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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이렇게 연결이 된다고?

by 레마누

얼마 전의 일이다. 마트에서 나와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맞은편에서 카트에 어린아이를 태우고, 여자 둘이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 보였다. 한 사람은 늙고, 한 사람은 젊었다. 카트에는 생수가 가득 실려 있었고, 얼핏 보기에도 무거워 보였다. 그 위에 네 살 남짓한 아이까지 탔으니, 아무리 젊은 여자라도 밀기에 힘이 부칠 것이다. 나란히 걷는 여자는 그러나 카트를 밀어줄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나는 두 사람이 고부관계라고 생각했고, 며느리입장에서 젊은 여자가 안쓰러웠다.


신호등이 깜빡거릴 때쯤 여자가 미는 카트가 내 앞까지 왔다. 그런데 카트를 밀던 여자에게 문제가 생겼다. 인도의 턱이 높아서 아무리 애를 써도 카트가 올라오지 못했다. 일행은 낑낑거리는 여자를 못 마땅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시장바구니를 바닥에 놓고, 여자 옆으로 다가가 카트를 밀기 시작했다. 젊은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하나 둘, 셋 하면 같이 밀어요. 여자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외국인인가?


여자와 나는 신호에 맞춰 있는 힘을 다해 카트를 밀었다. 카트가 인도에 올라왔다. 안도하며 고개를 들었는데, 아뿔싸, 목걸리가 어디에 걸렸는지 이음새가 끊어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목걸이를 줍느라 차도에 내려갔고, 신호를 받고 오는 자동차를 피해 얼른 목걸이를 집었다.


여자는 그런 나를 보고 있었고, 늙은 여자는 늦었다며 여자를 재촉했다. 여자와 다시 한번 눈이 마주쳤다.

감사합니다. 서툰 한국말로 여자가 말했다. 네. 짧은 인사를 나누고, 두 사람이 멀어졌다. 여전히 여자 혼자 카트를 밀고 있었다.


ai-generated-8750456_1280.jpg 출처 : 픽사베이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으며, 말을 꺼냈다. 나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말했는데, 남편은 목걸이가 끊어진 것에만 신경을 썼다. 그놈의 오지랖 때문에 언젠가 문제가 생길 줄 알았다는 것이다. 뭐가 문제인지 물었더니, 다 문제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이들이 있는 앞에서 말다툼을 하고 싶지 않아. 자리를 떴다. 그리고 한동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때 내가 했던 행동에 후회는 없었다. 하지만, 여름 내내 목걸이 생각이 났다. 이음새만 연결하면 되는데, 왜 그런지 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의 말대로 가만히 있었으면, 아무 일도 안 생겼을 텐데, 정말 나의 오지랖이 문제인가. 싶어 속상하기도 했다. 원래 말을 예쁘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 찌르는 말은 언제 들어도 아프다.


그렇지만, 계속 뚱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찬바람이 불면, 벌초에 추석에 제사가 줄줄이 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아니다. 여전히 시어머니는 정정하시고, 음식을 줄이는 법도 없어서 준비과정도, 하는 시간도 많이 걸린다. 남편은 올해까지는 추석을 어머님 댁에서 하고, 내년부터는 우리가 하자고 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음력 8월 1일 벌초, 8월 15일 추석, 8월 20일 할머니제사를 한다. 그래도 괜찮다. 해야 할 일이니 좋은 마음으로 할 생각이었다.


추석날이 되었다. 전날 종일 준비한 음식으로 성대하게 차례상이 차려졌다. 10시에 시작해서 점심을 먹고, 설거지까지 마치니 1시가 조금 넘었다. 집에 가서 쉴 생각으로 서둘러 정리를 하는데, 어머님이 며느리들만 좀 남으라고 했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큰 형님이랑 나는 눈빛교환을 하며, 잔뜩 긴장한 채 어머님의 말이 나오길 기다렸다. 호랑이띠인 어머니는 평소에도 집에서 제일 무서운 분이고, 며느리들이 하는 걸 항상 못마땅하게 생각하시는데, 우리가 또 뭘 잘못했나 싶어 가시방석이었다.


그리고 어머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반전의 연속이었다.

1. 추석은 막내네 집에서 한다.

2. 막내가 하던 할머니제사는 올해까지만 하고 내년부터는 할아버지 제사와 합쳐서 큰 집에서 한다.

3. 평생 내가 모아 온 것들이다. 둘이 잘 나눠서 써라.

(이 대목에서 형님과 나는 큰소리로 어머니, 사랑합니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


어머니가 꺼낸 패물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든 것은 18k 얇은 목걸이였다. 내가 딱 원하는 디자인의 정말이지 내가 고른 것처럼 마음에 쏙 들었다. 일부러 금반지와 목걸이를 두 개씩 만들었다고 하며, 새것임을 강조하는 어머님을 다시 한번 안아드렸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그리고, 제사 역시 올해까지만 하면 된다. 원래 하던 거에 추석까지 해서 내년부터는 일주일에 두 번 연속 제사를 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하나로 줄어들었다. 남편은 아예 안 하는 것도 아닌데, 그게 좋아할 일이냐고 했다. 역시나 부정적인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는 새 목걸이가 생겼고, 따라서 마음이 관대해졌으며, 거기다 제사하나 가 사라졌으니 화를 낼 이유가 없었다.


룰룰랄라 노래를 부르며, 제사준비를 한다. 긴 연휴에도 매일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요즘은 새벽 3시 30분만 되면 눈이 떠진다. 그렇게 말하면 갱년기여서 그렇다는 답이 돌아온다.


갱년기면 어떤가?

일찍 일어나서 글을 쓸 수 있으면 갱년기도 좋은 거지.

가만히 누워서 눈만 깜빡이며, 오만가지 생각에 머리 아픈 것보다 낫다.

그렇게 생각하면 갱년기에도 감사하다.

덕분에 잠이 줄었으니, 글은 더 많이 써진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런데 목걸이를 보니, 카트를 밀던 젊은 여자가 떠올랐다.


istockphoto-1486910056-1024x1024.jpg 출처 : 픽사베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연관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렇지만, 뭔가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다.

내가 할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절묘하게 하나둘씩 맞아떨어지더니,

끄덕안 하던 것들이, 어긋나기만 했던 일들이

사라지고, 새로 생겨난 어떤 것들이 천천히 굴러가고 있다

아직은 느리고,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하지만, 가속도가 붙고, 목적지가 분명해지면

정신차릴 수 없게 달릴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그렇게 되어야만 할 일이므로 내가 애쓸 필요가 없다.

작정해서 하는 일이 아니다.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힘들지 않다

그저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쓸 뿐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다른 일들이 알아서 풀려나간다.

절로 그렇게 될 일이라는 것을 믿는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회오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그것은 매우 신나는 일지만, 또한 알 수 없는 일이기에

크게 기뻐하거나 실망하지 않는다.

좋은 것은 좋은 대로 받아들이고, 나쁜 것은 나쁜 일을 하게 놔둔다.



똑같은 일상 속에서 매일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난다.

나는 그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기록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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