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대하는 방법에 대하여
알을 깨고 나온 새는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날아가지. 홀로 서기를 선택하는 순간 너만의 날갯짓이 시작된단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가르쳐달라고? 엄마가 어떻게 네가 갈 길을 알 수 있겠니. 너와 나는 닮은 듯 다르단다. 엄마는 엄마만의 길이 있고, 너는 너만의 길이 있어. 엄마는 너의 비와 바람을 막아줄 수는 있지만, 네가 갈 길을 선택할 수는 없단다. 네가 판단하고 선택해서 결정해야 돼. 네가 살아가야 할 너의 삶이니까. 그래서 힘들어. 선택은 갈등을 유발하고, 결정은 책임을 동반하지. 그걸 네가 이제 해내는 거야. 왜? 너는 충분히 해낼 능력이 있으니까.
아가야.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어떤 삶을 추구하니? 너의 가슴을 뛰게 하고, 잠 못 들게 만드는 것. 대가를 치르더라도 꼭 갖고 싶은 것이 있니? 혹시 생각만 하고 끝나는 건 아니지? 생각만으로 끝나면 그것은 망상이란다. 공상, 망상은 예쁜 비눗방울 같은 거야. 너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만들 방법을 찾아야 돼.
달리기를 예로 들어서 생각해 보자. 100미터 달리기를 20초에 뛰어도 좋다는 사람과 반드시 15초에 뛰겠다는 사람의 마음이 같을 수는 없을 거야. 숨을 참고 있는 힘을 다해 달리는 사람과 조금만 숨차도 나 못해하며 포기하는 사람이 있어. 발을 빨리 움직이면 된다는 것을 알고만 있는 사람과 자신도 모르게 빨리 뛰어나가는 사람도 있지. 생각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져. 너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야 할 마음도 생기겠지? 가진 능력보다 약간 높은 기준이 좋아. 발을 들고, 두 팔을 쭉 뻗으면 잡을 수 있는 만큼에 원하는 것을 놓고 그것을 잡기 위해 팔을 쭉 뻗어보자. 두 팔을 쭉 뻗으면 허리와 어깨에서 뿌드득 소리가 나. 까치발을 오래 하고 있으면 종아리에 힘이 잔뜩 들어가겠지.
높은 나무 끝에 달린 열매를 따 먹기 위해서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야 해. 처음에는 떨어져서 엉덩이가 아프고, 손바닥에 상처가 생겨. 당연하지. 처음 도전해 보는 일이라 어색하고 낯설고 서툴러. 그렇지만 목이 마른 너는 다시 도전할 거야. 처음보다 조금 높이 올라가서 떨어지겠지. 그렇게 계속 나무에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열매에 손이 닿아. 네가 먹을 열매를 네가 따는 거야. 누구의 손을 빌리지 않고. 처음에는 고개를 들고 올려봤던 나무가 더 이상 높지 않다는 것을 너는 깨닫지. 이 나무에 내가 올랐다니 대단한걸. 하는 성취감은 덩달아 따라와.
간절히 원하는 것은 결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단다.
쉽게 얻은 것은 네 것이 아니야.
애타게 원하고, 네가 노력해서 성취한 것만이 네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렴.
너의 기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고통은 심하지만, 얻을만한 가치가 있다면 고통은 충분히 참아낼 가치가 있어.
기준을 높게 잡고 행동은 빠르게 실천하면 처음에는 고통스럽다고 느끼지만, 일정한 수준에 올라서게 되면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닌 게 돼. 네 옆에서 네가 항복을 외치길 벼르고 있던 고통은 할 일이 없어져. 네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몸을 쭉 늘리는 것이다. 네가 고통스러운 만큼 고통이 내지르는 비명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구나.
고통을 싫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힘들면 쉬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것은 당연해. 편하고, 쉽고 빠르게 원하는 것을 모두 다 얻을 수 있는 마법사의 지팡이가 갖고 싶니? 절대 반지처럼 막강한 힘을 가진 그러나 내 것이 아닌 것은 당장은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 줄지 몰라도 그것이 언젠가 빚이 되어 너에게 계산서를 청구한단다.
계산은 정확하게 너에게 비용을 청구할 거야. 네가 치르지 않으면 너의 자손이 혹은 주변에서라도 대가를 치르게 되어 있어. 인생은 한 사람에게만 관대한 법은 없으니까. 만일 있다 해도 그게 너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어.
여름은 밭일을 하기에 힘든 계절이야. 한낮의 기온이 30도가 넘어가면 움직이는 것만으로 땀이 흐르고, 바람 한 점 없는 대기는 더운 공기로 가득 차지. 농부가 여름에 어떻게 일을 하는지 본 적이 있니?
농부는 어스름한 새벽에 밭에 간단다. 이슬이 내려 차가운 풀들 사이를 걸으며 잡초를 뽑고, 돌을 고르고, 성질 급한 여름 해가 떠오를 때쯤 일을 마무리하고 아침밥을 먹는단다. 정오가 되어 뜨거운 해가 머리 위에 있을 때 농부는 나무 기둥에 몸을 기대고 짧지만 깊은 잠에 빠져들어. 오수를 즐기는 거란다. 짧지만 달콤한 휴식이 끝나면 농부는 눈을 뜨고 밀린 일을 시작해. 지는 해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온 농부는 고단한 다리를 뻗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
단순하고 간단하지만 자연스러운 일상의 반복이지. 날이 더워서, 비가 온 뒤라 땅이 질어서, 친구와 만나야 하니까. 일이 생겼다고 농부는 일을 미루지 않아. 핑계를 댈 수도 없어. 오늘 잡초를 뽑지 않으면 내일 더 많은 잡초가 있을 거 알고 있거든.
미룬다는 것은 그런 것이란다. 지금 하지 않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야. 누가 대신 해 주는 법도 없어. 처음에는 한 시간이면 끝날 일을 하루 미루면 두 시간이 걸리고, 또 하루를 미루면 세 시간, 네 시간이 되겠지. 그렇게 일주일만 미루면 하루에 해야 할 일과 더불어 일주일 치 일이 쌓여 너를 괴롭게 만들 수도 있어.
그때부터 일은 일이 아니라 너를 짓누르는 짐이 되는 거야.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란다.
부채를 갚지 않고 돈을 계속 빌리면 파산은 불 보듯 뻔한 일이잖아.
지금 해야 할 일을 이 순간 하는 거야.
당장은 피한다고 해서 보이지 않았던 작은 고통이 내일 더 큰 고통과 함께 너를 찾아올지 모르잖아.
고통을 너의 집에 온 불청객이라고 생각해 보렴. 아무리 원하지 않은 손님이라도 찾아온 이유가 있겠지? 고통도 할 일이 있어서 너를 찾아온 거야. 그런데 너는 고통이 뭘 하러 왔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싫다고 무섭다고 도망가버려. 그럼 고통 입장에서 어떠겠지? 기분 나쁘겠지? 그래서 고통은 널 끝까지 따라갈 거야. 네가 명상을 하든, 백팔배를 하든, 산에 오르든, 여행을 가든 상관하지 않고, 고통은 너를 따라다니며 제 할 일을 하겠지?
그렇다고 과하게 고통을 반길 필요는 없어. 고통이 왔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어떡해, 어떡해. 발을 동동 구르고, 머리를 싸매서 눕고, 골치가 아파 죽겠어 하며 만나는 사람들마다 고통얘기를 하면, 고통 입장에서는 신나지. 여기가 고통의 명소라고 소문낼지도 몰라. 한 번만 올 생각이었던 고통이 두 번, 세 번 오고, 더 센 친구들도 데려오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하냐고?
손님이니까 문은 일단 열어줘.
그리고 무슨 일로 오셨나요? 물어보고, 볼 일 보고 가세요.
제가 조금 바빠서요. 하는 거야.
고통은 도망가지도 않고, 환대하지도 않는 너를 보면서 약간 뻘쭘할 수 있어. 그런데 또 고통이 들어오긴 해. 말했다시피 고통도 제 할 일이 있으니까. 목적이 있어서 찾아온 거니까. 그렇게 너의 집에 찾아온 고통에게 너는 짧은 시간을 내어 주고 난 후에 네 할 일을 하는 거야.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요. 양해를 구하고,
편안하게 계세요. 말하고 나서 네가 할 일을 하는 거지.
가만히 앉아 널 보던 고통은 무슨 생각을 하겠어? 심심하겠지? 가고 싶어 질거야. 다른 사람을 찾아갈 생각이 들지 않겠니? 아니면 더 큰 고통을 데려와서 복수하고 싶어질지도 몰라. 그러거나 말거나 너는 네 할 일을 하지. 그러다 눈을 들어보면.; 어? 고통이 없네. 언제 갔지? 하는 거야.
엄마는 오늘 추석음식 준비를 종일 할 거란다. 그건 며느리로서 엄마가 할 일이지. 딱히 고통스럽지는 않아. 몸이 고되고, 정신적으로 약간 힘들 수는 있는데. 그 고통이 엄마를 흔들 순 없어. 왜냐하면 엄마는 얼른 음식준비를 하고, 글을 쓸 생각이거든. 써야 할 글을 못 쓰면 마음이 더 괴로울 테니까 지금 하기 싫어도 후다닥 음식을 준비해 버리는 거야. 얼굴 찡그리면서, 하기 싫은 거 억지로 하는 사람처럼 느릿느릿하는 게 아니라 정말 열심히 부지런히 명절 음식을 만들 거야. 그리고 저녁에 글을 쓰겠지.
힘들지 않겠냐고? 아니, 엄마는 소설가가 될 사람이고, 따라서 매일 글을 써야 해. 그런데 몸이 힘들다고 소설 쓰는 것을 미루면, 소설가가 되지 못할 거야. 지금 일하고 글 쓰는 게 힘들다고 해서, 고통스럽다고 해서 하지 않으면, 당장의 작은 고통은 사라지겠지만, 나중에 소설가가 되지 못한 데서 오는 큰 고통은 감당하지 못할 거야. 뒤에 얼마나 큰 고통이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엄마는 지금의 안락과 편안함을 포기할 수 있어.
사실 엄마에게 명절은 큰 고통이 아니야. 2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전 부치는 데는 도사가 됐거든. 그래서 부엌에서 일을 하는 게 힘들지 않단다. 고된 명절준비가 엄마를 제사음식의 달인으로 만들어줬어.
고통은 그렇게 사람을 성장시키는 역할도 한다는 것을 기억하렴.
고통은 고통의 할 일이 있고, 너는 네가 할 일이 있단다.
고통이 오면 살짝 괴로워하다 할 일을 하면 고통은 머리 긁적이다 심심해서 가겠지?
고통이 재미없어서 가버리는 거야.
네가 해석하고 이해하고 고통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 고통은 너에게서 사라진단다.
아이야. 엄마는 네가 고통 뒤에 숨어 있는 성장의 길을 찾아가길 바라고 응원할게.
오늘도 우리 잘 지내보자꾸나. 사랑한다. 엄마딸.
소중한 시간을 내어 글을 읽어 주신 작가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추석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