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독서의 힘
8월 1일 새벽독서모임에 들어갔습니다. 새벽 5시부터 7시까지 이어지는 독서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했습니다. 어떤 날은 빨리 보고 싶은지 새벽 3시에 눈이 번쩍 뜨일 때도 있습니다. 요즘은 자연스럽게 4시 전후에 일어납니다. 미지근한 물을 떠서 고혈압약을 먹습니다. 세수하고,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정신을 깨웁니다.
우리 집에서 가장 작은 방, 그렇지만 제게는 너무도 큰 방에 들어가 앉아 노트북을 켭니다. 까맣던 화면이 하얘지고, 낯익은 사진이 뜨면,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그곳에 빨리 들어가고 싶어서 마우스를 괜히 만지작거립니다. 접속을 시작합니다.
멀리서 고동소리 들립니다. 언제나 같은 시간에 울리는 것으로 봐서 배가 떠나는 시간인가 봅니다. 어부인 옆집 아저씨가 고된 밤을 지새우고 들어와 길가에 트럭을 세웁니다. 라디오를 크게 켜놓고, 운동하는 할아버지의 기침소리도 들립니다. 저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새벽을 여는 사람들 틈에서 저는 책을 읽습니다.
새벽 5시부터 책을 읽는 것도, 한 시간 동안 꼼짝하지 않고 집중하는 것도, 정말 희한한 풍경입니다. 더 이상한 건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 힘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건 정말 말로는 표현 못할 일입니다. 굳이 갖다 붙이자면 기운이라고 해야 할까요? 기세라는 단어는 어떨까요? 어쨌든 저는 말없이 책을 읽는 사람들과 함께 새벽을 열고,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습니다.
딱 집중할만할 때 "6시입니다"라는 소리가 들립니다.
지담작가님의 조심스럽지만 낭랑한 목소리가 들리면, 먼 곳에 가 있던 정신들이 서둘러 돌아옵니다.
어떤 날은 생각이 너무 멀리가 있어서 돌아오는 시간이 좀 걸리기도 합니다.
또 어떤 날은 빨리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제일 먼저 고개를 들 때도 있습니다.
독서모임이지만, 저희는 각자에게 맞는 책을 읽습니다. 당연히 진도도 없고, 따라서 앞서거나 뒤처지는 것도 없습니다. 저마다의 속도에 맞춰 읽는 독서입니다. 모르는 책을 다른 작가님이 얘기하면 얼른 적어놓고, 읽은 책이라면 반가워서 얼굴을 노트북 앞으로 바짝 붙이기도 합니다. 무슨 책을 읽었느냐보다 그 책에서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나누고 싶냐가 궁금해질 때도 있습니다.
그때 또 이상하고 희한하고 소름 끼치는 일들이 생깁니다.
분명 나와 다른 책을 읽었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합니다.
어떤 날은 내가 읽은 책인데, 그 안에서 다른 의미를 찾아냅니다.
책들이 하나같이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놀라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기적이라는 말이 절로 나옵니다.
더 신기한 것은 모니터 안에 있는 누군가의 말이 가슴을 건드리고,
눈물이 전염이 된다는 것입니다.
전원을 켜지 않으면 만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스피커버튼을 누르면 목소리가 사라지고, 카메라를 끄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보고 싶고, 생각나고, 그리울까요?
그들의 눈물에 왜 공감하고, 아파하고, 안타까워할까요?
도대체 그들은 왜 그렇게 새벽마다 울고 있을까요?
독서모임에 초초초초집중하는 작가님들을 보면서 항상 궁금했습니다.
그들을 움직이게 하고, 머물게 하고, 울고 웃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좋은 책을 읽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독서는 혼자서도 가능한 일이니까요.
뭔가 있는데, 그게 뭔지 몰라 답답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매일 참석했습니다.
주말에는 강제가 아니지만, 굳이 빠질 이유도 없어서 토, 일에도 습관처럼 줌을 켜고 앉았습니다.
그리고 어제, 비로소 저는 깨달았습니다. 새벽독서의 강력한 힘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힘들 때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정신이었습니다.
그것을 새벽에 배우고 있었습니다.
정신이 단단해지는 것을 스스로 느끼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는 고역을 참을 수 있었습니다.
좋은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어서 그것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힘들어도 할 만하고, 하고 싶고, 나아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앉아 있는 겁니다.
이제야 그것을 알았습니다.
원치 않은 상황에 처했고, 그로 인해 어울리지 않은 장소에 앉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분노와 원망과 미움이 찾아와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그때, 지담작가님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나약한 정신인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화내고,
슬퍼하는 것밖에 없었던 제가 울지 않았습니다.
지담작가님을 떠올리고,
고통을 정신으로 해석한다는 제 글을 생각하며 상황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 새벽독서모임을 하는 작가님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눈물과 나의 분노를
그들의 아픔과 나의 원망을
그들의 슬픔과 나의 미움을 같은 자리에 놓습니다.
크기도 모양도 다른 저마다의 고통과 고충이 어우러져 떠다닙니다.
조금 더 집중해 봅니다. 이 시간에 줌에서 글을 쓰고 있을 작가님들을 생각합니다. 일이 잘 성사되면 집으로 달려가 제일 먼저 노트북을 켜야지. 바닥이 조금 까졌지만, 그래서 더 편안한 의자에 앉아 얼굴을 바짝 대고 보고 싶었던 작가님들에게 오늘 겪은 일들을 말해줘야지. 그것만 생각하자 지옥 같은 시간들이 참을만해졌습니다.
나를 집어던져
네가 원하는 곳으로 어디든 던져라
나는 거기서도 내 다이몬을 평정하게 유지할 것이다(주 1)
책을 읽으며, 밑줄 긋고, 필사했던 문장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그렇게 견딥니다.
일이 어떻게 흘러가든 그것이 저에게 꼭 필요한 과정임을 이제는 알 수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일들이 마음을 흔들고, 서로를 아프게 합니다.
그것들을 해결해 나가는 동안 힘과 강철 같은 의지(주 2)가 생깁니다.
그러한 일들이 반복되면서 진짜 중요한 순간,
비상사태가 왔을 때 비로소 저의 진가는 드러날 것입니다.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덕분에 저는 감정의 늪에 들어갔지만, 빨리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어제의 제가 고통 속에서도 나의 중심을 잡았다면, 오늘의 저는 다시 태어나 새로운 삶을 만들어갑니다.
나의 생기는 증가되고, 열정은 분수처럼 솟아오른다.
이전의 모든 근심은 깨끗이 사라지고,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투쟁과 비애가 가득 찬 세상에서
내가 이전에 가능하리라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주 3)
나는 왜 이렇게 잘 흔들릴까? 마음먹은 대로 가지 못할까?
잘 가다가도 한 번씩 삐딱선을 타는 제가 싫은데, 나까지 나를 싫어하면 내가 안쓰러우니 그냥 안고 살아갔습니다.
이제 저는 그런 나를 만나지 않습니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제의 나는 흔들린 나, 못난 나였습니다.
오늘의 나는 다시 태어나는 나, 새로운 나입니다.
따라서 어제의 일이 오늘의 나를 흔들 수 없습니다. 멀리 갔던 마음이 밤 사이 돌아오고, 새벽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에 일어나 책상 앞에 앉습니다. 힘들 것도 속상할 것도 없습니다. 언제나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노트북을 켭니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생길까요?
(주 1) 명상록, 아우렐리우스
(주 2) 강철 같은 의지, 오리슨 스웨트 마든
(주 3) 아카바의 선물, 오그 만디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