괴의 신 시바는 사실 창조의 신이기도 하다. 시바가 춤을 출 때 파괴가 시작된다. 시바의 파괴된 무대에서 재창조의 기반이 생겨난다. 시바는 그저 온화한 표정으로 춤을 출 뿐이다. 어쩌면 이곳, 내 머리 위에서 시바가 춤을 추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원래 거대한 동물의 시간은 작은 동물의 시간보다 느리게 간다. 신은 인간이 인지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서 시바가 여흥으로 추는 춤이 우리에겐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지나 보다. 신의 시계는 곧 자연의 시계이다. 자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인간의 시대를 파괴하고, 뿌리를 내리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 낸다. 부서진 사원에 자연의 춤이 깃든다. 끝없는 과정이자 진행형인 춤이 내게는 결과형으로만 보인다. 그 아쉬움과 경외감, 나를 압도하는 모든 감각이 신의 권위처럼 느껴진다. 자연만 보았을 때는 알 수 없던, 인간 세계와 자연의 세계가 부딪혔을 때 나오는 감동이 전율로 흐른다. 그때는 감동에 젖어 생각하지 못했지만, 범신론이 이렇게 탄생한 걸지도 모른다. 거대한 자연 앞에 결국 무릎 꿇을 인류가 조금만 덜 오만하길 바라며 시바의 온화한 얼굴을 상상한다.


무너진 뱅밀리아


무너진 부조 벽
뱅밀리아의 무너진 기둥들


<주변의 해체>

  그럼에도 오만한 인간은 모든 것에 상처를 남기며 살아간다. 캄보디아 내부 정치에 대한 미국과 베트남 개입으로 국가 인구의 1/3이 사라졌다. 일명 킬링 필드가 남긴 상처는 아직까지 아물지 않아 진물로 흐른다. 유적지 곳곳엔 총탄 자국이 남아있다. 부정부패가 만연한 곳에서 삶은 더 척박해졌다. 도심부 사람들이 달에 겨우 50~70만 원을 벌 뿐이다. 집을 갖기 위해 은행 대출을 받으면 달마다 이자가 1.5%씩 늘어, 1년이면 거의 20퍼센트대의 이율을 물어야 한다.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캄보디아에서 프랑스 관광객은 벽에 낙서를 했고, 킬링필드의 원인이기도 한 미국 관광객은 불상의 머리를 밟고 올라가 웃으며 치즈라고 외쳤다. 불쾌함이 기저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왔다. 여행 전, 캄보디아 역사를 알고자 인터넷에서 관련 서적을 뒤졌다. 한국에서 캄보디아사는 주변사, 더 세게 말해  잡사 취급을 받고 있다. 인간은 늘 중심과 주변을 나눈다. 그리고 주변을 등한시한다. 그게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몰을 보기 위해 똔레삽 호수로 들어갈 때에는 정말 참담하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었다. 흙탕물 위에 지은 집들, 삶에 찌든 얼굴들, 고작 9살밖에 안 되어 보이는 뱃사공, 그걸 웃으며 보고 있는 백인 관광객들. '내가 느끼는 감정이 행여 선민적인 마음은 아닐까, 내게 연민할 자격이 있나, 나와 같은 풍경을 바라보면서 웃는 자들은 당최 어떤 생각일까'하며 만감이 교차했다. 착잡한 심정으로 도착한 호수가 어떠했나? 또 한 번 부끄럽게도, 장관이었다.



  바다만큼 넓은 호수에 해가 비추었다. 흙탕물 위의 햇빛은 금사를 놓은 것만 같았다. 호수가 흙탕물이란 사실조차 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래 맞아, 흙탕물에도 생은 있고, 빛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지. 그곳에서 몇 시간이고 호수를 바라보았다. 아까의 심경은 호수 바닥으로 사라져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평화만이 자리 잡았다. 돌아가는 길에는 흙탕물이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집들 사이로 정말 어린 아기가 손키스를 날려주었다. 손을 흔들어주던 또 다른 아이는 내가 인사를 받아주자 방방 뛰며 즐거워하였다. 너무 큰 선물을 받았다. 서서히 죽어간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사실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었고, 그 와중에도 내게 다정함을 건네어주었다. 같은 길을 노 저어 가는데, 아까의 착잡함 대신 충족감이 차올랐다. 결국은 살아낼 거다. 그렇게 행복을 찾을 거다. 인간의 시간이 자연보다 훨씬 빠르게 흘러가니, 회복도 그만큼 빠르게 이루어질 거다. 숙소로 돌아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였다. 많지 않았다. 그래도 이 감정들을 나의 사람들과 공유했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이 알게 될 때 주변은 희석되고 그냥 하나의 인류만 남는다.



  인간으로 시작해 신으로 갔다가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 여행기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부디 기꺼운 마음으로 읽었으면 한다. 여행 내내 수많은 다정함을 느꼈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으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지 깨달았다. 다들 그런 내게서 행복을 받아갔으면 좋겠다. 굳이 또 말하자면, 캄보디아 씨엠립은 최고의 여행지였다. 그러니 한 번 더 앙코르, 다시 만나자 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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