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황소에서 단원평가를 보고 나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끝났다는 기쁨과 점수에 대한 기대감에 한껏 들떠 학원 옆 만두가게에서 두 팩이나 포장했다.
첫 단원평가인 만큼 욕심을 냈다. 한 달 반동안 쪼꼬미는 승급을 목표로 퀵테스트 점수에 신경을 썼다. 퀵테 평점 3.4점, 단원평가 평균 83점을 넘으면 승급 대상이 된다. 물론 TO도 있어야겠지만 덩달아 들뜬 나는 실력반 시간표를 보며 3교시면 저녁을 언제 먹여야 할지 미리 고민하고 있었다.
4-1학기 두 단원. 1. 큰 수 3회, 2. 각도 5회
월, 수 수업을 들으면 다음날 바로 확인학습 숙제를 하고 주말엔 개념탐구 2개(+예제, 미션 오답) 복습을 바로 진행했다. 황소 유튜브에서 본 대로 이 중 오답은 맞을 때까지 고민하며 1차, 2차 복습을 끝냈다. 복습의 결과는 높은 퀵테 점수로 이어졌다.
단원평가 2주 전부터는 확인학습 오답 →개념/예제/미션/확인 → 오답 순서로 진행했다. 글로 쓰니 간단하지만 양이 적지 않고 문제의 난이도가 쉽지 않다. 최상위 레벨업 ~ 하이레벨 정도 생각된다. 겨울방학에 영어에 집중하려했는데 또 주구장창 수학만 하는 느낌이다.
실력반부터는 부교재로 최상위를 진행한다던데 일품반은 진행하지 않는다. 지점에 따라 최상위 진행 여부에 따라 추가 포인트가 지급된다는 말도 있던데 지금 지점에서는 그런 제도가 없다. 슬그머니 최상위와 점프왕을 넣어봤지만 쪼꼬미 일단 거부. 이 둘 모두 학기 중에 현행 심화로 해왔기에 3월에 하자 싶어 잠시 미뤘다.
12월 처음 교재를 받고 5권을 제본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교재를 들고 제본집에 갔는데 교재를 바로 돌려줬다. 그럼 어떻게 제본하냐 물으니 이미 제본 여분이 여러 부가 있다고 했다. 엄마들은 다 똑같은 생각을 하나보다. 이번 단원평가를 준비해 보니 3권을 썼다.
수업일에 공휴일이 많아서인지 단평 주간이 정해졌다. 일주일 중 원하는 날을 선택해서 시험 보는데 쪼꼬미는 토요일에 봤다. 1시간 50분 동안 총 40문제. 단원별 차시 비중에 따라 문제 비중이 결정된다. 일품반은 대부분 개/예/미/확에서 나온다고 했다.(선생님 피셜) 블로그에서 보니 교재와 비슷한 문제를 다 맞으면 85점가량 나오고 나머지는 심화 문제라고 했다. 개념탐구, 예제, 미션, 확인학습 = 개예미확 이걸 알고는 한참 웃었다. 카페에서는 이렇게 줄여서 부르더라. 유난스러웠다. 물론 나도 그 중 한 명이다.
교재만 네 바퀴 돌았으니 80점 이상은 기대할 수 있겠다. 내심 심화 중 한 문제는 맞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또다시 시간표를 고민했다.
김칫국이었다.
확실히 김칫국이었다.
건물 1층 넓은 스벅에는 학원 숙제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생각하는 황소, 필즈, 기파랑 난다 긴다 하는 학원이름이 써진 교재들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었다. 쪼꼬미는 다니는 학원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어딜 가면 누구와 있는지, 대화의 맥락이 무엇인지와 상관없이 자기 생각하는 황소에 다닌다고 자랑해 달라고 보챘다. 본인이 이뤄낸 성과니 얼마나 뿌듯할까 :)
쪼꼬미는 단원평가 후 5일 동안 매일같이 점수를 궁금해했다. 한 주 후 아이가 수업에 들어가자마자 학원에서 문자가 왔다. 57.5점, 9명 중 7등.
세 번 넘게 확인했다.
두둥 충격의 결과, 40문제를 다 안 푼줄 알았다.
수업 중인 아이가 받았을 충격이 걱정되었다. 강급 기준이 단평 65점 미만인데 57.5점이라니. 당사자는 말해 뭐 하랴. 그날따라 미션도 1시간 만에 끝내고 나왔다. 다행인지 끝나고 나오는 길에 점수를 들었다고 했다.
엄마, 눈을 감으면 점수가 떠오르고 눈을 뜨면 머리가 지끈거려
집에 가는 차에서 연신 토할 것 같다며 힘들어했다. 먹은 것도 없이 체했나 싶어 약을 먹였으나 나아질 리 만무했고, 집에 도착해서 양치와 세수만 하고 바로 침대로 쓰러졌다. 그렇게 내리 13시간을 잤다.
쪼꼬미 나이 이제 막 11살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이걸 잘 해내고 있었다. 심지어 쪼꼬미보다 1살 어린 10살 친구들이 반이었다. 쪼꼬미가 물었다. 왜 2학년 때 입학테스트를 보지 않았냐고 날 원망했다. 자기는 늦은 것 같다고, 뒤떨어진 것 같다고.
머리가 회오리쳤다. 아직 어리다. 그런데 우리 딸은 달리길 원한다. 더 달리도록 도와줘야 하나. 상처를 너무 일찍 겪는 건 아닐까. 회복할 수 있는 건가. 시험을 잘 보면 만족해할까. 그걸로 행복해도 되는 건가. 앞으로 9년은 달려야 하는데, 지금이라도 멈춰야 하나.
8살 때였다. 한솔 국어를 하고 있었는데 쪼꼬미가 버거워했다. 그만두며 선생님께 물었다. 8살이 이렇게 하는 게 맞을까요? 선생님이 답하셨다. 아이가 커서 원망합니다.
엄마 그때 왜 나 안 챙겼어. 왜 안 시켰어. 왜 하라고 밀어 넣지 않았어.
나도 어느 정도 그 말에 동의한다. 아이들은 그저 놀고 싶을테고 판단하기엔 어리다. 부모가 아이 성향에 따라 가이드를 잘해주고 인풋을 적절히 넣으면 스스로 선택하는 시기가 왔을 때 선택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